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 아닌 사람이 쓴 정신 나간 사람 이야기

제목을 이렇게 붙혀놓고 보니 백일장란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조태현님의 ‘정신 나간 여자와 제 정신이 아닌 여자’라는 글이 얼핏 생각이 나는데 이 글은 그 글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이 세상에 어디 한 둘이던가?

의과 대학에서의 생활이란 단조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계속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1, 2학년 때의 기초 의학 과정과 그 이후의 임상 실습의 과정이란 참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 임상에서는 환자를 직접 본다는 것이다. 환자와의 접촉을 통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이야말로 임상 의학의 기본이라 할 것이다. 환자가 좀처럼 협조를 안해준다는 의미에서 소아과는 수의사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죄송!) 그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무척이나 환자 대하기가 힘든 과가 있다. 환자와 대화한다고 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호 교류마저 수행하기가 만만치 않은 과이다. 혹시 짐작하실런지? 그렇다. 짐작하신대로 (혹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더라도) 정신과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의과 대학 3학년 시절, 정신과 실습이란 무척이나 긴장되고도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는 일이었다. 폐쇄 병동!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같은 영화에서나 보았던 (하지만 물론 이 영화는 단순히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리려는 의도의 영화는 아니었다.) 정신과 폐쇄 병동으로 들어간다는 일은 아무리 겁없는 나라고 하지만 조금은 떨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신과 교과서라는 것이 참으로 요상한 것이어서 상당히 재미가 있는 것이었다. (음… 그렇다고 나의 정신과 성적이 탁월했었으리라고 단정하지는 마시라.) 재미있는 이유는 분명히 따로 있었다.

아니, 재미있다기 보다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읽다보면 놀랍게도 ‘아니! 이거 내 얘기 아냐!’ 하는 적이 한두번이 아닌 것이었다. 이러니 어찌 계속해서 읽지 않을 것인가? 정신과 책을 읽으면서 자기 얘기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내가 미… 미친 놈? 제 정신이 아닌 놈? 정신 나간 놈? 하지만 나만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많은 친구들이 나와 똑같은 고민에 시달리고 있음을 발견한 나는 나 혼자만 미쳐가는게 아니라 최소한 미치더라도 다같이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아심을 버릴 수 없었다.

특히나 인격 장애 (personality disorder) 부분에서 그런 현상이 매우 심하였다. ‘정신 분열성 인격 장애 (schizoid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해서 살펴보자. ‘사회적 관계 형성 능력의 결함, 즉 타인에 대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없고, 칭찬, 비난, 타인의 느낌등에 무관심하다. 혼자 즐기는 취미를 가지며, 유머가 없고 정서적으로 멍하고 적합치 않다. 목표에 대하여 막연하고, 활동에서 결단성이 없다. 이성 교제가 드물다.’ 등등. 음… 어째 상당히 나랑 비슷한데…

나의 친구들 중에는 책에 적혀있는 ‘강박성 인격 장애 (compulsive personality disorder) 부분에 써 있는 문항들과 자기가 왜 이렇게 비슷할까하고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질서, 규칙, 조직, 효율성, 정확성, 완벽함, 세밀함에만 집착해 있어서 전체적인 양상을 볼 능력이 결여. 매사가 합리적이고 형식적이고 메마르다. 만사를 실수 없이 철저하게 하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결단을 못 내리고 망설이게 된다. 자기 단점을 크게 확대해서 보며 그것을 고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등등. 에구… 이것도 내 얘긴가? (꽤 많은 사람들이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강박성 인격 장애는 의과대학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인격 장애가 아닐까?)

‘내향성 인격 장애 (introverted personality disorder)’. ‘내향적이고 정서가 빈곤. 사회 참여에 관심이 없고 혼자 지낸다. 인생의 목표가 없고 결단력도 없고 환경으로부터 동떨어져 지낸다. 나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표시할 줄 모르고 냉정하고 항상 거리감이 있다.’ 앗! 이것도 내 얘기다! 으… 이럴 수가… 미치겠네! 난 정말 제 정신이 아닌가 봐! 하기는 의과 대학생들은 어떤 과의 실습을 돌게 되면 흔히 그 과의 제일 대표적인 질병에 걸린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나의 경우 산부인과는 예외였다.), 이건 너무 심하다!

폐쇄 병동에 처음 들어가면서 잔뜩 긴장하면서 가졌던 정신과 폐쇄 병동에 대한 나의 상상은 전혀 빗나가고 말았다. 울부짖으면서 발광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봉두난발하고 병실을 헤메이는 여인도 없었으며 ‘정신 병자 시리즈’에 나오는 웃기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조용하고 점잖았다. 오히려 너무 점잖아 보이는 모습이 이상하였다. 한 중년 아줌마만이 열심히 웃고 떠들고 돌아다니면서 마치 가라앉은 병실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띄워보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를 포함한 여러 학생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면서 무지하게 친한 척(?)하는 바람에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의 환자들의 병명은 정신분열증이었고 그 아주머니는 조울증의 조증(mania)기에 있는 환자였다. 설익은 의과 대학생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조금 수다스럽고 번잡스럽다 싶은 옆집 아주머니 정도였는데 그게 약으로 많이 조절된 상태라니…

정신과 실습에 관련되어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학생이 한 정신과 환자와 면담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말을 시켰으나 환자는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교수님이 그 학생에게 질문하였다. “그 환자에 대해서 뭘 좀 알아냈나?”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아뇨, 환자가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 “이런,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니, 그 환자의 주 증상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아내지 않았나!” (실제로 외부와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여 자폐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정신분열증의 한 특징인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한 학생이 정신 분열증 환자를 담당하여 면담도 하고 레포트도 쓰기 위하여 열심히 환자를 졸졸 따라다녔다. 환자는 매우 귀찮아하면서 피하려 했으나 학생은 집요하게 끝까지 따라다녔다. 마침내, 환자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에이!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야? 정말 미치겠네…!”

내가 담당한 환자도 나를 귀찮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귀찮아 한다기 보다는 나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떤 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 하고, 어떤 때는 무척 반가와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그가 써놓은 횡설수설의 일기도 보여 주고 그가 병실에서 그린 – 전위 예술이란 이런 것인가? – 그림도 보여주었다. 우리는 다정하게(?) 서로 팔장을 끼고 복도를 한정없이 왕복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면 그 환자는 30대 후반의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처럼 생긴 남자 분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정신 나간 사람과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그런 걸 따져서 무얼 하겠는가? 그는 누군가 도청 장치를 설치해 그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그의 망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망상이란 것이 너무나도 체계적이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그가 뭔가 음모에 휘말려 강제로 폐쇄 병동에 감금 당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는 항상 ‘잘 모르겠어,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고 말했다. 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신 분열증, 쉽게 말해서 ‘미쳤다’는 것은 무척이나 이해하기가 곤란한 현상이다. 하지만 한가지만 인정하고 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정신 분열증 환자의 정신 세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절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니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그는 단지 꿈을 꾸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꾸는 그런 꿈을. 단지 모든 사람들은 밤에만 꿈을 꾸고 아침이 되면 ‘음… 개꿈이군.’ 하고 다 잊어버리지만 그는 낮이고 밤이고 꿈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꿈인지 무엇인지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꿈이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아름답고 환상적인 것을 생각한다. 즉, 꿈과 희망, 소망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꿈이란 뒤죽박죽이고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우리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엄청난 혼돈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의 꿈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안에도 똑같은 것이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그와 나 사이에는, 단지 나는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별할 수 있고 그는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정신과 교과서를 읽으면서 왜 이렇게 내 이야기가 써 있는가 놀라면서 불안에 떨었던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나의 내부에 깊이 깊이 숨겨져 있는, 어둠 속에서 꿈틀대는 용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두렵고도 놀라운 무의식의 세계에는 바로 그들과 똑같은 모습의 내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간신히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신과 증후군’ 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정신과 실습은 끝나서 이 ‘정신 나간 사람’은 마침내 잠시 외출 나갔던 정신을 찾아서 폐쇄병동을 탈출하였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은 계속 제 정신이 아닌 채로 원래의 자리에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 마치 처음서부터 그랬었던 것처럼 변함없는 모습으로.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금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 도리는 없다.

세상에 도대체 ‘정상’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어느 책을 뒤져보아도,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러 이러한 사람은 정신 분열증이다’, ‘저러 저러한 사람은 조울증이다’라는 말은 있어도 ‘이러 이러한 사람이 정상이다’라는 말은 없다. ‘어린 왕자’ 식으로 표현하자면, 세상에는 10억 8천만 명의 사기꾼과 5억 6천만명의 깡패, 15억 6천 5백만 명의 성격 파탄자, 천만명의 전쟁광, 8억명의 광신도, 2천만 명의 정신 분열증 환자와 3억명의 조울증 환자, 5억명의 알콜, 약물 중독자, 천만명의 AIDS 환자가 있다. (다 더해서 전 세계 인구에서 빼면 딱 한명 남는데 그게 바로 접니다! 농담이 좀 심했나요?)

정신병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별나라의 이야기는 아니다. 바로 우리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친구의 이야기이고,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사람들은 당뇨병에 걸리듯이, 심장병에 걸리듯이, 암에 걸리듯이, 마음의 병을 앓는다.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지 않았듯이, 모두가 그들을 직접 보살펴 주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몸의 병을 앓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위해 주듯이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편견 없이 바라보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좋지 않을까?

1994. 7. 22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