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ctor's Diary,  Life

    나는 배달의 기수(?)다

    낫살도 몇 먹지 않은 주제에 이런 소리하면 좀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란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 수록 ‘왜’, ‘어째서’ 라는 질문을 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아이에서부터 어른이 되어가고, 마침내는 어른이 되는 지경을 넘어 늙어가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 무렵이 되면 (하지만 나는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떨어져 나가도록 머리를 흔들며 부정하려고 애쓴다. 내친 김에 얘기지만 나이 30이 뭐가 많단 말인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는 경우의 가지 수는 늘어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경우는 무척 줄어든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할 마음조차 먹지를 않는다. 그리곤 생각한다. ‘음… 난 역시 현명해…’ 보다 완벽한 바보가 되가는 건지 삶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건지 도대체 구별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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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데뷔 시절 (2)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은 정녕 헛된 것인지. 시험이란 마물은 참으로 죽어라고 우리를 따라다닌다. 졸업을 해서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렸다고 해서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는 것은 그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언젠가 썼듯이 고달픈 인턴 생활의 몇 가지 안되는 낙 중의 하나를 들라면 학생 시절의 그 지긋지긋하던 시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노예 생활(?) 속의 작은 위안(?)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이란 세월은 얼마나 허망하게도 지나가 버리는 것인지. 슬슬 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서 인턴들의 마음은 바빠졌다. 레지던트 선발 시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살 길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면서 몸도 마음도 황망하다. 뭔가를 선택한다는 일은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모든 경우에서 다소의 부담감을 주는 일이다. 더군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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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왜 사니?

    “너 왜 사니?” 그것이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다. 어리벙벙하던 의예과 1학년 초에 나의 학우가 어느 날 갑자기 강의시간에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특별히 친한 친구도 아니었고 친해질 기회도 아직 없었다. 헌데 느닷없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나는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는 나 자신이 순간 한심하게 느껴졌다. “너는 왜 산다고 생각하냐고?” 그가 대답을 재촉하였다. 나는 정말로 대답할 말이 궁했다. “죽지 못해서 살지, 뭐…” 나의 맥없는 목소리였다. 그러자 그는 무척 경멸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한심스럽다는 투로 내뱉었다. “아니, 네가 왜 사는 지도 모르고 산단 말야? 죽지 못해서 산다는 게 말이 되니? 너 정말 엄청난 패배주의 속에서 살고 있구나?” 패배주의는 또 뭔가? 하지만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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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데뷔 시절 (1)

    시간이란 물 흐르듯이 마디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흘러만 가는 시간에 억지로 금을 긋고 한 시절의 끝과 새로운 시절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 그것들을 축하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 시험에 합격한다고 갑자기 어느 순간에 어리어리하던 의과대학생이 유능하고 빠릿빠릿한 의사로 둔갑할 수는 없다. 어느 환자나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있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를 원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니다. 세상에 초보운전을 거치지 않고 능숙한 운전자가 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의사가 되겠다는 어리석은(?) 꿈을 안고 막 임상에 나선 햇병아리 의사에게는 스스로조차도 자신감이 없으면서도 환자를 안심시켜야하고 신뢰를 줄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크나큰 짐이 된다. 그런 부담이 크면 클수록 어이없는 실수가 터져나오기 마련인 것이 누구나의 데뷔시절인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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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나를 살인자라 불렀다

    의사로서 내가 일해온 경험이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남아있는 기억들을 추스려 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고 그 중에는 대수롭지 않게 잊혀질 일들도 있고 평생토록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나의 기억 속에는 즐거웠던 기억도 있지만 쓰라린 기억과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기억들도 남아 있다. 아니, 오히려 고통스럽고 괴로왔던 일들이 더욱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어쩐 일인지. 이제 나는 내가 만 4년 동안의 의사라는 직업의 경험 중 가장 어처구니없고, 가슴 아프고 괴로왔으며 생각조차 하고싶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그런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왜 내가 나에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멸을 철저하게 맛보게 해준 이런 진절머리나는 사건을 글로까지 남기려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웬지 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