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의 사관(士官) (1)

흔히 군대 이야기는 평생 술안주 감이라고들 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가장 큰 공감대라고도 한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절의 고생담을 심심치 않게 남들에게 얘기하게 되고 또 드물지 아니하게 그 이야기는 소주 한잔의 힘을 빌어 고생담이나 경험담의 차원을 넘어서 거의 무용담의 수준으로 비화되곤 한다. 필자는 국가관이 희박해서인지 나약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군대가 사람을 만든다느니, 남자라면 모름지기 군대를 다녀와야만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느니 하는 말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군대를 다녀와야만 사람이 된다면 군대를 안 다녀온 사람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곱게 키운 우리 딸, 방위 사위 웬말인가!’ 하는 표어도 있다던데 군대가 뭐길래 이런 말이 나오는지. `동방불패’ (동네 방위는 불쌍해서 패지도 않는다.) 나

청평에서의 단상

나카하라여 지구는 겨울이라 춥고 어둡네. 그럼 안녕히 – ‘공간’, 구사노 심페이 (草野心平) 무진장 목이 말랐다. 물주전자를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셔댔는데도 갈증이 가시질 않는다. 계속 괴로워하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헌데 실제로 정말 목이 말랐던 것이다. 더듬더듬 주변을 더듬어 물주전자를 찾아 이번엔 진짜로 벌컥벌컥 마셨다. 옆자리에선 누군가 코를 골면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골치가 약간 띵해 오면서 어제의 기억들이 살아난다. 10월로서 병원에서 전공의로서의 나의 근무는 끝이 났다. 지금부터 1월까지는 그저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하여 공부만 들입다 하는 기간이 될 것이고 무척이나 즐거운 것은 그래도 월급은 받아먹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병원이 무노동 무임금이라고 외친다면 나도 그럼 법대로 하자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지하철에서 가방 잃어 버리기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수들의 경험이 쌓여가면 남의 실수이든 자신의 실수이든 엔간한 것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대범한 태도를 취할 여유도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이런 득도(?)의 경지에 도달하자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의 경험을 쌓아 가는 것은 참으로 힘들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그 실수가 황당한 것일 수록 값진 경험은 되겠지만 그 실수를 저지른 자신에 대한 분노를 삭히는 일은 꽤나 정신 건강에 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꼼꼼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한 성격 탓에 이 날 이 때까지 살아 오면서 ‘아차!’ 라든지 ‘앗!’ 등의 외마디 비명을 지를 일이 심심치않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실수들로 인해서 나 자신이나 남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준 일이 없다는

나는 배달의 기수(?)다

낫살도 몇 먹지 않은 주제에 이런 소리하면 좀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란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 수록 ‘왜’, ‘어째서’ 라는 질문을 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아이에서부터 어른이 되어가고, 마침내는 어른이 되는 지경을 넘어 늙어가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 무렵이 되면 (하지만 나는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떨어져 나가도록 머리를 흔들며 부정하려고 애쓴다. 내친 김에 얘기지만 나이 30이 뭐가 많단 말인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는 경우의 가지 수는 늘어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경우는 무척 줄어든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할 마음조차 먹지를 않는다. 그리곤 생각한다. ‘음… 난 역시 현명해…’ 보다 완벽한 바보가

나의 데뷔 시절 (2)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은 정녕 헛된 것인지. 시험이란 마물은 참으로 죽어라고 우리를 따라다닌다. 졸업을 해서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렸다고 해서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는 것은 그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언젠가 썼듯이 고달픈 인턴 생활의 몇 가지 안되는 낙 중의 하나를 들라면 학생 시절의 그 지긋지긋하던 시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노예 생활(?) 속의 작은 위안(?)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이란 세월은 얼마나 허망하게도 지나가 버리는 것인지. 슬슬 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서 인턴들의 마음은 바빠졌다. 레지던트 선발 시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살 길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면서 몸도 마음도 황망하다. 뭔가를 선택한다는 일은 경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