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6)

부부가 살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서로 싸우게 되는 이유도 정말 다양하지만, 개중에는 참으로 사소해 보이는 이유들로서 등장하는 몇 가지 단골 레파토리들이 있다. 치약을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짜느냐 중간을 푹 눌러서 볼품없이 만들어 놓느냐 라든지(영화 ‘결혼 이야기’에도 나오는 장면이다), 결혼 기념일을 까먹었느니 어쨌느니(사소한 게 아니라고요?) 하는 것들이다. 심지어는 — 믿거나 말거나지만 — 기차에서 창가 자리에 앉게 해주지 않는다고 이혼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참, 이건 실화가 아니고 소설에 나오는 얘긴가?) 이런 사소한 분쟁거리들 중에 또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이 TV의 채널 결정권인 모양이다.

여자는 드라마, 남자는 스포츠 중계를 보겠다고 리모콘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 전형적인 유형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다행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방송사에서 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프로그램을 짜니 두 가지가 겹치는 일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서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프로를 ‘눈뜨고 못 봐주는’ 경우도 있으니 문제는 문제다. 오죽하면 화면 분할 TV가 다 나오겠는가.

 

필자와 Y는 다행히도 크게 분쟁을 일으키지는 않는데, Y는 다소 드라마 취향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스포츠 중계에 별로 관심이 없고, (사실 필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스포츠 중계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필자의 동료들은 박찬호 야구 중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필자의 애국심과 민족애(?)에 의구심을 품는 것 같다.) 드라마라고 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라 크게 부딪힐 일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Y의 주장에 따르면 필자도 실제로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긴 뭐, 실제로 ‘의가형제’니 ‘종합병원’이니 하는 의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즐겨 보긴 했는데,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주로 거기에 등장하는 의사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가에 대해 불평하는 재미(?)에 본 것이었다.

예를 들어 ‘종합병원’에 나오는 어떤 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너무나 ‘온 몸으로’ 느끼다가 마침내는 고민에 빠져서 뻑하면 병원을 뛰쳐나와 방황하고, 또 다른 의사들은 환자가 조금만 위태로워지면 실성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중 유일하게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침착하고 냉정한 한 의사 — 전광렬이 맡았던 역할 — 는 매우 얄미운 인물로 묘사된다. 헌데 필자가 보기에는 ‘종합병원’에서 현실적으로도 있을 법한 의사는 이 의사뿐이다. 의사가 냉정하다고 미워하기만 하지 그런 냉정함이 의사의 일을 올바르고 이성적으로 수행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너무 간과하는 것 같다. 너무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가?

 

하찮은 드라마 하나를 보더라도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위 사회 통념이라는 것에 맞추어 유형화되어 있어서 잘 살펴보면 매우 불공정한 설정인 경우가 많이 있다.

어째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시아버지들은 하나같이 자애롭고 인정 많고 지혜롭게 갈등을 풀어나가는 인물인 반면, 시어머니들은 대부분 비이성적이고 히스테리컬한 데다가 며느리를 구박하여 갈등을 조장하는 것일까?

연속극에서는 밤낮없이 사네 못사네 서로 치고 받고 싸우던 남녀도, 가족 간의 갈등으로 근심 잘날 없던 가정도, 여자가 애기만 가졌다고 하면 남자는 이성을 잃고 실성한 놈처럼 기뻐 날뛰고 모든 가족 간의 갈등은 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지는데, 현실에서도 과연 그러할 것인가? 왜 연속극에서 남자는 항상 아이를 갖자고 조르는 것일까?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에게 어쩌자고 의사와 가족들은 무조건 숨기기만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행동이 어째서 애절하고 애틋한 것으로만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일까? ‘환자의 알 권리’는 어디 갔는가?

또 연속극의 내용 자체와는 다른 문제지만, 어째서 우리나라의 연속극은 — 특히 인기가 높을수록 — 시청자들이 살려라 하면 죽을 사람도 살리고, 맺어줘라 하면 헤어질 남녀도 맺어지고, 쟤가 괜찮다 하면 차인표 대신 안재욱으로 주인공이 바뀌는 등 여론의 향배에 따라 줄거리가 마구 달라지는 것일까? 인터액티브 미디어는 한국의 연속극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흥미로운 사실들은 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의견을 교환하며 ‘함께’ 보다보면 드러나는 것들이다. 드라마들은 대개 유치하고 뻔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도 있는 것이다.

 

한번은 무척이나 사이가 나쁜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하는 단막극을 Y와 같이 본 적이 있었다. 이 부자는 거의 의절하다시피 살고 있었는데, 극중 아들이 ‘요새 이상하게 얼굴이 자꾸 붓네’하는 장면이 나왔다. 필자의 머리 속에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앞으로 전개될 줄거리가 떠올라서 Y에게 얘기해 주었다.

 

“저 사람은 신부전이고 신장이식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 아버지가 콩팥을 주면서 화해하게 될 꺼야.”

 

Y는 정말? 했는데, 드라마를 보니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Y는 필자의 예지력(?)에 탄복했다. 얼굴이 붓는다는 한마디 대사에 앞으로의 줄거리를 맞추다니!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놀려댔다.

 

“드라마 보는 거 유치하다고 그러더니 자기가 완전히 드라마에 도가 텃네 그려, 히히…!”

 

사실 말이지 연속극이라는 게 한참 안 보다가 봐도 그 자리고, 척 보면 뻔할 뻔자 아닌가. 하지만 그 뻔한 줄거리 속에서 소위 사회 통념 또는 일반인들의 평균적인 의식이 어떤 것인지를 읽을 수 있다면, 그리고 너무 지나치게 열중하지 않는다면 조금은 관심을 둘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필자의 다른 글에 등장하는 Y에 대해서 읽어보신 독자라면 그녀가 무척 ‘수도꼭지’가 부실한 여인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볼 적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슬프거나, 감동적인 장면에서 훌쩍거리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을 유치하다고 비난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는 따지고 보면 집안 내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이런 것도 닮았다고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Y의 멜로드라마 취향은 그녀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필자의 부친이시지, 물론.)와 비슷한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드라마, 특히 가족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특히 즐겨 보시며, 슬프고 애틋한 장면에서는 가끔씩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시는 것이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드라마 취향이 어떻게 닮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공교롭게도 양 쪽 모두 역사학을 전공하였으니 우연치고는 좀 희한한 우연이다. 하긴 필자가 언젠가 Y에게 지금 그 드라마가 정말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꼭 재미가 있는 건 아닌데,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본다고 한다. 이것도 역사가적인 호기심일까?

 

사실 필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문화적 취향이 너무나 다르다. 영화고 드라마고 아버지는 확실한 멜로 취향이다. 여기에 예외는 사극인데, 이는 당신의 아들이 의학 드라마를 보고 불평하듯이, 직업적인 사명감(?)으로 사극 중에 잘못되거나 어설픈 것들을 끄집어내어 비분강개하는 것을 즐기기 — 말이 되나? 여하튼, 당신 역시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주변에서 보기에는 그러하다 — 때문이다. 한편,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영화는, 당신의 묘사에 따르면, ‘때리고, 부시고, 총 쏘고,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예쁜 여자 나오는’ 영화, ‘5분 간격으로 치고 받고 싸우는’ 무술 영화, — 특히, 이소룡 — 추리극 등등이다. 참 이상한 집구석도 다 있다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사실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취향이 그렇다는데 뭐 어쨌단 말인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라는 표현이 있는데, 비유하기는 좀 뭐하지만 필자의 부모님이야말로 ‘한 대의 TV 앞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부부이다. 아버지가 주로 시청하시는 멜로드라마나 리얼리즘 경향의 영화들은 어머니에게는 ‘구질구질하고 촌스럽고 궁상맞은’ 것들이고, 어머니의 액션 취향은 아버지에게는 ‘천박하고 사대주의적’이라, 이 두 분의 취향은 도대체 양립할 재간이 없을 정도로 판이하다. 어머니 말씀, “야, 느이 아버지 좋아하시는 ‘명작’이다. (채널) 돌려라.”

 

일단 같이 살기로 했다면 상대방의 취향이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이고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당한 말씀이겠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경우도 꽤 있는 모양이다. 필자와 Y가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단지, 음악적 취향에서는 좀 차이가 큰데, 필자가 주로 즐겨 듣는 음악이란, 대개의 사람들로서는 소음 공해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헤비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계열이다. 필자의 친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너,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듣냐?’하면서 참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필자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Y도 이런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음악을 식사 때까지 트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데, 필자도 굳이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런 음악들이란 촛불과 함께 분위기 있게 식사를 즐기거나, 무드 있는 조명 아래서 다정히 손 붙잡고 앉아서 들을 종류의 음악은 전혀 아니어서, 어두컴컴한 방에서 홀로 외로이 고독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들어야 제 맛인 것이다.

다행히도 또 한가지 필자가 즐겨 듣는 종류의 음악인 째즈에 대해서는 Y도 우호적인 반응인데, 아마도 이것은 필자가 — ID에 걸맞지 않게 — 째즈를 듣는 귀가 그다지 수준 높지 않아서 골 싸매고 들어야 하는 프리 째즈 같은 것은 듣지 못하고, 환경친화적인(?) 음악만 골라 듣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니면 필자가 설겆이를 할 때 가장 선호하는 배경 음악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그다지 영화나 비디오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결혼한 이후에 많이 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별로 그러지 못했다.) 소위 ‘명작 비디오’나 유행에 첨단을 달리는 영화들에 완전히 데어버린 다음부터는 선택하는데 매우 신중을 기하고 있다. 비디오를 보다가 두 사람 다 너무 졸려해서 할 수 없이 중간에 끄고 잔 적도 있다. (‘동사서독’이었다. 왕자웨이 감독 영화는 겁나서(?) 못 보겠다. ‘천국보다 낯선’까지 시도한 후 ‘희생’이란 영화는 감히 시도하지 못했다.)

 

필자는 의과대학 시절부터 생겨난 조건 반사인지 어두컴컴한 방에만 들어가면 졸기 일쑤이다. 의과대학에서의 강의는 슬라이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명을 적당히 낮춘 방에서 철커덕 철커덕 끝없이 슬라이드를 넘겨대며 자장가처럼 단조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강의는 필연적으로 졸음을 불러오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이 꺼지면서 화면이 켜지면 반사적으로 졸리게 되는데, 이와 유사한 환경인 극장에서도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졸 틈을 전혀 주지 않는 헐리우드식 액션 영화는 그렇지 않지만, 소위 ‘예술 영화’들이란 좀 문제가 다르다. 예술 영화의 참 맛을 느낄만한 심미안이 있는 것도 아닌 판에 격에 안 맞는 영화를 보다보면 아무래도 대뇌에 무리가 가게 되는 모양이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 그 지경이 되었는데, 필자와 Y, 그리고 Y의 친구, 이렇게 셋이서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 샌가 필자는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이해하기가 곤란한 영화였고, 실제로 관객들이 이해할 것으로 기대하고 만든 영화도 아닌 듯 하며, 오히려 관객들이 헷갈려 하라고 만든 영화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Y는 재미있다면서 열심히 보는데 아무래도 필자보다는 영화 보는 눈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다행히 필자는 코는 별로 골지 않는 편이어서 이런 경우에 남들에게 큰 피해 — 다른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일 — 는 주지 않는다. 30분을 가뿐하게 자고 일어났지만 줄거리를 놓쳐서 영화 보는데 지장이 있다던가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Y의 친구가 필자에게 물었다.

 

“영화, 어떠셨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상쾌한 기분이기도 처음이네요, 우하하…”

 

한 30분 자고 났더니만 실제로 머리도 맑고 기분도 날아갈 듯 아주 상쾌했다. 참으로 좋은 영화, 고마운 영화였다(?).

 

문화적 취향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말이 나온 김에 얘긴데, 영화 보다가 잠 잔 얘기 중 압권은 ‘캐스퍼’라는 영화를 볼 때였다. 만화같은 (실제로 만화를 영화화한 영화니까) 얘기지만 그런 대로 재미있는 영화였다. 헌데, 이때 Y는 영국에 있다가 돌아온 직후여서 시차 때문에 한참 졸린 시간이었다. 영국과 우리나라는 8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우리나라에서의 오후 2-3시경이면 영국은 아침 7시인데, 말하자면 밤을 꼬박 샌 후의 아침과 같은 상태여서 무척이나 졸린 시간이었던 것이다.

영화가 한참 재미있어지는데 Y는 졸기 시작했다. 그것도 완전히 세상모르고 맛있게 자는 것이어서 깨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Y는 마음씨 착한 꼬마 유령 캐스퍼가 새로 사귄 — 유령으로서는 참으로 힘들게 사귄 유일한 산사람 친구이니 매우 소중했을 법도 하다 — 친구의 아빠를 살려내기 위해 자기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그 기회를 양보하는 결정적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영화 끝날 때쯤 해서 Y는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면서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인 Y에게 줄거리를 요약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필자는 별 생각 없이 얘기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서 Y를 보니 표정이 이상하다. 그러더니 훌쩍 훌쩍 울기 시작한다.

 

“아니, 왜 그래?”

“캐스퍼가 불쌍하잖아… 잉잉…!”

 

필자가 너무나 감동적으로 얘기를 잘 해서 그런 같지는 않은데…. 영화 보다가 우는 사람이야 흔히 있어도, 영화 볼 때는 졸다가 다 끝나고 나서 얘기 듣고 슬프다고 우는 사람은 생전 처음 봤다. 황당한 건지, 웃긴 건지, 귀엽다고 해야 하는 건지…

 

얘기가 좀 변질이 되었다. 대개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필자는 잠자는 것도 훌륭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을 하니, 두 사람 다 자는 것을 상당히 즐긴다는 점에서 취미가 일치하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한 사람은 초저녁잠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새벽잠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런 일이다. 필자는 커피를 마시면 잠드는데 좀 지장이 있는 것 같아 저녁 시간에는 커피를 안 마시려고 하는데, Y는 평소의 행실로 보아 절대 그럴 리 없다면서 어떻게 하든지 한번 커피를 먹여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왕성한 실험정신?)

 

하여간에 Y 덕택에 그녀가 아니라면 아마도 평생 볼 생각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것 같은 페미니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돌로레스 클레이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등…)까지 보게 되니, 견문도 넓어지고 어찌 아니 좋을쏘냐.

 

문화적 취향이 너무나 다른 커플은 무척 고생이 심하겠지만, 적당히 일치하면서 조금씩 다른 취향이라면 서로에게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필자와 Y는 적지 않은 공통점과 적당한 만큼의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게 느끼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이 잘 논다, 아직도 신혼인 가베… 뭐 이런 야유를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야 뭐라 건 간에 둘이 ‘잘 노는’ 게 좋은 것 아닐까요? 사네 못 사네 하고 징징거리는 얘기를 쓰는 것보다는 훨 낫지 않습니까?)

 

  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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