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망할 놈의 세상 : The 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발표 연도: 1977
Glen Matlock: Bass
Johnny Rotten: Vocals
Paul Cook: Drums
Sid Vicious: Bass, Vocals
Steve Jones: Guitar

Anarchy in the UK

(이 앨범의 노래 내용은 본 홈지기의 세계관 내지는 정치적 견해와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것은 락의 역사상 가장 도발적이고, 무례하고, 난폭하고, 불온하고 불경스러우며, 지저분하고, 야비한 앨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앨범을 도대체 ‘락의 명반’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조차 심히 의심스럽다. 이들의 적나라한 욕설과 야유로 가득찬 음악에 비하면 락의 명예의 전당에 고이 모셔진 레드 제플린이니, 핑크플로이드니 예스니하는 밴드들의 음악은 천상에서 고담준론을 논하는 천사들의 속삭임과 같이 아름답다.

그러나, 이 앨범들은 클래식 락의 시대에 탐미주의적으로 끝간데 없이 락 음악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을 추구하던 기라성 같은 밴드들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의미를 가진, 락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의 시발점이 된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해야만 할 것이다.

Punk rock 의 전설, Sex Pistols는 1975년 영국에서 결성되었고, 금지곡들과 폭동에 가까운 라이브 퍼포먼스, 보수주의자들의 테러 위협 등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단 한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 바로 여기 소개하는 이 앨범을 남겼다.

제목부터가 정말로 심상치 않다. ‘Never Mind the Ballocks’ (Ballocks가 무슨 뜻이냐구요? 여기에 쓰기는 뭐하니 궁금하면 직접 사전을 찾아보시길.) 가 과연 정확히 무슨 뜻인지 필자의 영어 실력(?)으로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앨범 전체의 분위기로 미루어 짐작컨대는, ‘조까튼 거뜰, 신경 꺼!’ 정도가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혹시 영어 육두문자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린다.

그래,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하지만 약간의 맘의 준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운드는 정말로 ‘개판’이기 때문이다. 징징거리는 기타 사운드는 거의 고장난 말뚝박기 기계처럼 피스톤 운동만을 하고 있고, 보컬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례하고 야비한 투의 목소리로 신경을 긁어놓는다. 천편일률의 8비트 리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면서 보통 2-3개, 많아봐야 4개 정도의 코드를 가지고 모든 노래를 소화해낸다. 한마디로 잘 봐줘야 고삐리 아마추어 락 밴드정도 수준의 연주이다. (하지만, 음정 박자는 정확하다. 다행히 악기들도 제대로 줄맞춤은 되어 있는 것 같다!) 듣다보면 이 친구들이 정말 이렇게 밖에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이것도 철저히 계산된 위악(爲惡)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필자는 핑크 플로이드나 제네시스 등 심오한 가사 내용에 상당히 치중하는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면서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당연하지!) 그들의 노랫말에 대해 아쉬워하고, 심지어 가사를 대조해가면서(?) 들어도 내용이 아리송할 수 밖에 없는 필자의 영어 실력이 안타까왔지만, 이 ‘Never Mind…’ 의 가사 내용을 보면서는 ‘아하… 그래, 이정도면 못 알아 들어도 별로 아쉽지 않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난무하는 비속어들과, 추하고 지저분한 화장실 낙서 수준의 거칠은 욕지거리들이 그대로 팍팍 튀어나오는, 그들의 가사 안에 나오는 말 그대로 ‘pile of shit’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계시거나 (God Save the Queen), 질서를 사랑하고 독실한 신앙을 가지신 분 (Anarchy in the UK), 생명을 신성히 여기는 낙태반대론자 (Bodies) 들에게는 특히 쥐약에 가까우니 이 앨범 근방 10미터 이내에는 접근을 삼가시기 바란다.

아니, 이런 한심한, 말도 안되는 음반을 도대체 왜 거론하는 거야? 집어쳐!라고 하시기 전에 조금만 다르게도 생각해볼 여유를 가져보자. 이 고전적인 펑크락 앨범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철저한 야유와 조롱, 당시 영국 노동계급의 현실에 대한 처절한 절망을 담고 있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부글부글거리는 분노와 증오가 마침내는 철저하게 파괴적이며 거의 무감각한 허무주의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고 저러고 말하기도 귀찮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냥 다 때려 부시고, 엎어버리고, 욕하고 침뱉고 야유하는 것이다.

꼭 들어봐야 할 명반이라는 소리는 이번만큼은 빼겠다. 이 앨범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순전히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이 앨범에서 너무 진지하게 뭔가 메시지를 찾으려고 하는 것 자체도 조롱받을 일일지 모르니, ‘뭐 이따위 음악이 다 있어?’ 하고 그냥 휘리릭 대충 들어보는게 적절한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딴 걸 왜 들어? 난 취미가 고상한 사람이거든’ 하면서 피해가도 인생에 큰 지장은 없겠다. 아니면, ‘이 망할 놈의 세상’하는 좌절감과 허탈한 분노를 느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이 ‘조까튼’ 음악을 – 이웃집이 난리를 치든 말든 – 최고의 볼륨으로 틀어 놓고 같이 뭔가를 마구 집어던지면서 분풀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중에 치울 때를 생각해서 깨지는 것은 미리 치워 놓으시길… 그리고 혹시 경찰이 출동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에 대해서는 책임 못짐!)

2001.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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