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예찬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40 여년을 몸 꼼지락 거리기를 어지간히도 귀찮아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허걱’ 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운동 중독자 내지는 좀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로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불과 수 개월 만에.

필자는 순환기내과 의사로서 협심증, 심근경색증을 이미 가지고 있는 환자들 뿐 아니라,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흡연에 찌들어 이미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매일 같이 접하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심장질환의 예방과 재활을 주된 전문분야로 삼고 있는 입장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규칙적인 운동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지 오래다. 그러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어려서부터 운동에 별 자신도 없고, 뭔가 운동을 배워도 그리 남달리 뛰어난 법이 없었던 탓에 그냥 난 운동이랑은 별로 인연이 없는가 보다 하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던 타성에 깊이 젖어 있었다.

필자가 보는 환자 중에는 체중을 10 kg 이상 감량하고, 혈당과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약을 쓰지 않고 조절해내는 분들도 있다. 튀어나온 뱃살을 멋지게 빼고 나타나 확연히 달라진 검사 수치를 확인하고 만족해 하는 그 분들은 물론 운동과 식이요법을 비롯한 피나는 노력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정말로 쉬운 일도 아니며 사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큰 성취를 이뤄 낼 수 있는 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해주는 것이 직업적인 일의 일부인 필자가 운동과 담을 쌓은 사람이라니 말이 되는가! 직업적인 사명감에서라도 필자는 운동을 해야만 했다.

헌데, 운동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여유가 없고 시간에 쫓기는 생활은, 정작 시간이 남을 때에도 그것을 운동을 하는데 쓰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편리한 세상이기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은 그것에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아이러니에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에서부터 차를 몰고 직장까지 간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까지 올라가서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차를 몰고 헬스 클럽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헬스클럽으로 올라가서 러닝 머신 위에서 열심히 뛰면서 땀을 뺀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차를 몰고 집으로 간다.

혹시, 혹시나, 위의 생활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를 모두 ‘계단으로’ 로 바꾸고, ‘차를 몰고’를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꾼다면, 만약 그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뛰면서’ 는 없어도 그만 아닐까? 그렇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할 필요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사실 그전부터 ‘계단으로’는 실천하고 있었다. 많은 양의 운동은 아니나 그 활동과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을 타고난 덕택에 건강에 별 문제 없이 지내오기는 했으나, 체중이 늘지 않는다고 문제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팔다리는 흐물흐물 가늘어지면서 배는 나오기 시작하면서 올챙이 몰골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해결책은 ‘차를 몰고’를 다른 뭔가로 바꾸는 일이다!

게다가 필자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직장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어떠한 중대 결심이 없는 한 이 ‘차를 몰고’ 부분은 필자의 인생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시간 – 거의 하루 2시간 가까이 – 을 잡아먹게 될 판이었다. 이것을 다른 무언가로 대치할 방법이 무엇일까. 편도 16.5 km의 거리를 걷거나 뛰어서 출퇴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가능하진 않을지라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므로 현실적이지 못하다. 취미를 붙여보고자 잠시 배웠던 인라인 스케이트도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그다지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는 바퀴가 작기 때문에 도로의 요철에 취약하다. 젖은 길, 모래나 흙이 깔려 있는 길에서도 맥을 추지 못한다. 아주 평탄하고 포장이 말끔하게 된 길이 아니라면 꽤 부담스러울 것이다.

최선의 해결책은 바로 자전거였다. 자전거는 레저스포츠를 넘어선, 도시의 거의 어떤 곳이든 갈 수 있는 완벽한 교통 수단이다. 결국엔 이따금씩,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번쯤이나 시간을 내어 운동 삼아 타던 자전거를 출퇴근 수단으로 삼아보리라는 (자전거 출퇴근 – 이하 ‘자출’로 약(略)하여 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을 얘기하자면, 이상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사를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이사 갈 곳을 물색하였다. 서울의 일반도로에서 차들과 부대끼면서 자출한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려니와 제법 스트레스가 큰 일이다. 최대한 한강과 천변의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코스여야만 했다. 다행히도 필자의 직장은 탄천 또는 양재천의 자전거 도로에서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출을 위한 거의 환상적인 코스를 구성하였는데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다.

D-day로 잡은 어느 봄날, 약 50여분을 헐떡대면서 달려서 자전거를 끌고 사무실에 도착하여 의자에 풀썩 주저 앉아서 허벅지의 뻑적지근함과 드디어 해냈다는 뿌듯한 느낌을 동시에 만끽하던 순간은 참으로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후, 일주일에 거의 세 번 이상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후의 몸의 변화는 필자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 주었다. 원래 마른 체형이라 빠질 살이 있겠는가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필자는 5개월 만에 약 4 kg 가 빠졌고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다는 말을 건넬 지경이 되었다. 허리띠 구멍 한 개가 줄어들어 버렸다. 살이 쪄서 고민하는 분들에게 돌을 맞을 소린진 모르겠으나, 지금 필자는 17년 전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의 체중이 되어 버렸고 더 체중이 줄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는 분명 그전에 ‘가끔씩’, ‘시간을 내어’ 자전거를 탈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출 시작 두 달째에 접어들자 출퇴근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휴, 힘들어, 헉헉, 좀 쉬어갈까, 그냥 갈까, 아니 잠깐 서서 물  한 모금만 마시고 숨 돌리고 갈까’ 하는 생각을 끝없이 하면서 꾸역꾸역 어거지로 페달을 밟아서 출퇴근을 하던 처음과 달리, 지금은 그냥 별 생각 없이 그저 달리다보면 직장에 (또는 집에) 도착하곤 한다. 드디어, ‘이거 별로 운동이 안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비가 오거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는 날들이 이어져 며칠 자전거 출퇴근을 못하면 뭔가 몸이 찌뿌둥하고 축 쳐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쾌감을 얻기 위해서 자꾸만 양을 늘려야 하고, 금단 증상이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이건 ‘마약’의 정의에 나오는 얘기 아닌가! 아무래도 말로만 듣던 운동 중독증에 걸린 모양이다. ‘게으름 부리는 것도 내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라는 궤변적 철학으로 살아오던 필자가 운동중독증이라니! 스스로도 믿기 힘든 상황이지만 싫진 않다.

자출이 필자에게 준 것은 줄어든 허리 사이즈와 좋아진 체력과 단단해진 허벅지만은 아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일견 엄청 부지런해보이는 일이, 게으름부리며 빈둥거리기를 일생일대의 취미생활(?)로 삼는 필자에게 딱 들어 맞는다는 이상스런 역설이 성립하는 것은, 자전거야말로 우리들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즐거움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은 무념무상의 순간이다. 바람을 맞으며 오직 페달을 밟는 데 집중한다. 잠시나마 그렇게 머리를 깨끗이 비우는 순간이 과연 있는가? 언덕길에서 차오는 숨과 뻐근해져 오는 허벅지의 고통은 내가 살아 있음을 완벽하게 깨닫게 해준다. 참으로 오랜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나의 몸이 나에게 ‘어이, 나 알지? 네 몸뚱아리, 나 여기 있어’ 라면서 신호를 보내주는 반가운 순간이다.

현대 사회는 속도를 광적으로 추구한다. 시간은 돈이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질주한다. 그것도 편안한 마음이 아닌 초절정 레이싱 모드로, 앞을 가로막는 차를 엄청난 경적과 하이빔으로 제압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속도에 대한 집착은 지긋지긋하고 속터지는 거리의 교통 정체로 이어진다. 그러한 현대 사회에서 내 발로 굴러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우직함으로, 그래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조금 느리게 남들과는 거꾸로 가겠다는 선언을 한다는 것, 그래서 인간을 압박하는 산업사회의 무시무시한 속도전에 반기를 드는 이 발칙한 반란의 도당이 되는 것은 참으로 통쾌한 일이다.

그리고 이 느림보 교통수단은 오히려 더 빠르기까지 하다. 필자의 직장까지 자전거로는 50분 (운이 좋아 뒷바람이 불면 그 이하로) 걸리는데, 지하철로 가면 (한번 갈아탐) 한시간이 걸린다. 차로 달리면 교통 사정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지만 빠르면 30분, 가장 차가 밀릴 때는 한시간 가까이 걸린다. 자전거는 버스나 지하철 등의 대중 교통 수단보다는 더 빠르기 까지 한 것이다. 기름값 절약은 덤이다.

자전거는 인류가 만든 그 어떤 교통 수단보다도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자랑한다. 자전거의 엔진은 ‘사람’이다. 화석 연료는 물론 필요 없다. 밥만 먹으면 그만이다. (밥을 조금 많이 먹어야 할 수도 있기는 하다. ^^) 우리가 먹는 음식은 궁극적으로는 태양의 에너지에서 유래한 것이니 자전거는 결국 태양 에너지로 움직이는 최고의 친환경 교통수단인 셈이다. 사람도 물론 에너지를 쓰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엔진이지만, 자동차라는 괴물 쇳덩이를 움직이는데 드는 에너지와 거기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는 전혀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자동차는 자동차 회사와 정유회사에게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며 대기를 오염시키고 지구를 온난화시키지만, 자출하는 필자는 독수리 오형제와 함께(?) 지구를 지킨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한마디로 다른 생명체들보다 조금 머리 좋다는 것만 믿고 너무 까불고 있는 것이다. 몸은 그 옛날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숲과 들판을 헤매던 시절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엄청 먹고 손가락 하나 까닥 않는 생활을 하면서 푸짐한 뱃살과 함께 성인병을 키우고, 땅속의 화석 연료들을 박박 다 긁어내어 태워서 허공으로 날리며 대기를 더럽힌다. 자출을 하는 필자도 그 모순에 가득찬 현대 사회를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물론 여전히 차를 몰아야 할 때가 자주 있고 전기도 쓰고 휴대폰도 쓰고 인터넷도 쓰지만, 그러나 자출하기 전과는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산업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실천 가능한 일, 내 몸을 단련할 뿐 아니라 마음도 수련하는 일, 무시무시한 속도 속에 우리를 내모는 현대사회에 대한 반란이기도 하며, 나아가 지구를 구하는 대의명분까지 갖춘, 이 작지만 매우 실천 가능한 일, 자전거 출퇴근의 매력은 정말 뿌리칠 수 없다. 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테다!

2007.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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