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그리고 건강

간단한 퀴즈 한가지를 풀어보자. 미국에서는 각종 의료 행위에 대한 ‘비용-효과 분석 (cost-effectiveness analysis)’가 상당히 중시되고 있다. 즉 같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경제적 관점에서의 분석이다. 그럼, 문제: 심장발작을 겪은 환자에서 이후의 경과를 좋게 할 수 있는 여러 조치 중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놀랍게도 ’의사가 담배를 끊으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비용은 거의 안 드는 것임에도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인 것이다. 물론 담배를 실제로 끊어야 효과가 나는 것이고 의사가 끊으라고 했다고 다 금연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의사가 한마디 충고하는 것만으로도 금연율은 다소 상승한다. 금연이 주는 건강상의 이득이 워낙 큰 것이기 때문에 그 ’약간의 상승‘만으로도 전체 집단으로 볼 때에는 엄청난 예후의 향상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은 의사 얼굴 한번 보는 값이 워낙 비싸서 그런지, 한 두 마디 말이라도 본전 생각(?)이 나서일까 환자들이 비교적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의사에게 ‘말 몇 마디’ 듣는 것에 돈을 내야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는 우리 나라에서 과연 의사의 담배 끊으라는 한마디에 금연율이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금연 권고에 대해서만 특별 요금을 메기면 어떨까?

하여간에, 그렇다면 금연 캠페인에 집중 투자를 하면 더욱 큰 효과를 거두겠군!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 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끔찍스러운 얘기지만, 금연 캠페인을 벌여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환자 외에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담배 회사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심장병 치료약들을 속속 개발해내고 있는 제약 회사들, 심장병 치료에 사용되는 최첨단의 의료 기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의료기기 회사들, 의사들, 병원들, 그 누구도 환자가 담배를 끊어서 더 이상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볼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재력을 가진 나라일 뿐 아니라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 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 엄청난 의료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지출을 하고 있는 중국 같은 나라와 평균 수명을 비롯한 각종 보건 지표가 크게 낫지도 않다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쓰게 된 것인가?

병을 예방하는 것이 일단 병에 걸린 후 치료하는 것 보다 작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두는 방법일 것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이 위의 예와 같이 도처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런데, 돈 적게 드는 방법을 놔두고 돈 많이 드는 방법에 계속 매달리면서 의료비를 부풀리는 주범은 누구인가? 의사들이 양심 불량인가?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회사들? 그들은 다 정당하게 (최소한 불법은 저지르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뭐가 진짜로 정당한 거냐고 물으면 너무 어려워지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이윤추구’라는 사회의 지상 목표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러운 자가 과연 있는가?

세상의 그 무엇 하나도 상품이 아닌 것이 없는 세상에서 의료라고 상품이 아니기는 쉽지 않다. 잘 팔리고 이윤이 많이 남는 상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을 그 누가 말리겠는가? 의사가 환자에게 담배 끊으라고 한마디 해주고 너한테 좋은 일 해줬으니 돈 내놔라하면 이 날도둑놈 봐라하고 당장 멱살잡이를 하려고 들겠지만, 이 약 하나 먹으면 만병통치요, (근데, 좀 비싸긴 하지만) 하고 약을 내놓았을 때, 주머니 사정만 허락하면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어느 것이 잘 팔릴만한 ‘상품’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아마도 그래서 첨단의 치료법들과 기적의 치료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투입되는 데 비해서는 금연 캠페인에 투자되는 돈은 미미한 것이리라.

 

그런데, 뭔가 달라지고 있는 조짐이 보인다. 필자는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열린 학회나 세미나 등에 참석한 자리에서 발표자들이 보여주는 슬라이드에서 딱 두 번 한자를 보았는데, 같은 문구였다. (필자가 한자에 무식하여 원문구를 기억하여 옮겨적지 못하는 참상을 양해하시기 바란다.) 그것은 한(漢)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로 ‘가장 훌륭한 의사는 병이 생기기 전에 병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난 한의사가 아니니까 하고 알리바이(?)를 세워 보긴 하지만 ‘황제내경이라고 유명한 책이 있다고 하더라’ 수준의 얘기 밖에 할 말이 없는 필자 앞에서 한자를 알 리가 전혀 없는 코쟁이들이 자기네들은 알지도 못 할 한자를 써 놓고 (아니 실은 그림 삼아 ‘붙혀’ 놓고) 떠드는 것에 대해 첨에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지만, 다음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치료 중심의 의학에서 예방 중심의 의학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것인가!

실은, 아무리 질병 예방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는 해도 아직 그것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 까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서양 의학의 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이지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은 아직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위에서 예를 들어 장황히 설명한 대로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는 치료약과 치료법의 개발을 마다하고 질병 예방에 돈을 쓸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은, 치료의학이 앞으로도 계속 주류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에 보다 믿음이 가게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분명 변화를 감지할 수는 있다. 미국인을 가장 많이 죽이는 질병이 심장병이고 보면 심장질환에 대한 관심은 엄청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에는 심장병을 보는 순환기 의사들이 숱하게 많고 따라서 미국심장협회 (American Heart Association; http://www.americanheart.org)는 가장 큰 규모의 의학회 중 하나이고 그 영향력도 대단하다. 1999년 가을, 이 학회의 연례 학술대회의 개회식의 주제는 ‘심장 질환의 예방’이었다. ‘심장병과 싸우는 중대한 사명’을 모토로 내세운 이들이 드디어 ‘예방이 핵심이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왜 달라진 것일까? 갑자기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모든 것을 잊고 오직 국민 건강만을 생각하기로 한 것일까? 드디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일까? 경험적으로 보건대는 세상에 그렇게 멋지고 훌륭한 일은 매우 드물다. 뭐,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순 없겠지만. 뭔가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그 이유는 이러하다. 핵심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 의료비에 있다는 것이다. 의료비가 증가한다는 것은 의료관련산업이 번창하고 많은 이윤을 낸다는 뜻도 되는데, 그렇다면 뭐가 그에 제동을 거는 것일까? 번창도 정도 문제일 것이다. 밥도 먹고 옷도 입어야지, 의료비에만 돈을 쓰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엄청난 의료비 중 상당 부분은 국가가 부담하고 있는 – 실은 세금으로 감당하는 것이니 사회 전체가 부담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부분이다.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기는 자유주의적 의료제도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도 사회 복지 차원의 Medicare (65세 이상에 대한 의료 혜택), Medicaid (극빈자들에 대한 의료 혜택)에 지출하는 돈은 엄청나다. 게다가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해 이 부분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가가, 나아가서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그 도를 넘어서고 있는 마당에 정부로서는 당연히 비용절감에 온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자세히 얘기하기는 지면상 어려울 듯 하지만 이미 그 비용 절감의 몸부림(?)은 소위 managed care의 대두라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질병 ‘예방’에 대한 관심도 같은 흐름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게다가 질병 예방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새로운 이윤의 동기를 만들기도 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금연 보조 약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심장병과 중풍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고혈압을 더욱 잘 치료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된다면 고혈압 치료제의 수요가 올라갈 것이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질병의 예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병에 일단 걸린 다음에 기적의 치료약을 먹고 낫는 것과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선택이 ‘가능’할 지가 문제긴 하지만) 병에 아예 안 걸리는 편이 낫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그 기적의 치료약이란 것이 세상에 없는 마당에야 누가 병에 걸리고 싶겠는가.

  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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