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이야기

어린이들이란 밝고 활기찬 모습일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또, 건강한 모습일 때에 희망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아프고 병든 모습은 어른의 병든 모습보다 더욱 보기 애처롭고 딱한 법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의 인턴 시절, 소아과를 돌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런 평범한 생각들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나의 걱정은 나의 소아과에서의 주임무가 될 IV (intravenous (injection); 정맥 주사), 그리고 샘플링 (sampling; 검사를 위한 채혈)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있었다. 정맥 주사가 의사의 일이냐, 간호사의 일이냐는 문제는 많은 논란이 있는 문제이겠지만 어쨌거나 간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이는 일차적으로 인턴의 몫으로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에 내가 정맥 주사에 익숙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턴의 말기에 접어든 나는 이미 정맥 주사에는 이골이 나있었다. 말턴 (末턴; 수련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인턴을 이렇게 부른다.)은 10미터 전방에서 뒤돌아서서 메디컷(Medicut; 플라스틱으로 만든 정맥 주사용 바늘)을 집어 던져도 혈관에 꽂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말턴이 되자 어쩐지 정말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무럭무럭 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아과에서도 잘될까? 여전히 두려웠다.

마침내 소아과에서의 일과가 시작되었고 아침이 되면 나는 사악한 흡혈귀가 되어 어린이들의 피를 빨고(?) 다녔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인턴 시절 뽑은 피를 한데 다 모으면 아마도 한 드럼통을 족히 되리라.) 이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가 되어 주머니 가득 메디컷을 넣고 다니며 발버둥치는 아이들을 찔러댔다. 내가 맡은 병동의 환아들은 대개 1살에서 5살 정도의 아이들이었는데, 어찌보면 갓난아이들 보다 훨씬 다루기가 어려웠다. 갓난 아이들이야 힘이 없으니 그저 꽉 붙잡으면 되지만 한 세살쯤 된 녀석들이 엄청난 힘으로 반항하기 시작하면 정맥주사를 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른 두셋이서 올라타다시피 누르고 있어도 아이가 팔목만 좌우로 까딱까딱 비틀면 도저히 찌를 수가 없다. 움직이는 바늘귀에 어찌 실을 꿰겠는가? 나로서는 참으로 소질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끈질긴 설득으로 허락을 받고(?) 약간이나마 아이가 협조해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한 일주일 정도는 한바퀴 병동을 돌고 나면 맥이 탁 풀려 당직실 침대에 자빠지곤 하였다. 두어번 실패하고 나면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애 엄마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가고, ‘지난 달 선생님은 한번에 잘 하던데…’ 하는 불평이 튀어나오면 엔간히 얼굴이 두꺼운 나지만 자존심이 상하기에 앞서 ‘이번엔 꼭 성공해야하는데…’ 하는 긴장감에 등줄기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꼭 성공해야지.’하는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꾸만 실패는 거듭되는 법, 결국에는 참담한 낭패감으로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구원등판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 내가 모시는(?) 맘씨 착한 주치의 선생님은 두말없이 다 처리해주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음 날 또 그 아이에게 가서 찔러대야만 한다는 사실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너희들은 아무래도 나와는 전생에 지독한 악연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사람의 적응력이란 신비하고 놀라운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의 타율(?)은 점점 높아져갔다.

그러나, 아무리 타율이 높은 타자도 때론 헛스윙도 하고 병살타도 치고 삼진 아웃도 당하는 법이다. 소아에게 정맥 주사를 놓을 때에 심지어 좀 힘든 경우는 한번 주사놓는 데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가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실날 같은 핏줄을 찾아 온몸을 더듬고 이리찌르고 저리찌르다보면 나도, 아이도,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도 완전히 탈진하기 마련이다. 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안타까워서 옆에서 자꾸 이소리 저소리하는 경우는 솔직히 말해서 주사를 놓는 당사자로서는 무척 신경이 쓰이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 내가 당직이었던 어느 날, 새벽 두 시인데 정맥 주사가 빠졌다고 전화가 와서 나를 깨우는 것이었다. 졸려서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꼭 주사를 놓아야 할 환아여서 할 수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동에 나갔다. 혈관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 쉽게 성공하리라고 생각하고 찔렀는데 어찌된 것인지 자꾸 실패하는 것이었다. 여섯번 실패. 하지만 이미 상당한 자신이 붙어있었던 나는 이 정도의 실패는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 조금 쉬었다 하기로 하고 잠시 병실 밖에 나갔다가 왔는데 다시 와보니 아이와 애 엄마가 온데간데 없는 것이 아닌가? 황당해하면서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애를 들쳐업고 옆 병동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윽고 옆 병동에서 주사를 맞혀가지고 왔다. 아마 인턴 시절 중 가장 자존심 상하는 사건이었던 것 같다. 인턴이 재주라곤 IV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 유일한 재주가 무시당하다니… 사람들이 화가 나면 왜들 그렇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지 이해가 갈 법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입원하고 있었던 선천성 심장기형을 가진 아기가 있었다. 아마 돌이 채 안 지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아기에게 주사를 놓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 모든 의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둘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기가 나의 담당이었고 아기의 상태로 보아 주사를 안 놓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번 시작했다하면 보통 한두 시간은 걸리는지라 다른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다음에나 이 난공사에 착수하곤 하였다. 밤에 당직 서고 있는데 이 아기의 주사가 빠졌다 하면 그날 잠은 다 잔 거였다. 워낙에 고생을 하니 아기 엄마도 ‘안타까와하기를 포기할’ 정도였다. 강호의 IV 고수들이 이 아기의 IV를 해결하려고 구름같이 몰려들어 신기(?)를 선보였지만, 나도 이 아기를 데리고 벼라별 묘기(?)를 다 부렸다. 바늘보다도 크기가 작아 보이는 혈관에도 주사바늘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기 전에야 누가 믿을 것인가?

헌데 정말로 애처로운 것은 이 아기는 하도 찔려대서인지 찔러도 울지도 않고 발버둥치지도 않는 것이다. 돌이 안된 아기가 인생 달관한 노인처럼 ‘그래, 어디 한번 마음껏 찔러봐라.’하고 축 줄어져 있는 광경이란 보는 사람을 참으로 안쓰럽게 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이 아기가 좋아질까? 회복되어서 커서 어른이 된다면 지금 받은 이 엄청난 고통은 어떻게 이 아이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을까?’ 하지만 그 아이는 내가 한 달의 소아과에서의 근무기간을 마치고 다른 과로 갈 때까지도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희망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헌데, 어떤 경우에는 그 소중한 희망이란 것이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주기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소아과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다시 좋아져서 밝은 모습을 되찾지만 세상엔 해피엔딩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어서 한편으로는 결국 자기가 살아온 얼마 되지 않는 삶의 의미를 미처 알기도 전에 세상을 뜨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아무리 절망적인 병이라 하더라도 어린이들이기에 부모들은 포기하지를 못한다. 고통이 끝나기를 한편으로 바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절망했다가도 다시 실날같은 희망에 매달리면서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소아과에서 가장 보기 흔한 광경인 것 같다. 그럴 경우에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는 것은 오히려 절망과 체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없이는 하루도, 아니 한순간도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은… 세상엔 왜 이리도 희망이란 것이 희귀한 것인지.

내가 근무했던 병동에는 백혈병으로 항암제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많았다. 병도 병이지만 치료과정도 어린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처음으로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는 세살짜리 남자 아이에게 정맥주사를 놓게 되었다. 메디컷은 꽁꽁 숨겨가지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손을 어루만지면서 우선 혈관을 찾았다. 병원에 익숙하지 않은 그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별로 주사를 많이 맞았던 것이 아니어서 혈관은 매우 좋았다. 이 정도면 ‘한 큐’다. 탐색작전을 끝낸 나는 드디어 마각을 드러내어 메디컷을 꼬나들고 그 아이의 팔을 잡았다. ‘자, 착하지.. 주사 맞자. 선생님이 딱 한번에 해줄께.’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팔을 뒤로 숨기기에 바빴다.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버지가 가세하여 설득했지만 막무가내다. 한참을 달랜 끝에 겨우 그의 다시 팔을 잡았다. 그런데 막상 메디컷의 뚜껑을 열고 찌르려하자 아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결사적인 발버둥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가 붙잡으려했으나 미처 그럴 겨를도 없이 그 아이는 내 가슴을 발로 걷어차고 얼굴을 할퀴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나와 옆에 서있던 아이 아버지, 심지어 그 아이 자신도 잠시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옆에 서있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화를 벌컥 내더니 아이를 질질 끌고 복도로 나가더니 엉덩이를 마구 때리는 것이 아닌가!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무섭고 아프게 때리는 것이다! 엉엉 목놓아 우는 아이의 소리가 들리고 나는 이걸 말려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안절부절 못 하고 서있었다. 잠시 뒤 아이 아버지가 완전히 기가 꺾여 훌쩍훌쩍 대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는 나에게 정중히 사과하면서 다시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미안하였다. 아무튼 불행 중 다행히도 단 한번에 깨끗하게 정맥 주사에 성공하였다.

그 아이의 항암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이는 많이 회복되어 퇴원할 때가 다 되었고 병동의 복도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칠 정도였다. 어느 날 내가 복도를 지나치다가 아이와 마주쳤다. 아이는 장난감 권총을 들고 있었다. 내가 지나치려는데 그 아이는 느닷없이 나를 저격(?)하는 것이다. 빵! 죽었다! 나는 순간 내가 죽어서 복도에 쓰러져야되는 건지 잘 판단이 서질 않았지만 하여튼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래, 난 죽을께, 넌 살아라. 아주 오래오래…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아마 난 틀림없이 장수할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금 세 살이 되어가는 나의 귀여운 조카를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지금 살아있을까? 살아있다면 초등학교에 다닐 것이다. 그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어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진짜 총을 들고 나를 쏴 죽이러 나타난다면(?) 무척 반가울텐데…

1993. 7. 10.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