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기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할까? 백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 가지 대답이 나오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애 낳아가지고 대를 잇기 위해 한다고도 말할 것이며, 둘이 따로따로 사는 것보다 같이 사는게 생활비가 덜 드니까 그렇다고도 할 것이고, 매일 밤 만나고나서 집에 바래다주기 귀찮아서라고도 그럴 것이며, 그저 “에이! 나 결혼할래! 왜냐하면, 피곤하니까!”라고 그럴지도 모르며, 그냥 좋으니까, 사랑하니까, 떨어져 있기 싫으니까, 부모님과 친지의 권유로, 신문과 잡지의 광고를 보고, 외판원의 권유로, 정략 결혼의 희생양으로, 밥 해먹기 싫어서, 심심해서 등등 참으로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여?)

사랑이란 건 또 뭘까? 어떤 이는 그런 질문을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며 (당연한 얘기 아뉴? 모르니 묻지.) 어떤 이들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사랑이란 비오는 날에 우산이 두 개 있으면서도 두 사람이 한 개만 쓰고서 각각 반쪽씩 젖는 것이라고도 하며, 상대방이 무슨 무슨 영화가 재미있다고 하면 봤어도 안본척하고 같이 보는 것, (설사 세시간 짜리 쉰들러스 리스트라 할지라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도 웃어주는 것, 이 사이에 낀 고추가루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 기냥~ 깨물어주고 싶은 것 등등, 심지어는 그 남자의 아이를 낳아주고 싶은 것 (에구~ 징그러…!)이라는 학설도 있다.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에게도 한 때 명쾌한 해답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헌데 어째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자꾸만 뭐가 뭔지 모르게 되가는 것인지? 아예 팍삭 나이 먹고 나면 다시 알아질려나? 내가 사람들은 결혼이란 것을 왜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때에는 아마도 그저 단순히 서로 사랑하니까 결혼하나보다, 근데 사랑이란 건 또 뭘까? 하고 몹시도 순진스런 생각을 가졌었던 것 같다. (요새는 순진하다는게 욕이라면서요?) 여자한테는 백마탄 왕자님이 짜잔~하고 나타난다면 나한테는 뭐가 나타날까? 스카이콩콩 타고 온 삐삐인가? 그 순진스런 나에게 어느 친구가 이렇게 사랑의 정의를 내렸었는데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였다. “사랑이란,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래, 바로 이맛이야… 사랑이란 건 전기 스파크 튀듯 파팍거리는 것도 아니었고 화살에 얻어맞고 신음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머리 싸매고 “얘(나의 경우, 여자)한테 죽어라고 대가릴 갖다 박어? 말어?”하고 고민하는 것일 뿐이었다. (아니라고요? 죄송해요, 저는 워낙에 낭만 내지는 멋대가리가 없는 사람이라서요.) 그 다음부터는 ‘왜 나하고 그녀하고 사이에는 불꽃이 안튀나, 피죤을 써서 정전기를 없애서 그런가, 왜 가슴이 하나도 설레이질 않는 걸까, 심장에 털이나서 그런가’등등의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생각할 것이라곤 ‘열 번 찍어서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던데, 문제는 찍느냐 마느냐다’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또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도 곧 깨닫게 되는데, 즉, 이론적으로는 한없이 찍다보면 어떤 나무건 간에 결국 쓰러지겠지만 실제로는 도끼 자루가 먼저 부러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이란 것이 참으로 묘한 것이다. 누구와 누구가 죽자사자 붙어 다닌대드라하는 소문이 좌악 퍼지고는 그 다음에 한동안 소식이 뜸해서 걔들 죽었나 살았나 궁금해하고 있으면 이윽고 청첩장이 오는데 의례 생각할 수 있는대로 청첩장에 그들 둘의 이름이 나란히 박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봉투를 뜯어보면 여린 가슴에 충격받게 된다. 한 사람은 아는 이름인데 다른 사람의 이름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름이니까. 또는 누군가 (대개는 주변에서 소식통이라고 알려져 있는,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그런 사람)가 다가와서 ‘너만 알고 있으라고’ 이야기 해주기를 “야야, 걔내들 결혼 한대더라…. 따로 따로.” 세상이 이러니 이 순진한 사람은 “음… 결혼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건가보다.”하고 생각하게 될 수 밖에 없질 않는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상당한 기간 동안을 ‘결혼이란 꼭 해야하는 것인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왔었지만 결국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첫째는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걸 보면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는 것이고, 둘째는, 결혼해도 후회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는데, 결혼해서 후회한다면 그건 아마도 ‘독신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하는 백일몽의 수준이겠지만 독신으로 살면서 후회한다면 아마도 ‘난 결혼했어야만 했어!’하는 강박 관념의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었다. 셋째로는 ‘해보고 맘에 안들면 무르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세요?) 필자의 이 결론이 과연 끝까지 유효할까?

혹시나 필자가 한동안 글을 안올리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셨던 분이 있다면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다면 말이죠.) 이 대목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드리겠다. 이러이러하고 여차저차, 이러쿵 저러쿵, 우지끈 뚝닥해가지고서는 필자에게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 생기게 되었고, (그 과정을 여기에 밝힐 순 없지요. 스타에게도(?) 사생활의 자유가 있는 법.) 당장 결혼을 하지 못하는 운명의 장난(?)으로 팔자에 없이 약혼식을 거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저 무슨 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식의 주인공으로 되어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기 보다는 그 이외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장례식을 보라, 죽은 사람을 위한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잔뜩 먹을 것 차려서 산사람들이 다 먹어치우지 않는가. 제삿밥이라고 한상 차려주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이 그걸 먹긴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다 산사람들이 먹는 거지. 약혼식도 그러한 것 같다. 뭐 그리도 정신 산란하게 하는 일들이 많은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느니, 예물을 어떻게 갖추어야 하느니, 사회를 누가, 어떻게 봐야 하느니, 말들도 많기도 많다. 에구구, 힘들어라, 이 골치 아픈 걸 뭐할라고 하나. “억울하면 니들도 빨랑 애 낳아서 약혼 시켜라?” 이것도 덕담인지 뭔지… 약혼식장이란 흔히 양가 남북 회담하듯 양편에 죽 늘어앉아 곧 패싸움 할 것 같이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임을 보고 들어왔던 필자는 필자의 fiancee (에구… 뭐라고 불러야 하나? 쑥쓰럽네 그려…)와 함께 머리를 싸매고 연구한 끝에 결국 흔히들 식사 후에 하게 되는 소위 ‘여흥’ 시간을 빼버리기로 결정하였다. 아무리 우리가 가무음곡을 즐기는 배달민족이라고 하나 도대체 약혼식장에서 노래하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드디어 D-day. 평소엔 화장기없는 얼굴에 치마도 잘 안입고 다니던 필자의 fiancee는 뭔가 잔뜩 발라진 자신의 얼굴이 어색해 어쩔줄을 모르고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머리 모양 망가질까, 차려입은 한복 구겨질까 숨도 제대로 못쉬고 있었고, 원판이 좋은데 꾸며서 뭐하냐고 항상 외쳐온 (실은 게을러서 귀찮아하는 거지만) 필자조차도 머리를 헤어 드라이어로 냅다 굽고 (단순히 바람을 쐬거나 말린다기보다는 굽거나 지진다고 해야할 것 같다.) 뭔가 치덕치덕 바르고 얼굴에는 횟됫박을 뒤집어 썼다. 으… 이게 다 뭐냐… 식순 중에 예비 신랑 신부가 (이 용어도 무지하게 맘에 안든다.) 불끄고 촛불둘고 입장해서 무슨 올림픽 성화 점화 하듯 초에다가 불붙히는 순서가 영 맘에 걸렸고 필자의 fiancee는 ‘이거… 제발 좀 빼자… 응?’ 하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불행히도 사진 찍고 어쩌고 하는 바람에 사회자와 사전 협의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할 수 밖에 없었다. 한복 치마저고리 입은 사람과 같이 뭘 들고 나란히 걸으면서 치마를 안밟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관객(?)들의 반응이 괜찮은 것 같았다. 예물 교환하는데 이눔의 손은 또 왜 떨리나, 반지는 또 왜 이리 뻑뻑하니 안들어가고. 3살먹은 필자의 조카가 점잖게 앉아있는 양가 어른들 틈을 헤집고 다니며 갖은 재롱을 부렸다. ‘쨔샤…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쬐끄만게 뵈는게 없어…’ 그래도 귀여운 조카는 다행히 큰 사고는 안쳤다. ‘여흥’이란 명분하에 이사람 저사람 불러내서 약혼식장을 ‘전국노래자랑’ 녹화장화하지 않았다는 것도 반응이 좋은 것 같았다.

식은 무사히 끝났지만 이번엔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허공에다 손가락질 해보세요, 그윽한 눈길로 서로 쳐다보세요, 좀더 다정하게… 에이… 왜들 그러세요… 다른 분들은 잘들 하시던데… 쩝… 아저씨, 저흰 도저히 안돼요, 그냥 대충 찍어주세요… 흐… 다음 번엔 좀 나아지려나? 뒷풀이한다고 친구들이랍시고 불러 모았더니만 처녀 총각끼리 잘들 논다. 우리는 완전히 찬밥신세였다. 폭탄주는 지들이나 먹지 나는 또 왜 먹이나? 하여튼 무사히 다 끝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필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약혼하고서 달라진게 도대체 뭐지?”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제는 무르려면 상당히 복잡하다는 거, 그거지 뭐. 그러니까 혹시 불량품이라서 맘에 안들더라도 무르는 거 보다는 그냥 고쳐 쓰는 편이 좀 나을 껄?”

필자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이런 저런 일들이 일어난 후에 더욱 뭐가 뭔지 모르겠다. 모두들 결혼하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다들 남들 하니까 그저 따라하는 건지, 또, 앞으로 후회하게 될 일이 있을른지, 지금으로선 거의 아무 생각도 안난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해보고 맘에 안들면 무르기’는 필자의 완전한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일이 그다지 쓰잘데 없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 게시판이나 메일로 따뜻한 축하의 말씀을 전해오셨던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99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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