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ago – ‘Chicago Transit Authority’ (1969) and ‘Chicago II'(1970)

https://youtu.be/7yZT3qpc1qM

Daniel Seraphine, drums
James Pankow, trombone
Peter Cetera, bass and lead vocals
Walter Parazaider, woodwinds and background vocals
Lee Loughnane, trumpet and background vocals
Terry Kath, guitar and lead vocals
Robert Lamm, keyboard and lead vocals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The whole world is watching us!)”

1968년 8월 29일 시카고, 시카고 컨벤션 센터 앞의 시위대는 진압을 시도하는 경찰에 맞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곤봉과 최류탄이 난무한다… 우리에게도 낮익은(?), 아니 이제는 낮설은(?) 풍경…

1968년, 혁명의 해. 세계는 혁명의 열기로 술렁였다. 베트콩은 구정 대공세를 감행했고, 파리에서는 그 유명한 ‘바리케이드’ 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시위와 파업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었으며, 체코는 ‘프라하의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2차대전 직후 세상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는 이제 대학생과 청년들이 되어 있었고, 이들은 인권이 억압받고 평화가 짓밟히는 비참한 상황과 이를 초래한 기존 체제에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베트남의 정글에서 왜 흘려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피를 흘려가며 비참하게 쓰러져 가고 있었고,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과 반전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던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Bobby Kennedy가 차례로 암살되었다. 시카고에서는 1968년 8월 민주당의 전당 대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반전 시위대는 집회를 열어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민주당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나, 시 당국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동원된 경찰 병력 및 일리노이 주 방위군과 시위 군중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하기에 이르른다.

1968년 그 이후, 과연 세상은 바뀌었는가? 필자는 이런 엄청난 질문에 간단한 대답을 던질 능력은 없지만, 1968년이 그것을 지켜본 동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마치 우리 나라의 80년대의 격동을 지켜본 당시의 젊은이들이 겪은 역사적 경험이 그들, 소위 ‘386 세대’를 강하게 규정짓는 것 처럼 말이다.

이듬해인 1969년, 그 격동의 중심이었던 도시, 시카고 출신의 젊은이들 7명이 뭉친 밴드 ‘Chicago Transit Authority’는 동명의 데뷔 앨범을 발표한다. 그들의 꿈은 그들의 사랑하는 고향, 시카고의 혼을 담은 락음악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게도 시카고 재즈와 락의 결합이었다. 비록 1967년 ‘Child is a father to the man’을 발표한 Blood, Sweat and Tears에게 ‘최초의 재즈락 밴드’의 타이틀을 빼앗기긴 했지만, 그들은 관악 편성을 대폭 도입한 재즈락 밴드로서 가장 성공한 예라고 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약간의 각주가 필요할 듯 한데, 그럼 ‘재즈 락’과 ‘퓨전 재즈’가 도대체 뭐가 다르냐, 둘다 재즈와 락의 결합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다. 참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고 ‘함 들어 바바, 들어보면 알어!’ 하고 무책임하게 한마디 하고 끝냈음 하는 얌체같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냥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대로 조금만 주절거려보자. 재즈 락은 주로 브라스 섹션을 끌어들여 재즈적인 색깔을 입힌 락이라고, 퓨전 재즈는 락 음악에 쓰이던 전기 기타 등의 악기를 재즈 내로 끌어들여 락의 맛을 낸 재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허, 참, 써 놓고 보니 완전 말장난이네 그려… 말 순서만 바꿔가지고… 전자의 경우는 이 Chicago나 Blood Sweat & Tears 와 같은 특정한 밴드들에 국한된 현상이었고 퓨전 재즈는 지금 재즈계의 흐름의 대세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매우 광범위한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구구… 한계를 느낌… 뭐가 다른가 일단 함 들어보시어요! -_-;;;)

Chicago Transit Authority 는 그냥 Chicago로 개칭하면서 연이은 야심작 Chicago II를 내 놓고 연거푸 성공을 거둔다. 이후,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의 대행진이 시작된다. Chicago III, IV, V, VI, VII… 16, 17, 18… 앨범 자켓도 비슷비슷…

‘If you leave me now’, ‘Hard to say I’m sorry’, ‘You’re the inspiration’, 등등 그 많은 주옥 같은 히트곡들 중 하나를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시카고란 그룹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지만 그 음악을 듣고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보긴 봤는데…’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귀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곡들이 많다.

헌데, 이들을 그저 듣기 좋은 발라드 음악을 하는 대중적인 밴드로만 여긴다면 이는 분명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이들이 락의 황금기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던 혁신적이고 실험 정신에 충만한 락 그룹들 중 하나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이들의 처음 두 앨범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Chicago Transit Authority’는 ‘우리 좀 초조해요!’ (We’re a little nervous)하면서 겸손한듯, 하지만 매우 자신있게 스스로를 소개하는 ‘Introduction’ 부터 시작해서 ‘Does Anybody Really Know What Time It Is?’, ‘Beginnings’, ‘Questions 67 and 68’ 으로 이어지는 귀에 쏙 들어오는 매력적인 곡들을 첫 부분에 배치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린다. 그야말로 초전 박살(?)이다. 게다가 대중적이라고 해서 그냥 만만히 봐 넘길만한 밴드는 전혀 아닌 것이, 장쾌한 박력이 넘치는 브라스와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의 전형적인 락 밴드 편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교대로 돌아가면서 듣는 이들을 헷갈리게 하는, 각기 조금씩 다른 개성을 지닌 세명의 보컬리스트들의 빼어난 노래 솜씨 하며, ‘Beginnings’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심플한 통기타 반주로 시작해서 차츰 열기를 더해서는 호쾌한 브라스가 숨쉴틈 없이 몰아치더니 어느 새 스르르 퍼큐션 연주로 넘어가면서 끝을 맺는, 세련의 극치를 달리는 완벽한 편곡,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라도 한대 가져다 놓은 듯한 소리를 들려주며 피드백 주법으로만 7분 가까이 끌고 나가는 실험적인 ‘Free from guitar’ 같은 ‘깜짝쇼’, 등등 지루할 틈없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일대 버라이어티 쇼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Chicago II는 기본적으로는 데뷔 앨범이 지향하는 음악들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더욱 야심찬 모습과 한층 깊고 은근한 맛을 보여준다. ‘Make me smile’ 같은 역시 매우 호소력 있는 낮익은 선율의 히트곡도 있고, 때로는 락이고, 때로는 스윙이고, 때로는 클래시컬하고, 힘차고, 잔잔하고, 거세고, 부드럽게 바뀌어가면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들려주고 있다. 곡들은 서로 긴밀하게 이어져 있고 무척 길고 꽤 복잡한 구성의 대곡들을 듣는 듯한 느낌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 때문에 꽉꽉 눌러담은 고봉의 밥(만땅으로 채운 더블 앨범이니…)을 짭쪼름한 게장의 게딱지에 비벼 단숨에 후딱 해치우는 듯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그리곤, 만족한 포만감!

아, 근데, 도대체 왜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혁명의 1968년 어쩌구 하는 소리를 꺼냈는가? 이들 두 앨범을 한데 묶어 주는 모티프가 바로 1968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컨셉트 앨범은 아니고, 전반적으로 그저 ‘사랑 노래’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이 보이지만,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매우 직설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들을 들려주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목격했던 역사적인 장면들을 그들의 앨범 속에 새겨 넣는다. 데뷔 앨범의 ‘Prologue, August 29, 1968’는 1968년 시카고 컨벤션 센터 앞의 시위 현장의 모습을 전해주는 사운드 클립이고, 이어지는 ‘Someday (August 29, 1968)’도 다소 입장이 불분명하기는 하나, 역시 바로 그날의 의미를 되씹어보는 내용이다. ‘Does Anybody Really Know What Time It Is?’는 좀 은유적이지만 정신 차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똑바로 보자고 주장하는 것 처럼 보인다.

Robert Lamm은 아예 Chicago II를 ‘혁명의 민중들에게 바친다’ (With this album, we dedicate ourselves, our futures and our energies to the people of the revolution… And the revolution in all of it’s forms.)고까지 하였으며, 그 대미를 장식하는 soulful한 4부작 ‘It Better End Soon’은 다소 거칠고 직설적으로 반전, 평화, 인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5 or 6 to 4’ (4시 25분전 아니면 6분전? 이런 뜻이라는 설이 있다. 뭔 소린지 이해가 잘 안가지만…) 는 밤을 꼴딱 새가며 음악을 만들면서 느끼는 버거움이라는 그저 그들 자신의 얘기라고도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어두운 시대에 대한 고뇌를 담은 것 같기도 하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면서, 뭔가 할말을 찾으면서…’ (Waiting for the break of day, searching for something to say…)

얼마나 진지한 메시지를 담으려 했는지, 아니면 그저 시절이 그러하니 시대 조류에 맞추어 뭔가 조금 ‘폼을 잡아보려고’ 어설프게 시도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또 뭔가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애매한 얘기들 뿐이다. 앨범 자켓도 헷갈릴 정도로 비슷 비슷하게 만들고, 앨범 제목도 따로 안 붙히는 등, ‘음악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자세인 것 같은데, 너무 그 ‘메시지’ 쪽에 치중해서 들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찌 되었거나 간에 한번 귀기울여 들어볼 만한 훌륭한 음악들이다. 부담없이 친근한 선율을 즐기면서도 그 안에 담긴 범상치 않은 멋과 실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예는 흔하지 않은데, 여기 이 두장의 앨범은 분명 그러하다. 강추!

200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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