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7)

결혼기 (結婚記) (7)

필자는 뭐든지 깜박깜박 까먹는 일이 많은 사람이다. 이로 인해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더욱 안 좋은 것은, 사람들이 필자를 처음 보면 무척 꼼꼼하고 깔끔하며 빈틈없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받는 모양이어서 본의 아니게도 배신감을 안겨주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의사로서는 별로 바람직한 성격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정신 건강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굳이 이것을 무슨 수를 써서든 고쳐야겠다던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실상 성격이란 것이 어디 고쳐지는 것이던가.)

필자의 깜박증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유래를 찾자면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숙제, 준비물 등 까먹고 안 해오고 안 가져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날 아침에 발견하기도 하고 그 시간이 되어 숙제 검사 할 테니 내 놓으라고 하는 순간에 생각이 나는 경우도 있는데, 대개는 그냥 에이, 몇 대 맞고 말지, 하고 말았으니 사실 이 버릇을 고칠 싹수는 애초에 노랬다고 할 것이다. (이 글을 본 Y가 옆에서 도대체 초등학교 몇 학년 때부터냐고 묻는데,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헌데, 운명의 장난인지 필자의 아내인 Y는 사소한 (최소한도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일들도 곧잘 기억을 해내는 편이다. 뭐 그렇다고 ‘별 걸 다 기억하는 여자’ 수준이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는데, 워낙에 필자의 기억력이 부실하니, 부부가 서로 보완이 되어 참 좋겠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헌데, 웃기는 것은 뭔가 사소하게라도 시비를 가려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가 생기면 절대적으로 열세에 몰린다는 사실이다. 맨날 뭘 어쩌고 저쩌고 한다면서 불평을 하는 데다 대고 ‘내가 언제?’ 하고 반문을 했다가는 그 길로 치명타(?)를 입게 되는데, 언제는 이랬고 지난 번에는 요랬고, 엊그저께는 저랬다면서 정확하게 각주(?)를 다는 데에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것이다. 뭔가 반박을 하려고 해도 필자에게는 남아 있는 기억이 없으니 그냥 멍하니 당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좀 더 억울한 것은 Y가 뭔가 필자가 잘 했던 일을 기억해 내어 칭찬을 하려고 하는데 기억이 잘 안 날 때이다. 그러니, 돈 꾼 것은 까먹고 꿔준 것은 귀신같이 기억하는 식의 편리한 기억력과는 또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부부로 같이 살았다고 그것도 닮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Y도 깜박하는 일이 없지는 않다. 필자가 부산에 살 적의 얘기인데, Y가 교재로 쓰겠다면서 동네 비디오 가게에는 없는 좀 특별한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빌리겠다고 하여 여기저기 알아 본 끝에 좀 떨어진 곳에 그 비디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산에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다가 운전도 좀 서툴 때인데, 하여간에 빌리러 갔다.

부산에서 조금만 살아보면 알 수 있는 것이, 길이 그다지 많지 않고 특히나 ‘큰 길’은 몇 안 되어서 길 찾기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반면에, 산이 많고 외길이 많아 자칫 목적지를 지나쳤다가는 차를 돌리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엉뚱한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일도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앗! 이 산이 아닌가베?) 이날도 그랬다. 조그마한 비디오 가게가 그렇게 눈에 잘 띄일 리가 없었다. 깜박 지나쳤더니만 끝도 없이 산길로 접어드는 것이었다. 겨우겨우 차 돌릴 곳을 찾아 돌아 내려와 비디오 가게에 도달하였다.

문제는 며칠 후 비디오를 돌려주기 위해서 다시 길을 나설 때였다. 지난번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지도를 충분히 들여다보고 길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며 빈틈없이 준비를 해서 멋지게 비디오 가게 앞에 차를 대었다.

“자, 빨리 돌려주고 와.”

“그래”

“뭐해?”

“어디 있어?”

“뭐가?”

“…”

“…”

그런데, 비디오는 어디 있지? 어이없게도 아무도 비디오를 챙겨 나오지 않았고 비디오는 집에 고이 모셔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까짓 거 뭐, 이 정도야 인간으로서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깜박증’이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런 경우 자칫하면 부부 싸움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필자는 누구 다른 사람의 건망증을 탓할 처지가 못 되는지라 그냥 서로 웃었을 따름이었다.

필자의 직업이 의사라, 만약 이러한 깜박증이 환자 보던 중에 생기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좀 끔찍스럽기도 하다. 다행히도 현재까지는 그렇게 큰 사고를 친 일은 없는데, 그냥 하느님이 보우하사 운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래도 ‘일’ 모드로 되었다고 하면 이 시원찮은 메모리의 기능이 조금은 향상되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의사가 가위를 환자의 뱃속에 넣어둔 채로 꿰맸다던지 하는 것은 어이가 없는 실수의 예로 흔히 드는 것이지만,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이다. 실제로 수술장에서 수술을 마칠 때에는 도구와 사용한 거즈의 개수를 두 번 확인하며 그것도 다른 두 사람이 각기 확인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찌 생각하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동시에 눈에 콩깍지를 뒤집어썼다든지, 뭐 그런 비슷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 같지만 글쎄

필자가 아는 한 외과의사는 수술한 후에 환자가 불평하는 말 중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왜 이렇게 아파요? 뭐 집어넣고 꿰맨 거 아니에요?” 하는 말이란다.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면서 호통을 치게 되는데, 그리 해 놓고 나서는 문득 혹시나 거즈라도 한 장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강박관념이 되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괴롭힌다는 것이다. 참 끔찍스러운 악몽이다.

필자의 건망증을 Y는 그냥 놔두지 않고 필자를 골려 먹는 좋은 소재로 이용하는데, 무슨 공연을 보러 같이 나간다고 하면, 거의 다 와가지고 공연장 앞에서 갑자기 “어! 티켓 안 가져왔다!” 하는 것이다. 그러면 티켓 챙겨올 생각을 까맣게 못 하고 있었던 필자는 또 한 번 필자의 악성 깜박증을 원망하며 다시 집으로 가야 하나 어쩌나 난감해 하고 있으면 Y는 필자의 곤란해하는 표정을 잠시 즐기다가는 표를 싹 꺼내서 흔들면서 ‘메롱!’한다. 그냥~ 당하는 거지 뭐. 몇 번 속아넘어가다 보면 수법을 간파할 만도 하건만, Y의 수법이 워낙 다양하기도 하고 또 시간이 흐르면 깜박하고 방심(?)을 하는지라 비슷비슷하게 또 속고 또 속고 한다. 뭐, 골려 먹는 것도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고, 골려 먹히는 것도 생활의 활력소(?)라고 생각하면 즐거운 일일 수도 있겠지.

건망증이란 무엇일까? 치매의 일종, 알츠하이머씨 병의 초기 증상일까? 아니면 선천성 중추신경 고위 기능 장애의 일종일까? 혹시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질환은 아닐까? 아니면 정신 질환의 일종인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인간의 두뇌의 그 정교하고 복잡한 기능 중에서도 ‘망각’이야말로 최고로 훌륭하면서도 고차원적인 기능이다.

망각이라는 기능이 없었다면 인간은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아마 몇 년 살지 못 해서 미쳐버렸을 것이다. 인간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수많은 자극을 곧이 곧 대로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우리는 소음 속에서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 중 많은 것은 또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잊어버린다는 것이 벼락치기 시험 공부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인간 두뇌의 정상적인 기능 중 하나인 것이다.

컴퓨터는 일단 기억된 것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못 한다. 물론 전원을 끈다거나, 바이러스에 걸려서 맛이 갔다거나, 메인보드 위를 바퀴벌레가 활보하면서 쇼트를 일으킨다거나 하는 경우는 빼고 말이다. 망각이라는 기능에 있어서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를 능가하는 일은 아마 금방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건망증은 좋은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크게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건망증이 다소 있는 것이, 반대로 한번 들으면 절대로 까먹지 않는 강박적 기억력을 지니고 있는 것보다는 (많이는 아니라도)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필자는 다른 사람들 생일, 친구나 동료의 아이들의 이름, 아니, 그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도 헷갈리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 두 번 세 번 들어도 또 잊어버리곤 하니 어찌 보면 사교로 덕보기는 영 글러 버린 것 같다. 성의가 부족한 것일까? 필자의 친구 아이 이름 따위를 Y가 곧잘 기억해 주곤 한다.

또 한편으로는 필자가 그저 제 잘난 맛(?)에 거들먹거리면서 사느라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사물에 대해 근본적으로 별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하지만 이게 잠깐 반성한다고 고쳐질 일이면 진작에 달라졌을 것이다. ‘그냥 이렇게 살란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달라질 전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저 기억력 좋은 그러면서도 가끔은 ‘동조적 건망증’에 빠져 주기도 하는 아내를 만난 것이 하늘의 도우심이라고나 할까.

  1.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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