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려 부셔 버리고 싶다!: Deep Purple – Machine Head

발표 연도: 1972
Ian Gillan: vocals
Richie Blackmore: guitar
Jon Lord: keyboards
Roger Glover: bass
Ian Paice: drums

Deep Purple ‘Lazy’, RIP Mr. Jon Lord… ㅠㅠ

어떤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터무니없이 미화하여 아련한 꿈 속같은 아름다운 분위기로 그리곤 하는데, 필자는 이에 전혀 동감할 수 없다. 본드를 마셨던 것도 아니고, 비행을 저질렀던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특별히 더 방황을 하면서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할 순 없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혼란에 빠진 순진한 바보였고, 주변 세상은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은 일들로 가득차 있었으며,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없는, 그래서 더 미칠 것만 같은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때라면 뭐든 간에 푹 빠져서 다른 모든 것들을 잠시 잊어 버릴 일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마약이라든가 폭력 써클이라든가 혹은 오토바이 폭주라든가, 아니면 뭐든 위험하고 자기 파괴에 이르는 것이 아니었음에 지금 안도할 따름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것은 락 음악이었다.

락 음악은 결코 ‘건전 가요’가 아니다. 반항적이고 삐딱하고 위태위태하고 충동적이고 불경하고, 도발적이고 음란하며, 또 악마적이고 파괴적인 광기를 발산한다. 실은 다른 사람에게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은 음악이고, 지금도 이를 즐겨듣는 필자이긴 하지만, 만일 자식이 락 음악에 심취한다면 조금은 걱정스럽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세상 모든 것이 답답하고, 그래서 그냥 모든 것을 확 뒤집어 엎어 버리고 싶은 사춘기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필자가 들었던 소위 ‘클래식 락’에 매료될 것 같지는 않긴 하지만) 무엇에라도 빠지고 미치고 중독 되는 것이 본래 인간의 속성일까? 아니면 세상이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어쨌거나 간에, 그저 음악을 듣는 것 뿐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서론이 길었는데, 필자가 락 음악에 푹 빠져 청춘의 한때를 보내게 된 (무슨 할아버지 같은 소릴?) 그 계기가 된, 그래서 지금도 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 앨범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Deep Purple하면 생각나는 그들의 대표곡 ‘Highway Star’가 이 ‘Machine Head’ 앨범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Richie Blackmore와 Jon Lord라는 특급 기타리스트와 건반 주자를 투톱으로 내세우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제 2기 Deep Purple의 막강한 힘을 잘 보여주는 곡이다. 질주하는 듯한 힘찬 8비트 리듬에 실린 ‘바로크 스타일’의 존로드의 건반 연주와 치밀하게 더빙된 리치 블랙모어의 완벽한 더블 기타 연주, 절규하는 이언길런의 보컬(그의 진가를 느끼려면 ‘Child in time’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뭔가 때려 부시고 뒤집어 엎어 버리고 싶은 사춘기였던 필자의 가슴을 송두리채 흔들어버린 곡이다.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확 치밀면서 온 몸이 부르르하는 그런 느낌… 그 감동의 물결은 판을 뒤집어 ‘Smoke on the water’를 들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많은 어설픈 아마츄어 락 밴드들의 꿈이 이 ‘Smoke on the water’를 한번 멋지게 연주해 보는 것이었다는 게 이해가 간다. (왜 ‘Highway star’는 아니냐고요? 음… 해보곤 싶겠지만… 좀 더 어렵겠지요? ^_^)

헌데, 락 음악이 중독성인 것은 틀림없는 것이, 자꾸만 빠져들게 되는 것 뿐 아니라, 같은 효과를 얻으려면 자꾸 용량을 높혀야 하는 ‘tolerance’도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햐, 이런 음악이 다 있군!’ 했던 감탄과 함께 들었던 앨범이지만 듣고 또 듣다 보니 어쩐지 시들한 느낌이다. 하긴 뭐, Metallica니 뭐니 소위 ‘thrash metal’ 음악들을 들어보면 Deep Purple 쯤은 정말 조신하고(?) 고전적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지금 이 ‘Machine head’ 앨범을 다시 들어보면 훌륭한 락 앨범이라는 생각만은 변함없지만, 그 시절의 그 전율스러웠던 감동은 다시는 오지 않는 것 같다. 음악의 ‘약발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나도 이제 늙은 걸까? 사춘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웬지 슬퍼진다!

Too old to rock’n’roll, too young to die

200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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