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건강: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심장질환의 원인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고혈압, 이상지혈증, 흡연 등과 같은 소위 ‘위험 요인’들이 동맥경화를 일으켜 혈관 상태를 나쁘게 만들어 심혈관 또는 뇌혈관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약물치료로 혈압조절을 하거나 이상지혈증을 개선시킴으로써, 또 금연을 함으로써 심뇌혈관 질환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이제는 거의 상식에 속하는 얘기가 되어 버렸다.

헌데, 스트레스는 어떠할까?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스트레스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스트레스로 인해 어떤 병이 어떻게 생기는가, 그것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 사람마다 제 각각의 막연한 답을 던질 뿐이다.이는 무엇보다도 스트레스란 말에 대해서 각자가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연구를 하려면 일단 스트레스란 말의 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가 명확해야 할텐데, 그냥 막연히 스트레스라고 해가지고서는 그저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될 뿐이다.

스트레스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수많은 모델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여기서 그 중 중요하고도 유명한 한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수많은 스트레스 모델들 중에서 심장질환과의 연관이 비교적 많이 연구되어 있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통찰과 해결책이 동시에 들어있는 모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캐논 (W. B Cannon, 1871 – 1945) 이라는 미국의 생리학자는 ‘fight-or-flight response’, 즉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동물들이 위험에 처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일어나는 일반적인 생리적 반응을 묘사한 것으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혈압과 맥박이 상승하는 등의 반응은 결국 위협이 있을 때 이로부터 도망치거나 또는 맞서 싸우기 위해 그에 적합하게 신체가 적응하는 합목적적인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헌데, 이것을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직장의 상사가 모욕적인 언사로 질책을 했다고 쳐보자. 자연계의 동물처럼 맹수와 마주친 것과 같은 위협과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괴로운 상황이 될 것이다. 신체는 여기에 맞서 ‘도망치거나 싸울’ 준비를 할 것이다. 문제는, 정말로 ‘도망치거나 싸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사에게 똑같이 대들 것인가, 아니면 멋지게 사표를 써 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인가. 둘 다 할 수 없다. 몸은 비상상황에서 도망치거나 싸울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신은 그걸 억눌러야만 하는 상황이 되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장기화된다면 많은 문제가 생기고야 말 것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카라섹 (R. A. Karasek) 이라는 스웨덴의 산업공학자는 demand-control 모델이라는 직무 스트레스 모델을 1979년에 제안하였다. 업무량이 과다하고 바쁜 것이 심리적인 부담이 될 것은 당연하겠지만, 여기에 업무에 대한 자율권이라는 요인과 조합할 때 업무로 받는 스트레스가 결정된다는 것이 이 모델의 요점이다. 즉 업무의 순서, 내용, 휴식 시간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유가 있는가 하는 문제, 또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것 보다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고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 등을 통괄하여 업무에 대한 자율권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일이 많고 바쁘더라도 그 업무에 대한 자율권이 충분하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에 따라 스웨덴과 미국의 학자들이 협동하여 다양한 직종의 스트레스 수준과 건강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업무량이 과다하면서도 그 업무에 대한 자율권이 낮은 직종에서 심장질환이 많이 발병할 뿐 아니라, 결근 등의 업무 능률 저하도 심하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도망치거나 싸울’ 수 없는 괴로운 상황에서 꼼짝없이 붙잡혀 참아야만 하는 업무 환경일수록 건강에 나쁘다는 것인데,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공장에서 시간에 쫓기며 끝없이 반복작업을 하는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이는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업무 환경을 바꾸어 노동자들의 능률과 건강을 동시에 향상시키고자 하는 선진적인 혁신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 예가 바로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볼보(Volvo)사이다. 1973년에서 1994년까지 운영되었던 스웨덴 칼마(Kalmar) 공장에 있는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단일한 작업만 끝없이 반복하는 일반적인 조립라인 노동자와 달리 팀을 이루어 다양한 작업을 돌아가며 수행하고, 정해진 작업 목표를 지키기만 한다면 중간에 휴식을 어떻게 취할 것인지는 완전히 자율적으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혁신으로 노동자의 심신의 건강과 삶의 질이 향상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능률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지상 목표인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그냥 꿈 같은 얘기일지 모른다. 그냥 허리띠 졸라매고 무작정 앞만 보고 뛰어도 살아남을까 말까 한 판국에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필자가 진료실에서 운동도 좀 하시고 술도 좀 줄이시고 건강을 좀 챙기라고 얘기하면 고개를 흔들며 그럴 수가 없다고,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물론 나름대로의 사정이 다 있고 혼자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일에 대해 아무런 자율권 없이 그냥 일에 압도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면 심장질환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 망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일은 내가 하는 것이지, 일이 나를 부리게 해서는 안된다.

스트레스란 것은 그냥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 해버리면 그만일까. 우리의 업무 환경을 바꿈으로써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이것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201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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