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미친거야? King Crimson – ‘Discipline’ (1981)

Adrian Belew: guitar, vocals
Bill Bruford: drums
Robert Fripp: guitar, keyboards, devices
Tony Levin: bass, ‘stick’, vocals

 

어? 뭐야, 이거. 왜 이거야?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어쩌고?

너무 흥분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비록 필자가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쉬운 말로 ‘조또 모르면서’) 그럴싸한 ‘구라빨’만 믿고 마구 리뷰랍시고 써갈겨대기는 하지만, 아무리, King Crimson (이하 KC)하면 반사적으로 무조건 생각나는 프로그레시브 락의 절대 명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을 모르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락의 명예의 전당에서 이미 찬란히 빛나고 있는 그 명반 중의 명반은 후일을 위해 일단 접어두고, 오늘은 이 ‘Discipline’이다. 필자는 이 앨범에 대해서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말 많은 놈인 줄 이미 알고 계셨다고요? ^_^)

많은 의대생들이 임상 실습을 돌 때 비슷한 경험을 하리라 생각하는데, 필자는 정신과 실습을 돌 때 정신과 교과서를 읽으면서 식은 땀(?)을 여러 번 흘렸다. ‘앗, 이게 뭐야! 이거 내 얘기 아냐!’ 정신과 책에서 ‘내 얘기’를 발견하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모골이 송연한 일이다. 정신과 실습 과정 중, 필자는 자신이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어, 정말 미치겠네(?), 이거.

정신질환자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다. 뭔가 난폭한 짓을 하지 않을까, 갑자기 덤벼드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신과 폐쇄병동 실습은 그런 근거없는 편견은 없애주었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들의 망상, 환청, 앞뒤 맞지 않는 횡설수설, 감정의 부적절성… 그 증상들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은 필자에게는 큰 두려움이었다. 왜, 뭐가 그렇게 두려운가? 정신과 의사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나, 그것이 두려운 일임은 틀림없다. 그들의 뒤죽박죽의 분열된 자아는 실은 나 자신의 내부에도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을 봄으로써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은 매우 공포스러운 일인 것이다. 최소한 필자에게는 그랬다. (어쨌거나 결국 정신과 의사는 안 되었지 않은가. 심지어 정신과는 성적도 안 좋았다.)

KC 얘기하다가 왜 갑자기 엄한 딴소리인가 라고 하시겠지만, 필자는 KC의 음악, 특히 이 ‘Discipline’ 앨범은 그와 비슷한 경험을 음악을 통해서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기에 얘기를 꺼낸 것이다. (다른 앨범들도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초기의 두 앨범, 즉 ‘In the court…’ 나 이와 거의 유사한 두번째 ‘In the wake of Poseidon’도 훨씬 서정적이기는 하나 같은 분위기를 일부 가지고 있다고 본다.)

1969년 프로그레시브 락의 역사를 여는 불후의 명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으로 데뷔한 KC는 이후 엔간한 기억력으로는 완벽히 파악이 곤란한 정도로 복잡한 멤버의 변동을 겪었지만 전면에 나선 기타리스트 Robert Fripp은 끝까지 KC를 지키며 맥을 이어나갔다. 1981년 새로운 라인업으로 짜여진 KC는 그 실험정신만은 여전하지만 이제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음악을 선보였다.

잠시 라인업을 살펴 보면 만만치 않은 역전의 용사들이 모인 것을 알 수 있다. Adrian Belew는 Talking Heads 에 몸담은 바 있는 싱어 겸 기타리스트이고, Bill Bruford는 예전 Yes의 드러머로 그의 칼같은 드러밍은 이미 ‘Fragile’과 같은 명반에서 검증된 바 있다. Tony Levin은 ‘stick’이라는 몸둥아리도 머리도 없는 그야말로 그냥 막대기 내지는 판대기처럼 생긴 물건에 줄을 (10줄이던가?) 매놓은 신기한 물건으로 현란한 연주를 들려주며 제네시스에서 튀쳐나온 피터 가브리엘과 일하던 강호의 고수가 아닌가. 게다가 머리마저 빛이 난다. (밀어버린 건지, 대머린지?) 광기와 실험 정신으로 가득찬 ’21세기의 정신병자’ Robert Fripp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면면으로 보아 분명 뭔 일을 낼 팀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이 ‘Discipline’ 앨범을 1981년인가 2년에 라이센스 LP로 사서 지금껏 20년이 다 되도록 끼고 있지만, 이 앨범을 플레이어에 올려 놓고 끝까지 들어본 것은 아마 열번쯤이나 되지 싶다. (그래서 아직 음질도 쓸만하다.) 소위 ‘명반’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명반도 있지만, 이 앨범에 담긴 광기에 가득찬 음악들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라고는 분명 할 수 없을 것이다.

‘앗, 이게 정녕 KC란 말인가?’ 라고 놀랄 수 밖에 없는 funky 한 리듬 섹션, 광기 어린 Below의 보컬, 신경을 마구 헤집어 놓는 예리한 Fripp의 기타가 묘하게 어우러진 이 음악들을 듣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색다르고 이색적인 경험일 수도 있고, 도저히 견딜래야 견딜 수 없는 엄청난 소리 고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KC의 앨범 중에는 CD 석장을 완벽한 무조 (無調) 즉흥 연주로 채운 무시무시한 것도 있다 하니, 이정도는 무척 정돈된 편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런 엄청난 난장판을 듣고 좋아할 KC의 골수팬은 아니다.

첫 곡 ‘Elephant talk’에서는 funky하기 그지 없는 베이스 라인에 장작 패는 듯 호쾌한 드러밍, 그리고 Fripp이 코끼리 소리를 흉내내는 황당한 기타 소리를 중간 중간 들려주는 가운데, Below은 ‘talk’란 말을 유의어 사전에서 찾아서 그대로 읽기라도 하는 듯한 (conversation, communication, contradiction, 어쩌구 저쩌구…) 더욱 황당한 외마디 소리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고 있다. ‘Frame by frame’에서는 Below와 Fripp의 기타 연주가 얽히는데, (혹은 Fripp 혼자의 오버 더빙인지도?) 뭐랄까, 날카로운 핀셋으로 신경을 꼭꼭 찝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강박신경증에라도 걸린 듯한 예리한 연주가 신경을 벅벅 긁는다. ‘Thela hun ginjeet’이라는 말도 안되는 제목의 곡이 있는데, 이 제목은 ‘Heat of the jungle’의 철자를 뒤섞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Indiscipline’에서는 제목 그대로 엉망진창의 소음의 대향연을 들려주더니만, (게다가 제정신이라고는 거의 볼 수 없는 그 독백이라니! ‘I repeat myself when i’m distressed, I repeat myself when I’m distressed, I repeat…’ 필자의 hearing이 정확한 건지는 자신이 없다.) 타이틀 곡 ‘Discipline’에서는 역시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너무나도 예리하고 정확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의 기타 연주를 다시 들려준다.

아… 정말로 들어주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음악을 듣는 것을 ‘고문 당하기’와 ‘특이한 체험 하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아마도 이들의 음악이 철저하게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음악이란 것은 보통 들으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희노애락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감정이든, 흥겨움이든, 냉소와 염세주의와 같은 매우 복잡한 감정이든 뭔가 느끼게 된다. 하지만, KC의 음악은, 음악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질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싸늘하게 냉각된 극단적인 긴장감을 추구한 것으로 ‘아… 내가 이걸 듣고 도대체 뭘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것은 의대생 시절 정신과 성적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는 정신분열증에서 보이는 감정의 부적절성, 즉, 웃긴 일에 화내고 슬픈 일에 깔깔 웃는, 아니면 더 극단적으로는 감정이 완전히 증발되고 얼어 붙은 가운데 그저 아무 이유없는 싸늘한 광기가 흐르는 눈으로 노려보는 듯한, 그래서 면도날을 목줄기에 갖다 댄 듯한 오싹한 느낌을 주는 그 광기, 바로 그것이다. 바로 ‘분열된 자아의 초상’ 인 것이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은 참으로 만만치 않은,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듣는 사람마다 달리 느끼겠지만, 최소한도 필자에게는 그렇다. 그리고 섬뜩하도록 산산조각난 자아의 모습을 들추어 보는 것은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그들의 이 앨범을 플레이어에 올려 놓고 그 날카롭게 신경을 벅벅 긁어 놓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싶은 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필자는 이 앨범은 항상 헤드폰으로만 듣는다. 누가 지나가다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머리 위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릴지도 모르니까.

PS: 영화만 가위질하는 게 아니더군요. 원 앨범에는 ‘Matte Kudasai’라는 (웬, 일본 말?) 곡이 있는데 라이센스 LP에는 빠져 있습니다. 난해한 KC 음악 듣느라고 수고할 소비자를 생각해서 친절하게 한곡 빼서 시간을 줄여주는 배려를 해주니 너무나 고맙군요! (망할!) 지들이 뭔데 내가 들을 음악, 안 들을 음악을 미리 골라 놓고 강요를 하는지… 화난다… 심지어, Pink Floyd의 ‘Dark side of the moon’ 라이센스 LP에는 ‘Us and them’, ‘Brain damage’, 두 곡이나 빠져 있지요. 물론 요새 나온 CD 들에는 다 있겠습니다만…

200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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