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냐 기계냐? Kraftwerk – Autobahn (1974)

Florian Schneider: Drums, keyboards
Klaus Roeder: Guitar, violin
Ralf Huetter: Drums, keyboards, vocals
Wolfgang Fluer: Percussion

뭔가 폼나고 쿠~울해 보이는 대중 문화의 한 장르가 대중 매체에 의해서 원래의 모습과는 좀 다르게 (어떤 때는 전혀 상관없는 정도로) 포장되거나 변형되어 대중들에게 살포되는 일이 자주 있다. ‘재즈’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재즈란 한국적인 감수성으로는 조금은 친해지기 어려운 음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재즈가 ‘어렵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친숙하지 않고 체질적으로 쉽게 소화가 되지 않을 뿐이다.) 헌데, 그렇게 일부 매니아들만 즐기는 것으로 알았던 재즈란 것이 느닷없이 공중파 TV 방송에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들먹여지는 소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TV에서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들을 틀어대기 시작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TV를 비롯한 대중 매체가 보여준 것은 그냥 막연한, 그리고 정말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재즈의 ‘냄새’일 뿐이었다. ‘재즈’라는 TV 미니시리즈가 있었다. 또 다른 미니시리즈에서는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처럼 등장한 차인표가 섹서폰을 불어대며 멋있는 척했다. 하다 못해 립스틱 컬러에도 ‘재즈…’ 어쩌고 했다. 앞뒤가 안 맞게 뒤죽박죽인 글을 쓰면서 ‘재즈적 글쓰기’라고도 했다. 도대체 뭐 어쨌다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실제 재즈 음악과는 별로 또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1978년 락 그룹 Queen 은 ‘Jazz’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위에 든 예들을 생각해 보면 이 앨범이 음악적으로는 재즈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억지로 억지로 재즈적인 이미지를 찾는다면 약간 뒤죽박죽의 어지러운 느낌이라는 것 정도일까.

서론이 길었는데, 필자는 이와 비슷한 예를 소위 ‘테크노’ 음악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는 테크노 음악에 대해서는 실은 입문도 못한 처지이긴 하지만, 이에 대해 무럭무럭 솟아나는 의문이 몇가지 있다.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놈이 그놈인 것 같은 댄스 그룹들이 하나같이 테크노 테크노 하는데, 테크노 음악이 반드시 ‘danceable’ 해야만 하는 것인지가 심히 의심스럽고, 또 하나는 테크노가 왜 그 유명한 ‘도리도리’ 춤과 등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테크노의 고수가 계시면 필자의 이 어리석은 의문에 광명을 주는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하여간에 테크노는 문명의 이기인 전자 음향 기기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경향을 가진 음악이며, 그리고 그 경향이 극단으로 가면서 전통적인 악기들을 완전 배제하고 거의 전적으로 신디사이저를 비롯한 전자 악기들에 의존하여 만들어 내는 음악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우스꽝스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스스로의 이해를 위해 더욱 간단하게, ‘첨단 패션 쇼의 배경 음악’이라고 쌈빡하게 정리하고 있다.) 필자의 이러한 이해가 적절한 것이라면 이 테크노의 조상 격이 되는 음악은 분명 이 Kraftwerk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Kraftwerk의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기는 영 어색하고, 도리도리춤도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으니 어쩐 일인지 잘 모르겠다.

1960년대 말, 독일에서는 무그 신디사이저 등의 첨단 전자 악기들을 이용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음악 그룹들이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Kraftwerk는 조직되었다. 국내에서도 제법 인기를 모은 ‘Radioactivity’와 함께 이 ‘Autobahn’은 그들의 대표적인 앨범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사람, 소울이 넘쳐 흐르고 심금을 울리는, 그런 종류의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 이 앨범은 인간의 체취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기계가 만들어 낸 것 같은 차가운 금속성의 음악으로 가득차 있다. 가끔 가다 들리는 보컬마저도 철저하게 무감동, 무감각하여 어쩐지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

잘 알다시피 ‘Autobahn’은 독일의 유명한 고속도로이고, 타이틀 곡인 22분이 넘는 대곡 ‘Autobahn’은 그 고속도로를 한없이 질주하는 모습을 묘사한 곡이다. 그렇다고 Deep Purple의 ‘Highway Star’ 같은 곡을 연상한다면 전혀 잘못 짚은 것이다. 어코스틱 드럼이 아닌 전자음에 의한 너무나도 정확하고 규칙적인, 그래서 단조롭기 그지없는 리듬, 가끔씩 반대편으로 지나쳐가는 차소리 (물론 실제 차 소리가 아닌 전자음), 아련하게 슬로우 비디오처럼 다가왔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나서 퍼져가는 건반 연주 등등은 좀 현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미니멀리스틱 일렉트로닉 팬터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턱없이 꼬부랑 말들을 써대서 죄송한데, 달리 뭐라 적절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필자의 부족한 표현력을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이 단순하고 단조롭고 차겁고 극히 비인간적인 음악이 큰 거부감없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인데, 아마도 그 위에 실려 있는 멜로디만큼은 매우 대중적이고 친숙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애 아빠라, 애기를 잠재울 때 틀어놓는 – 소위 ‘알파파’를 촉진한다느니 하는 – 음악 CD를 몇장 가지고 있는데, 필자의 아들이 워낙 잠이 많아 재우기 쉽고 한번 잠들면 잘 깨지 않는 효자라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CD의 케이스에 써있는 경고 문구는 분명 눈에 띈다. ‘운전 중 청취는 매우 위험하므로 절대 금합니다.’ 필자는 이걸 보고 킥 웃긴 했지만,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이 Kraftwerk의 Autobahn을 (제목이 오토반이라고 해서) 운전 중에, 그것도 고속도로 주행중에 틀어 놓는 것은 절대 말리고 싶다. 그저 집에서 소파에 몸을 묻고 편안한 분위기로 감상하시기 바란다. 나른하고 몽롱한 기분에 젖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Morgenspaziergang’ (고등학교 때 분명 독어를 배우긴 한 것 같은디… ^^;)을 들어보면 짧은 곡이지만 이들의 음악 세계에 대한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지 모른다. 낮익은 아침의 풍경,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새가 지저귄다. 하지만, 진짜가 아니다. ‘전자’ 시냇물 소리와 ‘전자’ 새소리가 ‘전자’ 아침 풍경을 펼쳐보인다. 놀랍게도 이들은 모든 것을 ‘전자’적으로 보이게 하는 ‘전자’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이 역설적으로, 전자 기계에 지배당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통렬한 풍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Kraftwerk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결국에는 그들이 과연 피가 흐르는 인간인지 아니면 로보트인지도 헷갈릴 정도가 되어버리곤 한다.

200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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