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이들을 위한 해결책

‘드러 누워서 물 가져다 달라고 소리지르지 말고, 직접 냉장고 가서 꺼내 먹어라.’

‘집안 청소 좀 해라.’

‘마당이라도 좀 쓸어라.’

‘TV를 보더라도 드러눕지 말고 똑바로 앉아서 봐라.’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매우 낯익은 풍경인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일요일 오후, 중년의 샐러리맨은 소파에 축 늘어져서 리모트 콘트롤을 벗삼아 가끔씩 졸아가며 TV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고, 이따금씩 저 멀리서 아련히 들려 오는 마누라의 잔소리…?

천만에! 그게 아니다. 이는 미국 심장 협회 (American Heart Association)의 심장질환 예방을 위한 운동에 대한 권고 사항이다! (믿을 수가 없다고요? http://www.americanheart.org/Health/Lifestyle/Physical_Activity/DayActiv.html 을 보시기 바랍니다.)

운동이 몸에 과연 좋습니까? 이런 어리석은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의사나 스포츠의학 전문가일 필요도 전혀 없다. 세상에 누구라도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자연스레 생각해야만 할 질문은 ‘왜 운동을 안 (못) 하십니까?’라는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의 인기있는 장수 오락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Family Feud’란 것이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이를 그대로 모방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두 가족이 출연하여 퀴즈 맞추기 경쟁을 하는데, 그 퀴즈란 것이 100 명에게 어떤 질문을 해서 나온 대답들 중 가장 수가 많은 것부터 5개 맞추기이다. 필자가 특별히 이 방면에 탁월한 센스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사람들이 운동을 못하는 이유’로 많은 것이 무엇일지는 100% 확신을 가지고 1위의 답변을 찍을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 중에도 똑같은 이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바로 ‘시간이 없어서’ 이다.

운동이 몸에 좋으니 운동을 하자고 부르짖는 글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지만, 그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며 게으름에 대한 자기 합리화일 뿐이라고 사정없이 닦아세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세상에 건강보다 소중한 것이 없는데 그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위한 시간이라면 좀 더 부지런해져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야 마땅하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필자 자신이 무척 게으른 사람이고, 게다가 그 게으름을 ‘즐기는’ 한심한 습성을 가진 터라, 그 ‘시간이 없어서’라는 옹색하게 들리는 변명이 사실은 그렇게 마구 무시해버려도 좋은 변명은 아님을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절대적으로는 분명 아니지만) 일면 사실이다. 많은 직장인들은 엉망으로 엉켜버린 교통 혼잡 속에서, 또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찡기면서 (이것도 운동이 될까? 분명 힘들긴 힘든데 말이다.) 시간을 허비하고, 게다가 회식이다 뭐다 하면서 먹기 싫은 (이것도 실은 변명성 발언!) 술을 억지로 퍼마시느라 시간을 보내고, 낮에 스트레스 받은 것 풀려면 퇴근 후에 잠시(?) PC 방에 들러 온라인 게임이든 채팅이든 뭐라도 좀 해야겠고, 휴일에는 그 동안 모자란 잠 보충해야 하고 TV 스포츠 중계도 봐야겠고, … 도대체 운동이란 걸 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뿐이 아니다. 우리 나라는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것이 미덕인 나라이다. 퇴근 시간을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고, 직장 일을 위해 개인 생활쯤은 좀 희생하는 것이 직장인의 도리라고 여겨지는 나라다. 낮에 못한 일은 집으로 들고라도 가서 밤을 새더라도 해오는 것이 ‘책임감있는’ 자세로 간주된다. 요즘 소위 신세대 직장인들은 다르다? 글쎄, 그들이 얼마나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칼퇴’하는 그들을 ‘일하기 싫어서 농땡이 치는 놈들’로 곱게 보지 않는 고용주와 사회 전반의 시선은 그대로가 아닐까. 그런 압력 속에서, 모가지 보전하기 쉽지 않은 이 험한 세상 속에서 꿋꿋이 버티며 온전히 자기 생활을 챙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여간에, 그래서 필자는 그 변명 아닌 변명, ‘시간이 없어서’에 대해 최대한 이해하려고 한다. 게다가, 그렇다고 ‘그래? 시간이 없어? 그럼 관두구…‘,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자빠질 수만도 없으니, 이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쉽게 실천가능한 ‘대안’을 한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규칙적인 운동’이란 것이 건강이 좋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동시에 운동 안 하는 게으른 족속들을 운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도 절감한 의사, 운동 전문가들은 마침내 약간의 전략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심장협회 (American Heart Association)가 마침내 고전적인 ‘최소한 일주일 3회 이상, 1회 30분 이상의 중등도 이상 강도의 운동’이라는 권고를 다소 수정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즉, 중등도 이상 강도의 운동, 즉 조깅,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의 통상 ‘운동’이라고 부를 정도의 비교적 격렬한 활동을, 그것도 일정 시간 이상 지속해야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는 하지만, 이보다 낮은 수준의 가벼운 활동, 특히 일상 생활 중의 육체적 활동이라도, 그것도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띄엄띄엄이라도 꾸준히 행한다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분명 낫다는 것이 미국심장협회의 권고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다운 운동’을 하는 것만이 정말 운동이 아니고, 그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차 안 타고 걷기, 산책, 심지어 글 첫머리에서 얘기한 ‘마누라 잔소리’(?)에 부응하는 수준의 몸 움직이기라도, 수시로 해서 일상 생활에서의 전반적인 육체적 활동 수준을 높혀간다면, 비록 ‘진짜 운동’을 하는 것만은 못하지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운동량에는 다다를 수 있다. ‘가다가 말면 아니감만 못하니라’ 라는 말은 여기서만큼은 잊어버리자. 뭐라도 하면 안 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나은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의 큰 장점이 있다면, 이런 ‘운동’은 누구라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슨을 받을 필요도, 비싼 장비도, 다 필요 없다. 돈도 한푼도 안 든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한가지, ‘자, 이건 운동 삼아 하는 거다’ 라면서 좀 더 힘차게 몸을 움직이려는 굳은 결심 뿐. (혹시 쓸만한 운동화 한 컬레 정도는 필요할지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이제부터 업무상의 회의는 밖으로 나가서 걸으면서 해보면 어떨까? 가까운 곳에 공원이라도 있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좋은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을 테니 말이다. 짧은 거리라도 어슬렁거리지 말고 힘차게 팔을 휘저으면서 걸어보자. 가까운 주차 장소를 찾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멀찌감치 주차하자. 지하철에서도 에스컬레이터를 거부하고 당당히 걸어올라가 보자.

결국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건강을 지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더욱 건강해지고 싶고 운동의 효과를 최대한 누리고 싶다면, 좀 더 시간을 투자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정말 운동다운 운동을 해야만 하겠지만, 이제껏 움직이지 않던 몸이라면, 그래서 그 달콤한 게으름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렇게라도 우선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 새벽잠을 줄여가면서, 다리에 알이 박여가면서 큰맘먹고 힘들게 운동을 시작했다가 사흘 못 가 나자빠지고, 그러면서 ‘난 역시 안돼’라는 자포자기 상태에 더 깊게 빠져드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것, ‘일상생활 속의 운동‘ 뿐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좀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때를 기다려 운동을 시작할 계획을 세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당장 시작해보면 어떨까? 필사적으로 뭐라도 핑계 거리를 찾아내는 (부끄럽게도, 필자 자신을 포함한) 게으른 이들에게는 좀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이제 ‘시간이 없어서’란 말은 더 이상 변명 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 말이다.

2001. 5. 23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