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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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5)
결혼과 직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부부가 비슷한, 또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면, 서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편이 좋을까? 또는, ‘아녀자는 남자가 바깥에서 하는 일 알 필요 없는’ 것일까? 필자가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의사인 필자와 역사학도인 필자의 아내 Y가 하는 일이 무척이나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세상에 억지로 끼워 붙이면 서로 연관이 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만 의학과 역사학은 관계가 있다면 무척이나 깊은 관계이고 또 전혀 상관없다고 우긴다고 해도 사실 별로 반박할 말도 없다. 그건 ‘의학’이라는 말과 ‘역사’라는 말을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의학과 역사학간의 학문적인 상호 관련성과 같은 엄청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놀던 물’ – 혹시 이 표현이 좀 천박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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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딱지 떼어내다
어느 길을 보던지 자동차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기억에 따르면 필자가 국민학교 (아니, 요즘은 초등학교이다.)시절만 해도 생활 기록부에 집안 형편을 적는데 생활 정도를 상중하로 구분할 때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가용이었다. 자가용이 있는 집은 ‘상’이었던 것은 기억이 틀림없고 확실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전화가 없는 집은 ‘하’였던 것 같다. (참고 삼아 이야기하면 필자가 국민학생이던 시절은 70년대였다.) 요사이 생활 기록부에는 어떤 기준으로 적는지 모르겠지만 집은 없어도 자가용은 다들 끌고다니는 마당에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가 생활 수준 ‘상’의 기준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혹시 차종으로 따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하여간에 너나 할 것 없이 자가용을 굴리는 마당에 필자는 참으로 굳세게 ‘큰 차'(버스, 지하철 등등..)만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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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4)
PC 통신이란 신통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게 된 것도 어느 새 3년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경력이랄 것도 없는 필자의 통신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내인 Y와의 메일 주고받기와 채팅이다. Y와 통신상에서 만난 것은 물론 아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필자 역시 PC 통신이란 게 있다던데, 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녀를 만난지 얼마 안되어 필자가 가지고 있던 거의 사망 직전의 AT 컴퓨터를 필자의 친구에게 거저 넘기고 486 DX, 4 MB RAM, 120 MB 하드 디스크 등, 92년 당시로서는 비교적 쓸만한 사양의 컴퓨터를 큰 맘 먹고 장만하였다. 멀티미디어 컴퓨터는 당연히 아니었고, 당시에는 별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2400 BPS의 모뎀이 달려 있었다. 그 전에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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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3)
이 글의 전편인 결혼기(2)에서 한 10년 쯤 뒤에도 재미있게 사는지 보자고 그랬는데 얼마(?) 못 참고 또 펜을 들었다. 아니, 펜을 들은 게 아니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건데, 너무나 삭막하고 반문학적인 표현이라 유감스럽다. ‘그래 어디 한번 살아봐라’고 비웃음 내지는 저주(?)의 주문을 외우던 분들에게는 죄송스런 말씀인데 다행히도 아직은 비교적 재미나게 살고 있다. 다행 중 불행은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Y는 얼마 전 영국사(안타깝게도 필자는 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를 공부하러 다시 바다 건너 가버리고 필자는 독수공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떨어져 살면 신혼이 오래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 위로로 삼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다고 하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떨어져 있게 되어서 안됐다’는 취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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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1)
참으로 오랫만에 쓰는 글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던가. 노총각 신세를 면하느라고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의 내 주위를 문득 둘러보건대 달라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그간 뭔가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에 틀림이 없건만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한 1년쯤은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한 가지만 들라면 뭐라고 이야기할까? 이런 글을 써서 책 만들어서 떼부자가 될 성싶지도 않고, 유명 인사가 될 것 같지도 않고, 작문 연습해서 논술 고사 볼 것도 아니고, 그럼 뭐란 말인가? 구태여 뭐라고 뭐라고 시답지 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자면,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라고 할 것이다. 나는 뭐든지 참 잘 잊어버린다. 언제부터 이런 조기 치매 현상을 방불케 하는 건망증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