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1)

참으로 오랫만에 쓰는 글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던가. 노총각 신세를 면하느라고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의 내 주위를 문득 둘러보건대 달라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그간 뭔가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에 틀림이 없건만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한 1년쯤은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한 가지만 들라면 뭐라고 이야기할까? 이런 글을 써서 책 만들어서 떼부자가 될 성싶지도 않고, 유명 인사가 될 것 같지도 않고, 작문 연습해서 논술 고사 볼 것도 아니고, 그럼 뭐란 말인가? 구태여 뭐라고 뭐라고 시답지 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자면,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라고 할 것이다.

나는 뭐든지 참 잘 잊어버린다. 언제부터 이런 조기 치매 현상을 방불케 하는 건망증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할 일이 생겼을 때 당장에 해치우든지, 수첩에 적어 놓지만 않으면 백발백중 까먹는다고 봐야한다. 수첩에 적어 놓았다고 다 챙기느냐 하면 그건 또 천만의 말씀. 수첩에 적어 놓고 꼼꼼히 챙기는 체질이었으면 건망증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신경 끄고 편안하게 긴장하지 않고 살아서 그런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한 때 스물 몇명의 환자들을 맡아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해 줘야 할 일을 챙겼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인생에서 소중한 순간이 따로 있고 대수롭지 않은 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중요한 순간이고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피같은 시간들이지만 잊고 싶지 않은, 때로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즐거웠던 순간, 괴로웠던 때, 의미 깊었던 일들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마다, 또는 그러고 싶을 때마다 다시 꺼내어 되새겨 보고 보석함에 넣어 놓은 소중한 물건들처럼 쓰다듬어 보고 싶은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찍고 하질 않는가.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이 일어났던 지난 한 달도 그래서 그냥 그냥 넘어가기는 싫고, 뭐라도 끄적거려 놓고 싶은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된 Y와 나 사이의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그다지 길다고 할 수는 없다. 처음 만나서 결혼하기까지 약 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이는 사실 엄청 길다고 말할 만한 것은 아니다. 아니,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그 어디서도 이런 것을 통계를 내어보았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으니 말이다. 혹자는 강산이 한 번 바뀌도록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해 버리기도 하고, 누구누구는 보자마나 스파크가 파팍~ 하더니만 (물리학적 견지에서 보건대 정전기임에 틀림없다) 다음 달에 보니 벌써 부부가 되어있기도 하니 3년이라는 세월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정도일까?

헌데 3년은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였다. 그 대부분의 기간은 지구의 이쪽 편과 저쪽 편에 따로 떨어져서 국제 전화 값만 축내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나마 3년 중에 한 절반 가량은 서로가 소 닭 보듯이 어영부영 지나갔던 기간들이고 그 나머지 절반 중에서도 또 한 반 가량은 서로가 정말로 가까워지는데 필요한 기간들이었으니 그 많은 시간들을 어쩌고 다 늙어가지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참….

내가 생활했던 의과대학 그리고 의사들의 사회와 Y가 지내 온 인문대학의 분위기는 참으로 금붕어와 전투기처럼 서로 다르다. 최근, 전에 비해 무척이나 한가한 생활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고 있는 내가 어느 날은 책을 읽고 있으려니 (제목이 좀 어렵고 거창해 보이는 책이긴 했지만 실은 그야말로 교양 서적일 뿐이었다.) 나의 직장 상사 (그도 물론 의사이다.)가 쓰윽 와서는 나를 보더니 “음… 무척 심심한 모양이네?” 하질 않는가. 흐유…. 참 웃기는 얘기지만 의사들은 교양 서적을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다. 워낙에 전공 공부에 치여 사는 생활을 하다보니 다른 책들은 들여다 볼 생각을 못하고 (그러나, 사실 바쁘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게으름과 의욕 부족일 뿐이다.) 사는 생활이 굳어져서는, 스스로 너무나 전문가이다 보니 다른 것은 ‘모른다’는 생각에서 ‘몰라도 된다’, 나중에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결국 ‘다른 걸 아는 게 이상하다’, 이런 순서에 따라 철저하게 교양과 담을 쌓게 되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철저하게 무지한 것이 의사들이다. (죄송합니다. 실은 딴 사람들은 아니구요, 저만 그렇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어려워 보이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생소하게 보였나 보다.

부부가 서로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서로 이해하기도 쉽고 말도 잘 통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의사 부부도 많이 있지만 의사들끼리의 결혼은 좀 답답스런 느낌이 든다. 의과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몇 달 지나고 나자 의과대학생이 아닌 사람과는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 정도로 철저하게 고도로 전문화된 지적 불구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던 내가 집에서마저도 병원과 환자 얘기 아니면 할 얘기가 없는 사람 둘이서 살아야 했다면 참으로 고역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억울한 것은 우리의 결혼에 대한 Y의 학교 사람들의 반응이다. 물론 나를 기왕에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람들은 Y가 결혼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다음에 상대방이 의사라는 걸 알면 ‘응…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짓는단다. 그리고 의례 중매로 결혼한 걸로 생각한다고 한다. 도대체 ‘의사’라고 하는 직업의 일반적 이미지가 어떤 것이길래 이런 떱떨한 반응이 나오는지. 의사는 속물적 결혼의 대명사인가? 마누라 두들겨 패는 인간 말종이 한 두명만 있는 것은 아닐진대, 더군다나 의사만 그러는 것도 아닐텐데 혼수감 적다고 여자 패 가지고 신문에 나는 인간들은 어째서 다 의사인지 모르겠다. 내 참, 드러워서.

말이 난 김에 얘긴데, 번역이 잘못된 제목을 가진 영화인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society는 ‘사회’가 아니고 ‘모임’ 또는 ‘동아리’ 정도의 의미)에서는 의대에 가라는 부모의 강요에 못 이긴 주인공이 권총으로 자살한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 삼아 ‘내가 너 같으면 자살한다’ 그러는데, 이건 장난이 아닌갑다. 누구는 의사 되기 싫다고 자살하는데, 허 참, 내가 바로 그 의사네? 나도 그 영화 보면서 가슴이 찡해 했는데….

Y는 요사이 드라마 ‘종합병원’을 즐겨본다. 헌데 처음에는 보고서는 아무리 병원에서 저렇게 일은 안하고 연애질만 할까, 말도 안 된다 했었는데, 내가 병원에서 지낸 이런 저런 얘기들 (특히 과 커플들의 이합집산을 비롯한 남녀상열지사 및 기타 관련 가십들) 을 듣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보고는 “이제 봤더니 종합병원이 다 정말이잖아? 난 설마 했더니만….” 하고 처음부터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에 도망갔을 거라는 둥 하면서 깔깔 웃는 게 아닌가. 졸지에 ‘왕년에 놀던 남자’가 되버렸다. (난 억울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어쨌거나 나의 의사 친구들, 선후배들은 나의 아내 된 사람의 전공을 물어본 후에는 할 말이 너무나 없어 머쓱해진다. 음… 거 참 좋은 거 공부했네…. 쩝… 이러면서. 그녀의 전공은 ‘영국사’이다. 물론 나도 이에 대해 거의 할 말이 없다. 그녀가 나의 전공에 대해서 할 말이 오히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녀는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인해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자칭 ‘너무 많이 알아서 골 아픈 환자’ 였단다.)

소개는 이쯤하자. Y와 나는 남들은 다 일부러 피하는 윤 8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물론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너무 촉박하여 그런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양가 모두 그런 것 가리지 않는 집인데, 일설에 의하면 이날만은 길일이라는 설도 있다. 하여간에 남들은 다 쓰잘데 없는 (다른 의견도 있겠지만 최소한 내 생각에는 그러하다.) 속설 때문에 꺼리는 때에 호기롭게 그딴 것들 싹 무시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기분도 나쁘진 않았다. 예식장에서의 결혼은 가뜩이나 콘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대량 생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판인데 결혼하는 사람들이 워낙 없는 것인지 우리 앞 차례가 시간이 비어 있어 여유가 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남들은 결혼식 준비하면서 많이들 싸운다던데 우리는 싸울 틈도 없었다. 그 기간마저도 서울과 부산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오르락 내리락 거리느라 팔자에도 없이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됐지만 이거 참 피곤한 노릇이었다. 비행기란 놈은 항상 늦게 출발해서 늦게 도착한다. 유일하게 정시에 이륙하는 경우는 비행기를 놓쳤을 경우 뿐인 것 같다. 만나고 난 후에 밤에 집에 바래다 주기 힘들어서, 혹은 차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결혼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거의 그 지경이었다. 이럭 저럭 시간은 가고 결혼식 날자는 다가왔다.

결혼식이라는게 사진 찍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원도 한도 없이 사진을 찍게 된다. 대개들 두번 치장하지 않으려고 결혼식 날 오전에 사진 촬영들을 많이 하는데 너무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따로 날을 잡아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레지던트 1년차 시절, 백혈병과 암환자들의 항암화학요법을 하는 격리 병동의 주치의를 맡았을 때 기억이 난다. 이 병동에서는 창문 밖으로 창경원이 훤히 다 내려다보이는데 토요일, 일요일이면 웨딩 드레스를 차려 입은 신부들로 창경원이 온통 하얗게 되어버린 모습을 내다보곤 했다. 바로 그 장소에서, 이번엔 내 차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태풍이 북상하는 바람에 비 내리는 가운데 사진 촬영을 마쳤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폭풍우가 몰아친 건 아니고 겨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만 비가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D-day다. 결혼식장에 도착해보니 일단 인사하느라고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그래, 이제 내버려두면 다 돌아가는 게지. 한참 정신없이 악수를 하고 있는데 시간 됐다고 신랑 들어오란다. 이것 참, 기분 이상하네. 자, 미소를 지으면서, 씩씩하게 걸어들어가자. 이어서 신부 입장이다. 피아노 반주 대신 남성 합창을 하도록 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하객들의 반응이 좋았단다. 헌데 거의 다 들어와서 갑자기 드라이 아이스 연기가 쏟아져 나온다. 장인 어른과 Y가 약간 당황한다. 이거, 안하기로 한건데? 전설의 고향 분위기를 만들려고? 발밑이 안보이는 자욱한 연기에 잠깐 주춤했지만 의연히 입장을 마쳤다.

결혼식 주례를 숱하게 하신 나의 은사님은 베테랑 주례시라 걱정할 것이 없었다. 맞절할 때 충분히 뒤로 물러나라는 세심한 충고까지 해 주신다. 축가, 그리곤 행진, 이제 끝이네? 평소 인간성이 드러운 탓인지 내 친구들은 별로 오지를 못했다. (평일이니까 그렇지, 내 인간성이 어디가 어때서?!) 신부의 남자 친구들이 사진 찍을 때 균형을 맞춰 주었다.

부케 받는데 사전 협의가 부실했던 탓에, 꼭 받으셔야겠으면 받으시라, 아니 됐다, 하고 좀 웃기는 해프닝이 벌어졌긴 했지만 하여튼 그럭 저럭 끝냈다.

폐백을 마치고 마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장인, 장모님이 오셔서 Y에게 그만 간다고 하고 나가자 사태가 벌어졌다. 느닷없이, – 아니 뭐 평소 수도꼭지가 좀 부실한 편이라 그렇게 이상하달 것도 없지만 – Y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참으로, 고전적인(?) 결혼식이었다.

요사이 하도 기상천외하고 요상망칙한 게임을 개발해가지고 신랑 신부를 괴롭힌다길래 비행기 시간을 빡빡하게 잡는 등 대비책 마련에 부심했건만 다소 늦게 결혼하는 축에 속해서 그런지 내 발바닥이라도 한 대 때려 보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은 하나 없었다. 한대도 안 맞고 여자 데려가는 게 어딨냐고 Y가 키득거린다. 까짓 거, 잘 됐다. 가뿐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나는 사실 제주도가 이번이면 네번째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도는 또 가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신혼 여행으로 동남아도 유행이 지났을 정도이고, 유럽 배낭 여행쯤 가야 좀 튀어 볼 정도인 모양이지만 첨단을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것도 아닌데 말 안 통하는 동네에 가서 스트레스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실 말이지 신혼 여행 떠나기 직전만큼 피곤하기도 흔치 않은 일이다.

비행기를 탔더니만 자리가 텅텅 비어있다. 스튜어디스, 아니, 남잔데, 스튜어드?가 오더니 신혼부부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그랬더니 일단 한번 따라와 보란다. 영문을 모른채 따라가 보니 비지니스 클래스에 떡하니 앉혀준다. 좌석이 남아 돌아서 선심을 쓰나보다. 팔자에 없이 넓은 자리에 앉아가니 무척 황송하다. 다리를 뻗어도 앞 좌석에 닿지 않으니 이게 웬일인가. 비행기에서 보는 낙조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수평선에 해가 닿는다 싶더니만 순식간에 꼴딱 넘어가 버리는 것이 무척 여운을 남기는 광경이었다.

제주에 내렸다.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프고…. 가만 있어봐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결혼을 한 거란 말이지. 흠… 그렇구나…. 좋은 건가? 좋지 뭐. 근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프디야? 신혼이면 너무 좋아서 배고픈 것도 잊어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에구, 행여나 그러겠다. 먹을 것만 보면 좋아서 정신을 잃으면서…. 어쩌구저쩌구….

 

  1. 3. 4.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