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에 대하여

제목이 이상해서 이 글을 들추어보신 분들 중에는 이자가 그간 몇 편 시답지 않은 글 올리더니 이번엔 무협지를 연재하려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의 무협지 내공은 1갑자에도 못미치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니 애당초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관련은 있겠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의사도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런지? 의학 지식의 창조자, 연구자로서의 의사는 분명 과학자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지식의 소비자로서의 역활, 즉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가로서의 의사는 단순히 과학자라고 단정짓기 힘든, 무척이나 복잡한 존재이다. 임상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자연과학으로서의 의학 뿐이 아니다. 그들은 통계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사회학, 윤리학, 보건학, 그리고 건전한 상식(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을 필요로 한다. 필요한 것은 학문과 지식만은 아니다. 때로는 호신술이 필요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말재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으로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우리 병원의 레지던트들은 흔히, 특히 당직을 서고난 다음 날 아침, 서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야, 너 어제 ‘내공’ 괜찮았니? 난 밤새 아무 일 없었거든.”
“그래? 야… 너 ‘내공’ 끝내준다. 난 어제 완전히 ‘내공 파열’이었어.”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무슨 소림사 제자들인가? ‘내공’이 어쩌니 저쩌니… 설명하기에 앞서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두 인턴…

“오늘 밤은 정말 한가하네? 왜이리 환자가 안오지?”
“야! 너 무슨 그런 ‘내공’ 새는 소릴 하는 거야? 너 빨리 나무 잡어! 빨랑!”

‘내공’이 샌다? 나무를 잡어? 어쩐지 미신의 냄새가 펄펄 풍긴다. 하지만, 철저한 유물론자이며 이성의 화신(?)이라고 자처하는 필자이지만 ‘그 어떤 설명하지 못할 힘’, 즉 ‘내공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어째서 똑같이 하룻 밤을 당직을 서는데 어떤 사람은 밤새도록 씩씩 잘만 자는데 어떤 사람은 밤새도록 이리뛰고 저리뛰고 몸을 두 쪼가리내도 모자랄 정도로 일이 터지는 것인지, 왜 한달 내내 멀쩡하던 환자가 달이 넘어가 새로운 주치의가 오면 (그것도 특정한 인물이) 갑자기 이유 없이 상태가 나빠지는지, 반대로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이 난리를 치던 병동이 주치의가 갈리면 (역시 특정한 사람으로) 웬일인지 쥐죽은듯이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갑자기 되찾는지,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내공이 세다’고 우리가 표현하는 사람들 간에 어떤 표면적인 공통점을 찾을 순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똑같은 상황하에서도 웬지 다른 사람보다 일이 잘 풀려나간다. ‘내공이 약하다’, ‘허공이다’, ‘또는 물내공이다’등 여러가지로 표현되는 경우는 웬지 일이 자꾸만 꼬이는데다가 자꾸 일이 더 생기기까지 한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할까. (아니, 금상첨화던가?) 내공은 느닷없이 ‘파열’되기도 하고 ‘새’기도한다. 위에 든 예와 같이 응급실에서 ‘오늘은 왜이리 조용하지?’하고 내공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함부로 한다면 다음 순간부터 엄청나게 밀려오는 환자들로 밤을 꼴딱 새우는 기막힌 일이 생기고야만다. 이 때 말을 한 다음에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을 잽싸게 잡으면 내공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이 전설의 유래나 근거에 대해서 알지를 못 한다.

필자는 레지던트 1년차일 때의 동료들간의 내공의 서열에서 그다지 처지는 편은 아니었다. 1년차 가운데엔 ‘3대 허공’이 있었다. (무협지에 보면 ‘강남 7협’이니 어쩌구 하는 소리들이 나오죠?) 그들이 내공의 부족으로 인해 겪는 고초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같은 전공의가 보기에도 그야말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헌데 2년차가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갑자기 3대 허공의 멤버 중 한 명이 바뀌었는데 불행히도 그게 나였다. 전공의 생활이라는 게 그래도 년차가 올라갈 수록 조금이나마 편해지는 맛이 있기 마련인데 2년차로서의 첫 3월은 나에게는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든 한 달이었다. 새로 생긴 병동의 주치의로 배치되어 통상적으로 보는 환자 수의 거의 두 배를 혼자서 떠맡아야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짧은 임상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는 자신이 맡은 환자들의 차트를 모아 한꺼번에 들어 안았을 때 그 무게가 벅차다고 느낄 정도의 숫자라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맬더스의 인구론을 들먹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인구의 증가 뿐 아니라 환자 숫자의 증가에 따른 주치의의 일의 양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또한 그 일을 제대로 버텨내는데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그 한계를 넘어설 때에는 처절하게 고생을 하기 마련인데, 2년차가 되자마자 이런 지경에 빠진 것이다. 나의 내공 파열의 후유증은 여기에 그치질 않았다.

중환자실에 가자마자 엄청난 환자들을 맡아서 여러 날 잠을 멀리해야만 했다. 멀쩡하던 환자가 들어와서는 느닷없이 급사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겪은 고생담은 다른 글에서 썼던 바 있다.) 그럴 때면 ‘이 환자가 내공이 허약한 나를 만나 이런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내과의 ‘3대 허공’중의 하나임을 완전히 확인시켜준 것은 역시 응급실에서였다. 큰 병원의 응급실이란 흔히 아비규환의 전장터를 방불케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흐르는 거칠은 ‘강호’인 것이다. 이런 곳에서 믿을 것이라곤 정말로 내공밖에 없다! 내과 담당으로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의 주치의가 있었고 각각 2명씩의 인턴을 거느리고(?) 있었다. 6명의 인턴은 차례로 돌아가면서 새로 오는 환자를 담당하게 되고 그 때 그 환자가 내과의 환자이면 그 인턴과 묶여져 있는 주치의가 그 환자의 담당이 되게 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자기 밑의 두 인턴이 내과가 아닌 다른 과의 환자만을 계속 받게 된다면 하루 종일 탱자탱자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서로 간의 내공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무척이나 비정한 일이지만 여럿이 같이 일할 때 한 명의 내공이 특히 부실하면 다른 사람들은 훨씬 널널해지기 마련이다. 일이 온통 그 사람에게 쏠리니까. 그래서 2년차 초반 몇달간 엄청 고생을 한 나는 다른 두 명 중 한 명이 1년차 때의 ‘3대 허공’중의 한 명이라는 것에 무척 위안이 되었다. ‘요번 달은 좀 편히 지내보려나보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달 내내 우리 세 명의 담당 환자 숫자의 비율은 1:2:3을 유지하였다. 물론 ‘3’이 나였지… 쩝…

주말이 되면 환자 숫자가 좀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는데, 나는 내 나름대로는 무진 애를 써서 환자들을 집으로 보내고, 입원도 시키고 하여 무척이나 줄였다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동료에게 다가가서는 ‘야, 니들 몇 명이냐? 나 10명밖에 안돼!’ 하면 이자들은 ‘너 힘들어서 어쩌니? 난 2명밖에 안 되는데?’, ‘야, 야, 내공 좀 써라! 난 5명이다!’ 으… 기죽어…. 꺅… 열받어!

그래서 ‘3대 허공’ 중의 하나로 강호의 고수들과 힘겨운 대결을 치러내며 이날 이때까지 레지던트로 지내온 역정을 되돌아보노라면 허탈한 웃음밖에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그 허약한 내공 덕택으로 많은 경험을 했고 내공은 허약할 지라도 외공의 기는 많이 닦여졌으리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내공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으로서 이를 바꿀 방법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무척 실망스런 학설이다. 또 다른 이들은 ‘총 내공 불변의 법칙’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즉 내공의 총량은 일정하므로 초년에 내공 부족으로 고생한 사람은 말년에 강력한 내공을 발휘할 것이라는 다소 위안이 되는 학설이다.

어쨌거나 간에 다들 힘들고 고생스런 생활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남들보다 더 고생스럽게 지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짜증스런 일이다. 그런 탓에 성격 드러워지고(?) 마음은 황폐해지고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동 받는 아름다운 모습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다. 하지만 시련은 사람을 강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외유내강’한 사람이 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내공이든 뭐든 간에 조금씩은 –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렵고 고통스런 걸음이겠지만 – 앞으로 나아가고 더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갈 수만 있다면 순교자적인 인내로 참아낼 만도 하지 않은가?

고수의 길이란 멀고도 험한 것이다. 나도 이제는 좀더 향상된 내공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혹시 엄청난 내공을 쌓아서 얍!하고 환자의 혈만 턱턱 짚으면 치료가 된다던가, 환자랑 서로 손바닥 붙이고서 눈 부릅뜨고 식은 땀 흘리면서 잠시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 (무협 영화에 보면 흔히 나오는 장면인데…) 병이 말짱 낫는다든지, 뭐 그런 수가 없을까? 에고… 또 헛소리했네. 빨랑 나무 잡아야지…

199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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