Life

  • Doctor's Diary,  Life

    그들은 나를 살인자라 불렀다

    의사로서 내가 일해온 경험이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남아있는 기억들을 추스려 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고 그 중에는 대수롭지 않게 잊혀질 일들도 있고 평생토록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나의 기억 속에는 즐거웠던 기억도 있지만 쓰라린 기억과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기억들도 남아 있다. 아니, 오히려 고통스럽고 괴로왔던 일들이 더욱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어쩐 일인지. 이제 나는 내가 만 4년 동안의 의사라는 직업의 경험 중 가장 어처구니없고, 가슴 아프고 괴로왔으며 생각조차 하고싶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그런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왜 내가 나에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멸을 철저하게 맛보게 해준 이런 진절머리나는 사건을 글로까지 남기려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웬지 모를…

  • Life,  My story

    약혼기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할까? 백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 가지 대답이 나오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애 낳아가지고 대를 잇기 위해 한다고도 말할 것이며, 둘이 따로따로 사는 것보다 같이 사는게 생활비가 덜 드니까 그렇다고도 할 것이고, 매일 밤 만나고나서 집에 바래다주기 귀찮아서라고도 그럴 것이며, 그저 “에이! 나 결혼할래! 왜냐하면, 피곤하니까!”라고 그럴지도 모르며, 그냥 좋으니까, 사랑하니까, 떨어져 있기 싫으니까, 부모님과 친지의 권유로, 신문과 잡지의 광고를 보고, 외판원의 권유로, 정략 결혼의 희생양으로, 밥 해먹기 싫어서, 심심해서 등등 참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여?) 사랑이란 건 또 뭘까? 어떤 이는 그런 질문을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며 (당연한 얘기 아뉴? 모르니 묻지.) 어떤 이들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 Doctor's Diary,  Life

    제 정신 아닌 사람이 쓴 정신 나간 사람 이야기

    제목을 이렇게 붙혀놓고 보니 백일장란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조태현님의 ‘정신 나간 여자와 제 정신이 아닌 여자’라는 글이 얼핏 생각이 나는데 이 글은 그 글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이 세상에 어디 한 둘이던가? 의과 대학에서의 생활이란 단조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계속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1, 2학년 때의 기초 의학 과정과 그 이후의 임상 실습의 과정이란 참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 임상에서는 환자를 직접 본다는 것이다. 환자와의 접촉을 통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이야말로 임상 의학의 기본이라 할 것이다. 환자가 좀처럼 협조를 안해준다는 의미에서 소아과는 수의사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죄송!) 그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무척이나…

  • Life,  My story

    나의 여자(사람)친구 = 술친구?

    세월이란 빠르게도 흘러가고 사람들은 변해가기 마련이다. 추억이란 무엇일까? 추억이라 불리우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난 시간들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지난 날 나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저 희미하고 아련한 기억만으로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고 여전히 나의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에게 많은 감흥과 참으로 삶이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흐뭇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그들이 옛날의 신선하고 활기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이다. 사람이란 오랜 세월을 살면 살수록 세상의 때가 묻고 거친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맨질맨질하게 되어버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언제 보아도 그대로인 것만 같은 모습 – 비록 겉모습은 조금 달려졌을지라도 – 을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즐거움인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대개는 술 한두잔쯤…

  • Doctor's Diary,  Life

    마취과 이야기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0년 8월 나는 마취과의 인턴으로 가게 되었다. 7월을 내과 중환자실에서 30일 간 계속 당직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보내었던 나는 그 감옥살이와도 같았던 중환자실에서의 근무를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뻐 날뛸 지경이었다. 몸도 마음도 한 달 동안의 고생 끝에 팍삭 삭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마침내 말년에 진정한 자유를 찾은 빠삐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마취과에서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다소 긴장은 되었지만 지금까지 겪은 일에 어찌 비하랴! 마취과에서의 일에 대한 간단한 orientation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감격스럽게도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나! 이런 별천지가 밖에 있었다니! 한 달 간 거의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더니만 무슨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