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역시 사랑 노래야!: Derek & Dominos –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1970)

Bobby Whitlock: Organ, Guitar, Piano, Keyboards, Vocals
Carl Radle: Bass, Percussion
Duane Allman: Guitar
Eric Clapton: Guitar, Vocals
George Harrison: Guitar
Jim Gordon: Piano, Drums

기타의 신, 브리티쉬락의 산 역사… 락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명인 에릭 클랩튼을 따라다니는 거창한 수식어들이다. 그룹에서나 솔로로나 그의 discography는 주옥같은 명반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Layla…’는 그의 음악성의 절정을 보여주는 명반이 아닌가 한다.

헌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가 이 아름다운 ‘사랑 노래’들을 만들고 있을 때 그의 인생은 거의 바닥에서 헤메고 있었다는 것이다. Derek & Dominos의 1년 남짓 짧은 활동 기간 중 에릭 클랩튼은 술과 마약에 쩔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뿐인가, 그의 불후의 명곡 ‘Layla’는 거저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전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죠지 해리슨의 아내인 패티를 애타게 짝사랑하여 이곡을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죠지 해리슨이 누구인가, 술과 약으로 폐인이 다 된 그가 재기하도록 도운 그의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런 고마운 친구의 부인을 넘보다니, 한국적 가치관으로 보아서는 거의 때려 죽일 놈이지만, 그네들 쪽에서 보기에는 그저 있을 수 있는 일 정도인지, 글쎄, 잘 모르겠다. (Rolling stones의 ‘Angie’라는 노래는 믹 재거가 데이빗 보위의 부인 앤지 보위를 그리는 노래라고 하던데…?)

Derek & Dominos 이후 완전한 슬럼프에 빠녔던 에릭 클랩튼은 후에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서 결국 멋지게 재기에 성공하는데다가, 결국 사랑까지 이루어져서 꿈에 그리던 패티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음악의 뿌리가 블루스이듯, 그의 인생은 참으로 ‘블루스 맨’ 답게 파란만장한 것이어서, 패티와는 결국 이혼을 하고, 알콜 중독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교통 사고로 그의 밴드 멤버들을 잃는가 하면, 심지어 아들(헌데, 패티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은 아니지요! -_-;;)이 고층 아파트에서 실족, 추락사하는 불행까지 겪게 된다. 그 아픔을 노래한 곡이 유명한 ‘Tears in Heaven’… 그래미 상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을까?

하여간, ‘Layla’를 비롯한 그의 사랑 노래들을 한번 들어보자. ‘Bell bottomed blues’ 같은 아름답고 잔잔한 사랑 노래도 있고, ‘Have you ever loved a woman’같은 그의 구성진 기타 한자락이 흐드러지게 펼쳐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블루스 락도 있다. 크림 시절의 다소 공격적인 연주보다 훨씬 여유있고 느긋한, 한편으로는 구렁이 담넘어가듯 완숙한 맛이 풍기는, 그의 별명 그대로 ‘slow hand’ 다운 연주이다. 느릿느릿하게 치는 듯하면서도 실은 감탄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감각적인 쵸킹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깊은 향취가 배어 있는 연주를 구사하는 것이다. Yngwie Malmsteen 같은 엄청난 속주를 구사해야만 대가인 것은 아닌 것이다.

잠시 각주를 붙히자면 choking 또는 bending이란 전기기타에서 가장 중요한 테크닉의 하나로서 줄을 밀어올려 (이따금씩은 끌어 내려) 장력을 높힘으로서 음을 부드럽게 높히는 기술이다. 특히 쿼터쵸킹은 4분의 1음만큼, 즉 올린 듯 만 듯한 음으로 묘한 뉘앙스를 가진 소위 ‘블루 노트’를 구사하는 기술로 블루스적인 연주에서는 감초라고 할 수 있겠다. 블루스 음악은 ‘도레미솔라’ (궁상각치우?)로만 이루어진 소위 ‘펜타토닉’ 스케일이 주축이 되어있는데, 이중 ‘미’음은 실제 정확한 음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4분의 1음 정도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장조도 단조도 아닌, 그러면서도 장조같기도 하고 단조같기도 한 절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 것 같은 딱 부러지는 정확한 음이 아닌, 약간 불안정하면서도 정확한 음에 접근하려는 듯한 그 절묘한 긴장감을 지닌 음들이 블루스 기타 연주를 블루스적이게 하는 것이다. 에릭 클랩튼은 그 블루스적인 느낌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내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대가인 것이다.

흥겨운 리듬을 타고 ‘슬라이드 기타의 명인’ 올맨과 클랩튼이 한데 얽혀 불꽃을 튀기며 화려한 조화를 이루는 ‘Tell the truth’ 등 낯익은 곡들이 있고, 마지막 곡 ‘Thorn tree in the garden’ 과 같은 숨겨진 보석같은 잔잔하고 차분한 발라드도 있다. 헌데, 한가지 말해둘 것은 이 앨범을 클랩튼의 솔로 앨범으로 여긴다면 큰 착각이라는 것이다. 모든 멤버들의 음악성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의 한곡도 버릴 곡이 없는 셈이지만, 어쨌거나 간에 그 유명한 ‘Layla’를 빼고는 앙꼬 없는 찐빵일 것이다.

에릭클랩튼의 곡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명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곡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반전’에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사랑의 번뇌와 고통에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듯한 전반부가 열기를 더해가다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그 아픔은 스르르 사그라들고,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듯한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험한 절벽을 숨이 턱에 차서 기어 올라 보니 문득 눈 앞에 야생화가 만발한 너른 초원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기서도 올맨과 클랩튼 양인의 연주가 한데 얽히면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노래한다. 사랑의 고뇌를 초월하여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랑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일까?

아픈 사랑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와닿는 노래가 아닐까. 아니, 굳이 아픈 기억이 아니더라도 사랑을 해본, 지금 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할 예정인 모든 사람에게 바칠만한 가슴 짠한 사랑 노래라고나 할까. 너무 흔해빠졌느니 어쨌느니 하지만 대중음악에서 최고의 주제는 역시 사랑이라 할 수 밖에 없다.

2001. 6. 27.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