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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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 이야기… 포르말린냄새에 쩔어버린 내 청춘
의과대학에서 본과 1학년이 하게되는 시체해부 실습만큼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오해와 근거 없는 억측을 낳게 하는 것도 흔치 않으리라. 필자는 의과대학 시절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이에 관련된 질문들을 가끔 받곤 했다. 무섭지 않느냐느니, 꿈에 나오지는 않냐느니, 시체실습 때문에 의과대학 그만두는 사람은 없냐느니 하는 것들이다. 그때마다 구구절절히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느꼈던 나는 그저 간단히 이렇게 일축해버리곤 하였다. “그게 먹고 살 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나이도 몇 살 안 먹은 것이 이런 투로 이야기하면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것도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본과에 진입하여 일주일 남짓 우리는 뼉다구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무슨 기묘한 마술의 주문이라도 외우듯 그 뼈 조각들의 이곳 저곳에 붙어있는 굉장히 낯설은 이름들과 친숙해지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실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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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학 이야기
이젠 생리학을 위한 시간이다. 해부학은 우리에게 신체의 구조를 알려 주었지만 그것은 아직 생명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해부학이 시체를 해부하는 학문이 아니며 시체 해부는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은 생리학과 생화학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산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을 이해하고자 함은 아니다. 해부학은 무려 7학점짜리의 엄청난 괴물로서 (연관 과목인 신경해부학, 조직학, 태생학을 합하면 무려 14학점이다! 휴…) 가련한(?) 의대생인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생리학과 생화학으로 인해 우리는 차겁고 어두운 카데바(cadevar, 시체)의 세계를 떠나 비로소 따뜻한 체온을 지닌 인간의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생화학이 눈에 뵈지도 않는 화학반응과 어지럽게도 돌아가는 각종 싸이클들로 우리를 질려버리게 한데 반해서 생리학은 보다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왔었다. (물론 첫 시험을 보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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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이야기
어린이들이란 밝고 활기찬 모습일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또, 건강한 모습일 때에 희망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아프고 병든 모습은 어른의 병든 모습보다 더욱 보기 애처롭고 딱한 법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의 인턴 시절, 소아과를 돌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런 평범한 생각들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나의 걱정은 나의 소아과에서의 주임무가 될 IV (intravenous (injection); 정맥 주사), 그리고 샘플링 (sampling; 검사를 위한 채혈)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있었다. 정맥 주사가 의사의 일이냐, 간호사의 일이냐는 문제는 많은 논란이 있는 문제이겠지만 어쨌거나 간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이는 일차적으로 인턴의 몫으로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에 내가 정맥 주사에 익숙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턴의 말기에 접어든 나는 이미 정맥 주사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