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스트레스, 스트레스

전국의 20세 이상 6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스트레스’에 대해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정도인 43%가 요즘 일이나 가정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답했으며, ‘어느 정도 느낀다’는 32%까지 합하면 전체 성인의 대다수인 75%가 스트레스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2001년 06월 11일자)

 

우리 나라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세계적으로 높다고 하는데, 그 원인으로 과도한 음주, 흡연, 그리고 스트레스 등이 거론된다고 한다. 모든 병 이야기하는 데에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들먹여진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로울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그럼 ‘스트레스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열이면 열 다른 답을 할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 어떻게 스트레스 없이 사는가’라고도 한다. 심지어는 ‘스트레스가 너무 없어도 문제’라고 하는 사람마저도 한다. 도대체 스트레스란 건 무엇인가?

 

스트레스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일단 이렇게 정의해보자. ‘우리 몸이 뭔가 반응하고 적응할 것을 요구하는 외부의 자극’이라고 말이다. 우리 주변의 환경에는 끊임없이 뭔가 자극이 있다. 우리 몸은 사소한 자극은 무시해 버리지만, 그 자극이 어느 정도 이상 강력할 경우에는 그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스트레스 연구의 개척자라고 불리며 이 방면의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의사인 Hans Selye (1907-1982)는 ‘기분 좋은 스트레스’와 ‘불쾌한 스트레스’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외부의 어떤 자극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하기도 하고 짜증나게 하기도 한다. 똑같은 크기의 소리라도 공사장의 소음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같은 반응을 나타낼 사람은 없다. 아니,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황홀해 하는 사람에서부터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까지 다양할 것이다. 결혼을 하는 경우와 배우자가 죽은 경우, 두 경우 모두 인생의 큰 변화이고 스트레스이지만, 즐겁고 괴로운 데 있어서는 극과 극일 것이다. (아, 반대가 되지는 않기를!) 그럼, 어떤 경우에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자극, 즉 스트레스가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나아가서는 질병을 일으키기까지 하는가?

 

여러분이 산길을 홀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뛰쳐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호랑이가 있는 산이란 슬프게도 이미 없어진지 오래지만 말이다.) 옛날 이야기 속에서라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고 나오는 호랑이하고 무슨 협상이라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일단 현실이라면 그건 아닐 것이다. 배고픈 호랑이란 놈은 여러분의 고기에 관심이 있는 것일 터, 뭐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엔간하면 도망가는 게 좋을 것이고 도저히 도망을 못 갈 상황이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위기에 처한 우리의 신체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동공은 커지고, 식은땀이 흐르고, 맥박수는 빨라지며 심장은 세차게 쾅쾅 뛰고 혈압이 오를 것이다. 도망치든 싸우든 사지의 근육이 힘을 써야 할 때고 한가로이 먹은 음식 소화시킬 겨를이 없으니 혈액의 흐름은 소화기관 쪽으로부터 사지의 근육 쪽으로 쏠리게 된다. 다치고 피흘리게 될 때에 대비하여 혈액 응고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혈액은 응고되기 쉬운 걸쭉한(?) 성질로 바뀐다.

헌데, 우리의 실제 생활은 호랑이를 만나서 ‘싸우든 도망치든’ 해야 하는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직장 상사가 별 것도 아닌 실수를 가지고 인간적인 모욕까지 해가면서 ‘또 그러려면 사표 써’라고 갈구었다 치자. 억울하고 화나고 분통이 터지는 데다가 모가지 짜른다는 소릴 들으니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다. 하지만 호랑이가 덤비는 상황과는 다르다. 사표 던지고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상사의 면상을 냅다 갈겨버릴 것인가? 둘 다 할 수 없다. 우리 신체는 ‘싸우거나 도망칠’ 상황에 맞추어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인데 실제로는 그 어느 쪽도 할 수 없다. 그저 참을 인자나 세 번 쓸 밖에.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이 상황은 금방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많은 경우에 그러하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이다.) 계속해서 비슷한 일이 반복이 되면, 우리 몸은 그때마다 싸워? 도망가? 하면서 비상 동원령을 계속 내리지만, 실제 행동에 옮길 수는 없다. 한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민방위훈련(?)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가용 자원은 고갈되고, 남는 것은 피로뿐이다. 혈압은 오르고, 소화는 안될 것이고, 재수 없이 혈액이 응고되어 뇌혈관에 걸리면 중풍이요 심장 혈관에 걸리면 심근경색이다. 면역 기능마저 저하되면 암에 걸리지 말란 보장도 없다.

정 견디지 못하면 정말로 사표 쓰고 박차고 나오든지, 아니면 대판 싸우든지 하면 일단 해결이 될 수는 있다. (그런 다음엔 생계가 막연하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고 말이다.) 헌데,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가 한술 더 뜨는 것은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 뚜렷이 눈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너무 사방에 널려 있어서 한가지 해결한다고 말끔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길에서 운전하다가 난폭 운전자를 만나 기절초풍할 수도 있고, 불손하게 전화 받는 누군지 모르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익명의 사람한테 욕설을 들을 수도 있다. 그 뿐인가, 백화점이 무너질지도 모르고, 다리가 주저앉을 수도 있고, 요즘 같으면 테러를 당할 수도 있고 탄저병에 걸릴 수도 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도망갈 수도 싸울 수도 없다. 이쯤 되면 맹수에게 쫓기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우리의 먼 조상이 불쌍한지, 우리가 더 불행한 건지 잘 판단이 안 갈 지경이다.

그럼 어쩔 것인가. 그저 그렇게 스트레스를 팍팍 먹어가면서 삭아갈 것인가? 필자도 확실한 답은 모른다. 하지만 몇 가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방법들에 대해서는 얘기해 볼 수 있다.

첫째, 운동을 한다. 비록 실제로 ‘도망가거나 싸울’ 수는 없지만 운동을 해서 대충 비슷하게라도 몸을 움직여준다. ‘비상 동원령’에 걸맞는 정도로 한바탕 몸을 움직여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나면 우리 신체는 알아서 경보 해제 모드로 갈 것이라는 생각이 그럴 듯 하지 않은가. TV 앞에 죽치고 앉아 운동 경기를 보면서 스스로 한바탕 운동이라도 한 듯이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지만, 남이 뛰고 치고 받고 하는 걸 보면서 앉아서 열 올리는 것이 과연 정말로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두 번째, 정서적인 해결방법을 찾는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감정의 앙금을 중화시킬 방법을 찾는다는 것인데, 이는 사람에 따라서 지극히 정적으로 붓글씨를 쓰고, 평화로운 음악을 듣는 것에서부터 번지점프를 하는 것과 같은 가장 요란스런(?) 방법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양상을 띄지만,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과 매우 다른 상황에 몰입한다는 점에서는 대체적으로 공통적이다.

세 번째,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신체의 반응을 조절하려고 시도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위에 열거한 신체의 반응은 자율신경계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본래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절할 능력을 갖출 가능성은 충분히 보인다. 쉽게(?) 무협지버젼(?)으로 말하자면, 피나는 수련으로 내공을 쌓아서 외부의 사기(邪氣)에도 내상을 입지 아니하고 운기조식(運氣彫飾)하여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도통의 경지에 이르러보자는 것이다. 여기에도 세상 사람들이 시도해보는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한데, 안타깝게도 무엇이 효과적이라는 확실한 답은 없다. 의사들의 오랜 격언에도 ‘치료법이 매우 많다는 것은 확실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충분히 고려해볼 만은 하다. 명상, 요가, 기공, 최면, 단전호흡, 바이오피드백, 이완요법, 등등, 아니면 그냥 면벽수도라도 하든지, 하여간 정말 많기도 많다.

네 번째,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가족이든, 친구든, 그저 속 시원히 털어놓고 얘기해보는 것에서부터 뭔가 그럴 듯한 해결책을 조언해주는 데에 이르기까지, 홀로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보다는 뭐가 나아도 분명 낫다.

다섯 번째로 그도 저도 안되면 세상을 등지고 무인도로 떠난다. (아니다, 이건 빼자.)

마지막으로, 그리고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은, 이 사회 전체가 스트레스의 수준을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얘기를 하다보면 흔히 스트레스란 것은 불가피한 것이고, 거기에 고통을 받는 것은 개인의 대처방법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흐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인간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에도 책임이 있음을 간과한다면 진정한 해결은 없다는 점을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매우 광범위한지라 한마디로 이 부분을 정리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우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만 한가지 예로 들어보자. 업무에 대한 부담이 커서 매우 정신없게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는 차이가 날 수 있다. 똑같이 바쁘더라도 업무에 대한 결정권이 많은 경우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단순 반복 작업 보다 작업 내용이 다양할 때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주장도 있다.

1980년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 그 유명한 볼보 자동차를 만드는 스웨덴의 볼보사는 노동자들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적절한 순환 근무와 충분한 교육으로 업무의 다양성과 숙련도를 향상시키며 조직 차원에서 권위주의를 배제하는 등의 일련의 업무 재편성을 통해 생산성의 향상 뿐 아니라 직원들의 건강까지 향상을 시켰다는 선진적인 사례를 이미 남긴 바 있으니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 하다.

이런 모든 방법들을 총동원해야만 할 것이다. 헌데 불행하게도,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열거하지 않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들을 스트레스 해소에 애용하고 있는 것 같다. 술을 퍼마시다가 알콜중독에 빠지고, 심지어는 마약에 취해 현실을 잊어보려고 하기도 한다. 배출할 곳 없는 공격성을 애꿎은 마누라와 자식에게 쏟아 붇는 가정 폭력도 있다. 피할 곳 없는 현실을 자살로 영원히 피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에 이런 저런 다른 설명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 모든 것이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 계기판에 들어온 빨간 불이라고 보고 싶다.

 

200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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