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3)

이 글의 전편인 결혼기(2)에서 한 10년 쯤 뒤에도 재미있게 사는지 보자고 그랬는데 얼마(?) 못 참고 또 펜을 들었다. 아니, 펜을 들은 게 아니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건데, 너무나 삭막하고 반문학적인 표현이라 유감스럽다.

‘그래 어디 한번 살아봐라’고 비웃음 내지는 저주(?)의 주문을 외우던 분들에게는 죄송스런 말씀인데 다행히도 아직은 비교적 재미나게 살고 있다. 다행 중 불행은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Y는 얼마 전 영국사(안타깝게도 필자는 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를 공부하러 다시 바다 건너 가버리고 필자는 독수공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떨어져 살면 신혼이 오래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 위로로 삼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다고 하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떨어져 있게 되어서 안됐다’는 취지의 얘기이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소리, 그저 듣기에 무리 없는 인사치례인데, 그 구체적인 표현을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 후 몇 달을 꿈결같이 보내고 Y가 다시 영국으로 가기 얼마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서 똑같은 표현의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들었는데, 그 말을 그대로 옮겨 보면 ‘불편해서 어떡해요?’하는 것이었다.

불편? 불편하다? 뭐 Y와 떨어지게 되어서 물론 편해질 리야 없지만 섭섭하다든지, 쓸쓸하다든지 하는 말이 맞는 말일 것 같은데, 아내랑 떨어지는 게 ‘불편’하다? 과연 뭐가 불편한 걸까?

혼자 밥 해 먹는 게 불편한가? 필자가 현재 살고 있는 지방의 지역적인 특성(?) 탓인지 내가 혼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이 참으로 생각하기 힘든 일이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부엌을 2미터 전방에 두고서 아침은 굶고, 저녁은 사 먹어야 하는가?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은 짜고 맵고, 화학 조미료도 많이 들었으니 혈압과 위장에 안 좋을 것이며 MSG가 과연 어떤 해를 미칠 것인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들을 들먹이기 이전에 필자는 병원 생활 5년 동안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에는 완벽하게 질려버린 사람이다. 한마디로 세상은 넓어도 먹을 것은 별로 없다. 먹을 것도 마땅치 않은데 매일 저녁 어디서 저녁을 때울까 고민을 하느니 아무 솜씨 없어도 그냥 되는대로 차려서 먹는 게 훨씬 속편하다고 생각하는 필자에게는, 혼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게 무척이나 놀랍고 있을 수 없는 일로 되어 있는 분위기 자체가 오히려 놀랍다. 그러는 사람들의 얼굴에 ‘남자가 어떻게…’하는 말이 써 있는 것 같아서 더욱 황당하다. 굶어 죽지 말라고 떡으로 목도리를 해 주면 앞 쪽만 뜯어 먹고 돌리기 귀찮아서 굶어 죽을 사람들이다.

생활의 불편함과 귀찮은 허드렛 일들 – 밥 해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등등 – 을 해소하려고 결혼을 하고 같이 사는 거라면 아내는 그럼 뭔가? 나는 식모하고 결혼한 건가? 그래서 그 식모가 어딜 가면 섭섭하고 쓸쓸한 게 아니라 단지 불편할 뿐인가? 내가 이상한 건지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다른 한 가지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의 것으로 ‘좋겠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고 자유로움도 만끽하고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다. 필자는 이 말도 역시 기분이 나쁘다. 마누라라는 존재는 (이럴 경우에는 아내라는 말이 쓰일 가능성은 0%이고 100% 마누라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잔소리의 화신이요, 바가지와 숫가락으로 중무장하고 호시탐탐 남편의 헛점을 노리는 전사(戰士)이며,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웬수인가?

물론 같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생길 것이다. 필자가 즐겨 듣는 음악은 (물론 이것만 듣는 것은 아니지만) 60, 70년대를 풍미했던 Cream이라든지, Led Zeppelin과 같은 헤비메탈, 아니면 Pink Floyd 같은 프로그레시브 락 따위인데, 이런 음악들을 적당한(?) 볼륨으로 식사의 배경 음악(?)으로 틀어 놓고 있을 때, Y가 어떻게 밥을 먹으면서 이런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냐면서 감히 하늘같은 남편께서 좋아하시는 음악을 끄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필자가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목욕탕 집 남자들’을 봐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일요일 아침 10시 경에 일어났다가 아점을 먹고 나서 고작 3시간 밖에 낮잠을 안 잤는데, 그리고 졸려 죽겠는데 일어나야 한다고 흔들어 대다가, 간지르다가, 하여튼 갖은 수단을 써서 잠을 방해하는 경우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싫으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Led Zeppelin이 제 아무리 불세출의 메탈 밴드라 한들, 헤비메탈 락은 실은 소화 작용을 촉진시키는 음악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Pink Floyd의 음악은 사회 불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정 불안을 조성하는 면이 없잖아 있는 것도 사실이라, 실은 그다지 취미가 없긴 하지만 괜히 우아한 척하고 현악 4중주를 나지막하게 틀어 놓는 게 식사의 배경 음악으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시답지 않은 드라마인 ‘목욕탕집 남자들’도 보다 보면 그런대로 재미있을 수도 있다. (Y에게 TV 드라마를 왜 보냐고 그랬더니, ‘재미는 별로 없는데,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란다. 재미가 있거나 말거나,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었으며 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추구하는 그녀는 정말로 투철한 역사학도이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아점을 먹고 3시간 낮잠을 더 잤으면 잘 만큼 잤지 무슨 염치가 있다고 더 자겠다고 난리인가. 밤에 잠 안온다고 그러지 말고 그만 일어나는 게 건강에도 이로울 것이다.

하여간에 그녀가 떨어져 있어서 밥 해먹는 게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특별히 즐거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왜 자꾸 내 생각과 정반대의 이야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사람들이 자주 물어 보는 것 중의 하나가 경제적 헤게모니(?)에 관한 질문인데, ‘용돈을 얼마나 타 쓰세요?’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당황한다. 용돈이란 걸 타서 쓰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수입원은 필자의 월급 하나뿐이지만 나와 그녀는 각자 현금 카드를 가지고 돈을 찾아 쓴다. 그리고 혼자서 쓴 돈들은 대개는 푼돈들이고, 서로 내용을 꼬치꼬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물론 안 그래도 대부분을 알게 되기 마련이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군의관 월급으로 이렇게 무계획한 경제생활을 해도 되는 건가 하는 걱정이 언뜻언뜻 들기는 하는데 다행히 아직 파산하지 않고 살고 있다. 어떤 분들은 의사가 무슨 갈퀴로 돈을 긁어모으는 사람인 줄로 아는 모양이지만 다른 의사는 어떤지 몰라도 최소한 필자는 그렇지 못하다.

필자와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들은 월급 봉투에 찍혀 나오지 않는 수당들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대개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부인들끼리의 대화를 통해 그 비밀 수입이 노출되지나 않을까 신경을 쓰는 사람도 많다. Y가 필자의 월급 봉투에 찍히는 수입 뿐 아니라 ‘노출되지 않는’ 수입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하고. 혹은, ‘병신같이 마누라한테 꽉 잡혀서 사는 놈’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하등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경마를 해서 돈을 날리는 것도 아니고 룸싸롱에 가는 것도 아니고 딴 살림을 차린 것도 아닌데 수입이 노출되면 어떤가. 그리고 혼자서 필요해서 자잘하게 쓰는 돈에 대해서는 서로 상관하지 않고 수입에 큰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큰 돈을 써야 한다면 서로 의논을 한 후에 쓰고 있는데 말이다.

남자는 철부지 어린애라서 돈을 가지고 있으면 다 탕진을 해 버리니 알뜰살뜰한 여자가 돈을 관리하고 남편은 용돈을 타서 써야 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내가 모르는 다른 수입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도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남편이 살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자승자박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책임의 회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돈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하는 길이기도 하다. 살림이 어째서 아내의 책임인가. 결혼이란 건 둘이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반대로, 남자가 모든 돈을 쥐고 있으면서 생활비라고 아내에게 얼마씩 떼 주고 그거 가지고 살아보라는 식으로 된다면 어떤가? 이런 경우라고 해서 남편이 생활에 책임있게 동반자적 입장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실제 하는 일은 없으면서 이런 저런 말만 많은 잔소리꾼이 되는 더 괴로운 상황이 되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역시 살림이란 아내의 책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경우에도 남편은 아내가 모르는 수입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실컷 쓰고, 집안 살림에 있어서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왜 집에서 이런 경제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이면서 살아야만 하는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더니 참 여러 가지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이것도 마음에 안 든다 저것도 마음에 안 든다면서 자기네들만 잘났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뭐, 우리 부부가 잘났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경제관념이 좀 희박하다는 게 문제는 문제다. 그래도 엔간한 것은 얼마 썼는지 기록도 하고 또 다달이 통장의 잔고를 까먹어 가는 지경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부부의 관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서로 의견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여자를 잡고’ 살아야 하고, 그러려다 보니 북어와 똑같은 취급을 해서 두들겨 패기까지 해야 ‘남자다운’ 것이며, 여자를 종처럼 부리고 하대하면서도 모든 불만은 ‘밤일’만 잘 하면 다 풀어진다고 생각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그 ‘밤일’이 어째서 아내에 대한 ‘봉사’이고 ‘의무 방어전’이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소리 하면 너는 아직 신혼이라고 또 비웃겠지만 말이다.) 아니면 반대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 ‘남자를 잡고’ 살아야 하고, 두들겨 패기에는 힘이 딸리니까 대신 바가지를 긁고 잔소리를 하고 멸치와 동급으로 들들 볶아야…. 패권주의와 파쇼정치에 너무 익숙한 국민들이라 그런지 부부 사이에서조차 세력 다툼과 헤게모니 쟁탈전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란 찾아보기 힘들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이 벌어지는 것이 일상적인 풍속인 모양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 끝에 밥하고 빨래해주는, 월급 안 드는 식모(좀 더 극렬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돈 안 드는 식모 + 창녀라고도 한다)를 부리고 사는 생활이 되든지, 열심히 돈 벌어다 바치고 들들 볶이는 게 주 업무인 로봇이 되든지, 둘 다 끔찍스럽긴 마찬가지다. 결혼 생활이란 것이 같이 살고 있으면 ‘창살 없는 감옥의 구속’이고, 떨어져 있을 때는 ‘밥 해다 바치는 사람이 없는 불편함’이라면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것인가. 아, 싫다!

그건 그렇고, Y야~, 나 밥 잘 해먹고 있을께 빨랑 와~. (‘놀고 있네’, ‘잘~ 논다’, 뭐 그런 얘기가 하고 싶으신가요? 다음 편을 기대하시면서 좀 참으세요.)

 

  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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