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의 사관(士官) (4)

나는 눈부시게 떨어지는 햇빛 아래서, 그리고 제법 생생한 파릇파릇함으로 자라 올라오는 잔디를 디디고 서서 잠시 뒤에 있을 임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행복한 일인가.

2주일 전, 억겁처럼 긴 시간 끝에 결국 기브스를 풀게 되었을 때를 기억해 보았다. 오랜 억압 끝에 족쇄를 풀어버리고 자유인이 되려는 노예같은 기대감으로, 한편으로는 첫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듯한 산모의 설레임으로, 또 다른 마음 한 구석 뭔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뒤범벅이 된 마음으로 전기톱에 다리를 내 맡겼다. 석고 붕대가 쪼개지고 참으로 오랫만에 보게 되는 내 오른 다리는 분명해 내 다리임에도 무척이나 낯설었다. 창백하고 털이 숭숭 난, 삐쩍 말라 가늘어진 다리였다. 다리를 구부리고 펴고, 땅에 디디고 밀치는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까맣게 잊어버린 옛 기억을 되살리는 듯했다. 덜렁덜렁 흔들리는 다리는 아직 내 몸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또 얼마나 지나야 정말 내 다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의 다리는 조금씩, 하지만 어김없이 나에게 되돌아와 주었다. 그리곤 나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그 자체가 경이요, 신비였다. 사람이 두 다리로 걷는다는 것이 이처럼 아름답고 품위있으며 고상한 일이라니!

하지만 나와 고락을 같이 했던 ‘목발 부대’의 동료인 K는 불행히도 아직 목발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 했으리라. 유격장에서 계속 발이 아픈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던 그는 유격장에서 돌아온 다음다음 날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결국 기브스를 다시 풀어야 했고 골절된 자리에 감염이 생겨 고름이 줄줄 나오고 있는 상태로 악화된 것이 발견되었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자기는 원래 훈련 마친 뒤 한 달 후에 결혼할 예정이었노라고 얘기했다. 그는 목발을 짚고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가야하는 신랑이 되어야 할 것인가? 그와 헤어질 적에 경황이 없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 하였다. 건강한 몸이 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지난 일들이야 어찌 되었건, 지금의 나는 자유의 몸이다. 그 무엇도 나를 구속하지는 못 한다. 나는 나의 튼튼한 두 다리로 어디든지 걸어가리라.

4월의 햇살은 따사로움을 넘어서서 목덜미에 한줄기 땀방울을 흘러내리게하고 있었다. 아직 계속 식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는 단상에서 무슨 일이 식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의사관 후보생들의 가족들이 제각기 고개를 길게 늘여 빼고 그들의 아들, 남편, 아빠를 찾아보려하고 있었다. 웬 조그마한 어린이가 서투른 뜀박질로 풀밭을 가로질러 아빠를 향해 달려오다가 그의 엄마에 의해 저지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Y.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이 자리에 같이 있다면 좋을 것을. 왜 사람들은 같이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는 것일까?

이 자리는 나에겐 영광스럽거나, 자랑스러운 자리라기보다는 그저 평화로움으로 되돌아가는 자리였다. 어깨에 달은 계급장? 그게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지금은 그저 하늘을 우러르는 넓은 마음으로 내가 지나왔던 어둡고 긴 터널을 되새김질하는 자리였다. 그 지난 시간들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나는 더 강해졌는가? 아니면,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기사회생하였을 뿐인가? 세월이 더 흐르면 그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 무엇이라 이야기할까? 모르겠다. 지금은 누가 물어본다면 그저 한마디 해줄 것이다. 나는 목발의 사관후보생이었노라고.

덧붙임: 복잡한 심경 속에서 쓰다보니 소설인지, 수필인지 구별이 안가는 이상한 글이 되어버렸군요. 과시하거나, 자랑삼아 허풍을 떨거나 이목을 끌어보려고 쓴 글은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어쩐 일인지 ‘난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 반드시 글로 써서 남기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군요.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저 잊어버리고, 흘려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인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족한 글솜씨에 아무 계획도 사전 구성도 없이 일단 줄줄 써내려가 보았습니다. 혹시 다음에 다시 차근차근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정리할 기회가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고생했었던 K님의 쾌유를 빌고, 같은 내무반에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의 따뜻한 우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사랑하는 부모님과 Y에게 나도 정말로 사랑하노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99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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