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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발의 사관(士官) (4)

    나는 눈부시게 떨어지는 햇빛 아래서, 그리고 제법 생생한 파릇파릇함으로 자라 올라오는 잔디를 디디고 서서 잠시 뒤에 있을 임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행복한 일인가. 2주일 전, 억겁처럼 긴 시간 끝에 결국 기브스를 풀게 되었을 때를 기억해 보았다. 오랜 억압 끝에 족쇄를 풀어버리고 자유인이 되려는 노예같은 기대감으로, 한편으로는 첫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듯한 산모의 설레임으로, 또 다른 마음 한 구석 뭔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뒤범벅이 된 마음으로 전기톱에 다리를 내 맡겼다. 석고 붕대가 쪼개지고 참으로 오랫만에 보게 되는 내 오른 다리는 분명해 내 다리임에도 무척이나 낯설었다. 창백하고 털이 숭숭 난, 삐쩍 말라 가늘어진 다리였다. 다리를 구부리고 펴고, 땅에 디디고 밀치는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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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발의 사관(士官) (3)

    어떻게 막사까지 걸어서 돌아 왔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쩔뚝대고 있는데 빨리 오라고 소리질러대는 구대장을 패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닐 때면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가도 모른다더니 내가 그런 지경이었나보다. 그날 밤은 정신없이 그냥 잤다. 다음 날 아침 깨어 보니 무릎이 시큰시큰거리기는 하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괜찮을까? 좀 걱정스러웠다. 다음 주에는 행군이 있다. 이 몸을 해 가지고 완전군장을 하고 걸을 수 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며칠 간은 영내 교육만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무릎은 좀 나아진 듯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군장을 짊어지고 걷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멀쩡한 몸을 해 가지고도 자신이 없을 판인데 말이다. 운명의 날은 다가왔다. 군장에 넣으라는 이것 저것 다 빼고 개나리 봇짐 비슷한 군장을 만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는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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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발의 사관(士官) (2)

    이제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불안함을 감출 수 없는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우리들의 훈육 대장이었다. 최소한도 ‘맞짱’을 뜬다 치면 결코 건강에 이롭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인상이었다. ‘끙…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혀, 정신을…’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앞으로 7주를 어떻게 보내나 하며 한심한 느낌이 들뿐이었다. 후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군의관 훈련도 훈련이냐고 비웃고, 조롱하고, 웃긴다는 듯이 쳐다보고, 기가 차다고들 했다. 그러는 사람들은 얼마나 엄청나게 고생을 했는지는 몰라도 너무 비웃지 말고 지금은 그러려니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란다. 남의 다리 부러진 것보다는 내 발의 티눈이 더 아프다고, 모두가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한 보따리 옷과 전투화 등등을 받고 비슷비슷한 서류들에 그놈이 그놈인 사항들을 채워넣고 어쩌고 하는 동안에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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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발의 사관(士官) (1)

    흔히 군대 이야기는 평생 술안주 감이라고들 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가장 큰 공감대라고도 한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절의 고생담을 심심치 않게 남들에게 얘기하게 되고 또 드물지 아니하게 그 이야기는 소주 한잔의 힘을 빌어 고생담이나 경험담의 차원을 넘어서 거의 무용담의 수준으로 비화되곤 한다. 필자는 국가관이 희박해서인지 나약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군대가 사람을 만든다느니, 남자라면 모름지기 군대를 다녀와야만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느니 하는 말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군대를 다녀와야만 사람이 된다면 군대를 안 다녀온 사람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곱게 키운 우리 딸, 방위 사위 웬말인가!’ 하는 표어도 있다던데 군대가 뭐길래 이런 말이 나오는지. `동방불패’ (동네 방위는 불쌍해서 패지도 않는다.) 나 UDT (우리 동네 특공대), KGB (코리안 … 에고, 그만두자.) 등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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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에서의 단상

    나카하라여 지구는 겨울이라 춥고 어둡네. 그럼 안녕히 - '공간', 구사노 심페이 (草野心平) 무진장 목이 말랐다. 물주전자를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셔댔는데도 갈증이 가시질 않는다. 계속 괴로워하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헌데 실제로 정말 목이 말랐던 것이다. 더듬더듬 주변을 더듬어 물주전자를 찾아 이번엔 진짜로 벌컥벌컥 마셨다. 옆자리에선 누군가 코를 골면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골치가 약간 띵해 오면서 어제의 기억들이 살아난다. 10월로서 병원에서 전공의로서의 나의 근무는 끝이 났다. 지금부터 1월까지는 그저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하여 공부만 들입다 하는 기간이 될 것이고 무척이나 즐거운 것은 그래도 월급은 받아먹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병원이 무노동 무임금이라고 외친다면 나도 그럼 법대로 하자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