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이야기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0년 8월 나는 마취과의 인턴으로 가게 되었다. 7월을 내과 중환자실에서 30일 간 계속 당직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보내었던 나는 그 감옥살이와도 같았던 중환자실에서의 근무를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뻐 날뛸 지경이었다. 몸도 마음도 한 달 동안의 고생 끝에 팍삭 삭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마침내 말년에 진정한 자유를 찾은 빠삐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마취과에서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다소 긴장은 되었지만 지금까지 겪은 일에 어찌 비하랴! 마취과에서의 일에 대한 간단한 orientation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감격스럽게도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나! 이런 별천지가 밖에 있었다니! 한 달 간 거의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더니만 무슨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나 길가는 아가씨들이 왜 이리 죄다 예뻐 보이는지… 헤벌레… 침 겔겔…(흠, 흠, 체통을 지켜야지…)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마취과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인턴들의 임무는 주로 수술 도중에 환자 곁을 지키면서 환자의 혈압과 맥박 수 등 상태를 계속 살피는 것이었는데 인턴에게 맡겨지는 수술이란 대개 별 문제가 없는 수술들이라 사실은 무척이나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야 약간 긴장하게 되지만 순조롭게 수술이 진행되고 환자의 상태가 안정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긴장이 자꾸 풀리려는데 억지로 긴장하는 일도 꽤나 힘든 일이다. 그러다 보니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 유일한 낙은 점심 시간이다. 커다란 수술장에서 일하는 마취과 인턴과 전공의가 여러 명이다 보니 각각 원하는 식사를 시켜 놓아도 언제 그 식사가 왔는지 알 도리가 없다. 따로 점심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눈치껏 시간을 내어 잠시 먹고 또 일하러 가야하는 판국이다. 그래서 밥이 배달된 것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이 수술장내 방송을 내어 준다. 그 방송의 내용이란 것이 좀 해괴한 것인데, 예를 들면 “마취과, KL, KL…” 또는 “마취과, CL, CL…” 이런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남들이 들으면 전혀 해독이 안되겠지만 알고 보면 참 한심한 소리다. KL은 Korean lunch, 즉 설렁탕, 김치 찌개 등등이고 CL은 Chinese lunch, 즉 짜장면, 짬뽕등을 말하는 것이다. 방송이 나면 각자 자기가 시킨 음식이 왔구나 하고 알게 되고 그 후로는 호시탐탐 틈을 노리다가 잽싸게 가서 먹어치우는 것이다. 별 웃기는 인간들 다 보겠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점잖은 체면에(?) 방송에다 대고 “아무개야! 빨랑와, 짜장면 불어!” 할 수는 없질 않는가? 이런 생활을 하다보면 밥 먹는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끼니 해결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이며 엥겔 계수가 무척 높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밥 먹는 속도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았던 나는 덕택에 밥 먹는 속도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뛰는 놈 위엔 또 나는 놈이 있더라만…) 지금도 엔간하면 같이 밥 먹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일이 없는 편이다. 남들이 보면 ‘쯔쯔… 얼마나 없이 자랐으면 저렇게 허겁지겁 먹을까?’하면서 연민의 정을 느낄지 모르지만 말이다.

헌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기만 하면 흠씬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이 온 몸이 녹작지근하고 나른해서 잠시 자리에 누었다 싶었는데 눈을 떠보면 어느새 다음 날 아침인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지난 달의 피로가 아직 안 풀려서 그러려니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제 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몸이 뭔가 잘못 되버린 거야! 나 오래 살고 싶은데, 흑흑…’ 헌데 이상한 것은 나와 같은 증세를 느끼는 인턴이 또 있다는 사실이었다. 곰곰 생각하던 끝에 드디어 나는 답을 찾아냈다. 마취 기계에서 나온 마취가스는 관을 거쳐 환자의 숨을 통해 폐로 들어간다. 그런데, 환자가 내쉰 숨은? 내쉰 숨은 어디로 가지? 내쉰 숨에도 마취가스는 섞여있다. 환자가 내쉰 숨이 나오는 관을 scavenger라고 하는 마취가스를 흡입하여 처리하는 관에 연결하여 빠져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을 모른 채 놔두었기 때문에 그 마취가스는 고스란히 수술장 안으로 새어나왔고 그 대부분을 바로 옆에 있는 내가 마셨던 것이었다. 헥… 완전히 마취 당한 채로 살았었군! 연결을 올바로 하여 마취가스가 새지 않도록 한 후부터는 몸 상태가 거짓말처럼 가뿐해졌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기를 의사들이 무척 술을 많이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들 전체를 술꾼의 집단으로 매도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잠시 즐기기 위해서, 친구들과의 시간을 위해서 ‘술을 마실’ 뿐이지 정말로 ‘술에 먹히는’ 사람은 실제론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젊은 혈기에 기분 내다보면 때론 과음하기도 하는 법, 의사들은 대부분 술과 일이 얽힌 웃기는 에피소드를 한 가지 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뻗을 지경으로 밤새 술을 퍼 마시고도 다음 날 아침 늠름히 일어나 맡은 바 임무를 완수했노라는 무용담도 있고,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 알콜 솜에서 나는 알콜 냄새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껙껙 토해가면서 일을 했다는 가련한 이야기도 있다. (불행히도 후자는 내 이야기다.) 그 때 같이 마취과에서 일했던 동료 인턴 가운데 ‘까치’라고 불리우는 친구가 있었다. 왜 그가 까치라고 불리는지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현세 만화에 나오는 까치 오혜성하고는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데… 아마도 그의 성이 ‘조’씨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가 아닐까? (이해가 안 되신다고요? 그럼 성이랑 이름이랑 붙여서 불러보시면…) 어느 날 그는 저녁에 술을 진탕 마셨다. 기분 좋게 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 날 출근하여 수술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날 마신 술이 탈이 난 것이다. 술 마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과음한 다음 날의 숙취란 정말 지독한 것이다. ‘난 왜 이럴 줄 알면서 술을 마셨을까? 멍청한 놈!’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빠개질 것처럼 아픈 머리를 쥐어뜯게 되고야 만다. 좀 일어나서 움직여 보려면 하늘이 노래지면서 뱅뱅 돌고 속에선 구역질이 올라온다. 우리의 불쌍한 까치군도 뒤집히는 속을 억지로 참느라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를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질 않는가. 애타게 사람을 불러 대신 자리를 지키게 하려 하여도 마침 손이 모자라 아무도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도저히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던 까치군은 마침내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절박한 순간에 혹자는 이를 악물고 토하면 국물만 빼내고 건데기는 도로 먹으면 되쟎냐고도 하지만, 츳…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는가. (에구 더러워!) 깨끗해야만 할 수술장 바닥에 오물을 토해서 냄새를 진동케 할 수는 없는 일, 까치는 궁리 끝에 쓰고 있던 수술 모자를 벗어서 용건을 처리하고는 시침 뚝 따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수술이 끝나서 수술장에서 환자를 데리고 나갈 때에는 어느 틈엔가 멀쩡하게 수술 모자도 쓰고 있었다. 아무도 환자 머리에 씌워 놓았던 수술 모자가 온데간데 없어진 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앞으로 수술장에도 비행기, 고속버스, 여객선처럼 비닐 봉지를 비치하면 어떨까?

한 가지만 더 웃지 못할 일화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는 아니고 동료 인턴이 경험했던 이야기다. 정형외과 수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척추 마취만을 하였다. 다리 부위의 수술이었으므로 하반신의 감각만 마비시키면 충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환자는 수술 부위의 통증은 전혀 못 느끼지만 의식은 말짱한 상태였다. 헌데 수술을 하다 보면 출혈이 생기기 마련이고 지혈을 위해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 Bovie라는 상품명으로 불리우는 전기 소작기로 혈관을 지져버리는 것이다. 그러고 있노라면 당연히 불고기 냄새, 아니 비계 태우는 역겨운 냄새와 연기가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수술을 시작할 즈음에는 불안한 나머지 주위에 신경을 전혀 쓸 수 없었던 환자가 조금 진정하게 되자 이번에는 코를 자극하는 야릇한 냄새가 궁금해졌고 환자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던 우리 동료 인턴에게 물어 보았던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죠?” 에… 또… 마… 이럴 땐 뭐라고 이야기 해 줘야 하나. ‘댁의 뼈와 살이 타는 냄새요.’ 라고 말해 줘야 하나? 그는 수술 동안 내내 환자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려 온갖 농담을 쥐어 짜내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마취과에서 의사로서 내가 배운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기관삽관(氣管揷管: intubation)과 기도의 확보 기술이다.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므로, 환자가 숨 쉴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으로 기관 삽관을 하였을 때의 그 짜릿한(?)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취과에서의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어가던 어느 날, 마취 유도 (induction)을 하던 수석 전공의가 나에게 후두경 (laryngoscope: 기관삽관 시 쓰이는 도구)과 E-tube (endotracheal tube: 기관에 삽입하는 관. 이를 통하여 호흡하게 된다.)를 넘겨 주었을 때의 그 팽팽한 긴장감이란! 후두경으로 조심스럽게 환자의 혀와 후두개(epiglottis)를 젖힐 때 나는 거의 무아의 경지였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낸 눈이 시리도록 하얀 빛깔의 성대 (聲帶, vocal cord)! 그 사이로 E-tube를 밀어 넣고 그것을 통해 환자의 양 폐로 공기가 불어 넣어지는 소리를 청진기로 듣는 것은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뒤로는 그런 멋진 기분을 느껴 볼 기회는 없었다. 그 후에 내과 의사로서 내가 기관삽관을 하는 때는 거의 언제나 절벽 끝에 매달린 듯한 절대절명의 순간들이었으니까. 그 매 순간마다 어느 목숨은 이 쪽으로, 다른 목숨은 저 반대 편으로, 각기 운명의 길이 갈리워졌던 것이다.

마취과라는 곳은 참으로 음지에서 빛을 받지 못하는 곳인 것 같다. 환자들은 그들을 수술해 준 의사에게는 고마워해도 그들이 무의식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을 보살펴 준 마취과 의사들의 노고를 생각하지는 못한다. 헌데, 아무리 최선의 주의를 다해도 언젠가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번에는 모든 비난이 마취과 의사에게 쏟아진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들은 언제나 ‘잘 해야 본전’ 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내과 의사가 되어 별로 마취과와는 인연이 없는 일들을 하게 되어버렸지만 환자가 스스로를 전혀 지킬 수 없는 무의식 상태일 때 환자를 지켜야 하는 마취과 의사의 일이란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우리가 편안히 쉬고 있을 때,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는 누군가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1994.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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