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9)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수많은 선배 부모들이 수도 없이 언급을 했었던 것이고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육아기가 인구에 회자된다. 기상천외하고도 기구한 스토리들도 많다. 필자가 여기에 또 하나를 보태려고 하는 것은 필자의 육아 스토리가 뭐 특별하고 기발한 것이어서는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얘기들 가지고 주절주절 적지 아니한 분량의 글을 엮어 온 판에, 애 키우는 것이 이제 막 시작이기는 하지만 인생에 있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큰 일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니 어찌 아니 글로 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선 한가지 먼저 얘기해 놓을 것은 이제 백일이 지나 4개월이 된 필자의 아기 JY(전편에서 아기의 이니셜이 의도했던 바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히도 필자의 J와 필자의 아내 이름의 이니셜 Y를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고 얘기했었다.)는 최소한도 지금까지는 부모의 육아 노동의 강도를 적절한 선에서 유지하게 해주는 점에 있어서는 상당한 효자라는 것이다.

두 달이 미처 못 되어서부터 이미 밤중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내쳐 자는 기특한 버릇이 들기 시작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질시(?)를 샀는데, 이따금씩은 졸려서 잠투정을 시작하다가 그냥 내버려두면 혼자서 손가락을 빨다가 잠이 들기도 할 정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필자의 장모님 얘기에 따르면 Y는 애기 때 하룻밤에 세번이고 몇 번이고 깼었다고 한다. 꼭 지은 대로 받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혹시는 필자나 Y 모두 한번 잠이 들었다 하면 무척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축이고 특히 필자는 한밤중에 잠시 깨었던 것은 아침이면 거지반 기억을 못 하는 사람이라 애가 밤중에 깨어 몇 번 울어보다가 이건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판단하고 그냥 포기하고 자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상당히 유력한 학설인 듯하다.)

정작 필자와 Y를 지치게 하는 것은 육아 노동 그 자체라기 보다는 좀 다른 것인데, 글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극성 팬들의 열광’이라고 할까?

처가 쪽에서는 처음 보시는 손자이고, 본가 쪽에서는 외손자를 이미 하나 보시기는 했지만 벌써 꽤 한참 전의 일이 되어 버렸고, 친손자가 외손자와는 다르다는 가부장적 분위기(?)가 웬지 감돌고 있어 그런지 양가에서 모두 기뻐하는 정도가 대단한지라, 틈만 나면 아기 재롱을 보겠다는 ‘공연 요청(?)’이 쇄도하는 것이다.

게다가 JY는 장난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필자나 Y의 어릴 적 내력을 고려한다면 그가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핏줄이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깨어 있는 동안 격렬하게(?) 장난을 치고 얼마 못 가 졸려서 픽 쓰러지는 양상이다. 최근 즐기는 가장 격렬한 장난은 책만 보면 (대개 시사 주간지 종류) 맹렬하게 돌진해서는 책과 데굴데굴 구르면서 격투(?)를 벌이고 결국 발기발기 찢어 놓는데, 타잔이 악어와 격투를 벌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는 시사 주간지의 논조가 맘에 안 들어 그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필자와 함께 누워 잡지 보는 것을 즐긴다.)

하여간에 장난치기라면 사죽을 못 쓰고 깔깔거리고 웃으니 양가 할아버지들이 그 모습을 보고 거의 정신을 잃는데, 세상에 어느 할아버지가 손자 귀여워 안 하겠는가마는, 워낙에 인기가 높다보니 한주라도 공연 스케쥴을 거를 수가 없다는 데에 우리의 아픔(?)이 있는 것이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쪽은 일주일에 고작 한번씩의 감질나는 공연이겠지만 공연을 하는 쪽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이다. 주말에 양가에 한번씩 들르는 스케쥴을 소화하다보면 주말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 된다. 자식된 도리로 이것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인데 불평을 어찌 할 수가 있겠는가? 라고 투덜거리지 말라고 얘기하진 마시기 바란다.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들 모두 금주의 공연 스케쥴을 확인하느라 바쁘지, 혹시라도 너무 힘들면 안 와도 된다든지, 빈말이든 그 비슷한 것이든 하시는 법이 없는데, 뭐 하긴 그러다가 정말 안 와버리면 큰일이니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열렬 팬클럽 회원들은 스타가 나타나는가 아닌가에나 관심이 있는 법이지, 그 ‘로드 매니저’들이 피곤할까봐 걱정할 리는 만무한 일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로드 매니저라는 표현이 여러 모로 어울리는 것이, 때로 하루에 ‘두 탕’을 뛰어 이쪽 갔다 이어서 저쪽으로 가는 일도 가끔은 있는데, 이런 공연 스케쥴이 꽉 찬 날은 차로 이동을 하는 동안 우리의 스타께서는 차량으로 이동 도중 부족한 잠을 보충한 다음, 다시 무대에 내려 놓으면 재롱을 떨기 시작하는, 프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니, 돈이 안 된다 뿐이지 우리 가족은 참으로 성공적인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애 키우는 것, 힘든 것도 가지가지다.

199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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