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직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부부가 비슷한, 또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면, 서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편이 좋을까? 또는, ‘아녀자는 남자가 바깥에서 하는 일 알 필요 없는’ 것일까?
필자가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의사인 필자와 역사학도인 필자의 아내 Y가 하는 일이 무척이나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세상에 억지로 끼워 붙이면 서로 연관이 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만 의학과 역사학은 관계가 있다면 무척이나 깊은 관계이고 또 전혀 상관없다고 우긴다고 해도 사실 별로 반박할 말도 없다. 그건 ‘의학’이라는 말과 ‘역사’라는 말을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의학과 역사학간의 학문적인 상호 관련성과 같은 엄청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놀던 물’ – 혹시 이 표현이 좀 천박하다고 느껴진다면 ‘문화적 배경’이라고나 할까? – 이 꽤나 다르다는 데서 시작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파란만장했던 80년대를 헤쳐온(헤쳐온 건지, 그냥 허우적댄 건지…), 그래서 어지럽고 심란했던 대학 시절을 보냈던 그 유명한 ‘386세대’들이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이라고 하는데,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듯한 어감이라 마음에 별로 들지는 않는 말이다.) 아참, Y는 ‘3’자에는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그건 반올림을 하든지, 뭐 하여튼 대충 비슷하다고 치자.
그러나, 같은 세대라고 해도 의과대학과 인문대학의 분위기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어느 쪽이 이상한 것이고 어느 쪽이 정상인지, 혹은 양쪽 다 이상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 수 학생들은 ‘서로 밥맛없어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문대 학생들은 의대생을 ‘싸가지 없다’는 한마디 말로 경멸스럽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Y는 (이제 와서 얘기지만) 의대생들이 ‘무서워서’ 피해 다녔다고 한다. (의대생이 쫓아다녔다는 얘기는 아니다.)
무섭다니? 뭐가? 그럼 나도 무섭냐고 하니까 다행히도 그건 아니라고 한다. 그럼 뭐가 무섭단 말인가? 의대생, 특히 의예과 학생들은 ‘날라리’처럼 보였단다. 그럼 ‘날라리’는 또 도대체 뭐가 무서운가, 이런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의대생이 정말 ‘날라리’인지 아닌 지부터 생각해보자. 의대생들이 놀기만 하는가? 그건 분명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공부 많이 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Y의 주장이 일리는 있는 것이, 의예과 시절서부터 ‘시간이 나면 놀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것처럼 ‘놀기’에 탐닉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이런 버릇은 학교를 졸업한 후의 인턴, 레지던트 시절과 같이 시간 여유가 점점 줄어들게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처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나중에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악에 받혀서 노는 습성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니, 날라리라는 말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식의 짜증스러운 논쟁은 접어두고 그냥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는 맞는 것도 같다.
공부에 치이고 허덕댄 나머지, 그 외의 다른 일에 대해서는 진지해지기를 포기하게 되고, 이 세상에 전공 공부 외에는 취미와 유희밖에 없다고 여긴다면, ‘날라리’라고 불려도 크게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분위기라면 더더군다나 그렇게 불려도 싸다고 할 것이다. (지금의 의대생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필자로서는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그저 필자의 경험이 그러하다는 것일 뿐이다.)
실은 필자도 Y에게서 ‘날라리’ 소리를 듣는데, 물론 필자는 극구 부인하지만, 의예과 때의 사진에 보이는 주접스레 머리를 기른 모습이라든가 (꽁지 머리는 아니었다. 그냥 깎기 싫어서 잠시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면 좀 한심해 보인다.), 기타 여기서 별로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필자의 어두웠던(? 화려했던?) 과거의 스토리들을 종합하여 볼 때 완전 날라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Y는 느닷없이 ‘춤 좀 춰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적어도 나의 입장에서는) 뗑깡을 필자에게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실 무척 점잖은 사람이다. 어-ㅅ 험!
그런데, 반대로 의대생들도 인문대생들을 같잖게 보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전자는 주로 의대 남학생의 인문대 여학생에 대한 태도인 경우가 많은데, 여자 같지 않다는 뜻이다. 후줄근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나 걸치고 다니는 인문대의 운동권(실제로 운동권이든 아니든, 운동권 풍의 패션(?)으로 돌아다니는) 여학생을 경멸스럽게 얘기하는 이가 적지 않았는데, 사실은 이런 식의 발언을 일삼는 이는 대개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 이상으로 보는 법이 없는 메일 쇼비니스트(male chauvinist)이었고, 이런 사람일수록 본인은 정말 별 볼일 없이 잘난 데 없는 인간인데, 순전히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를 같잖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역겹다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자는 자고로 ‘여자답고’, 예쁘고, 섹시하고,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치장을 해야 마땅하거늘, (거기에다 머리까지 텅 비어서 나긋나긋하게 순종적이라면 금상첨화로고) 저 것들은 어찌 저따위 몰골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상판때기를 쳐들고 다니느뇨…? 뭐 이런 식이다.
이 대목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사실 80년대의 대학가의 분위기를 알아야만 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이야 영화 배우 못지 않게 화려한 패션으로 중무장한 여대생을 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 당시는 대학생으로서 가장 진지하게 해야할 일은 ‘시국을 걱정하는’ 일이었으므로, (임꺽정 신드롬? 아니, 그뿐 아니라 실제로 걱정만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한 정도였다.) 여대생이라고 ‘여자답게’ 꾸미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비난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고, 따라서 그렇게 화려한 치장을 하고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특수한 경우(음대, 미대 정도?)에 속했다. 체력이 달려 전경한테 돌멩이를 못 던진다면 뒤에서 보도 블럭 깨는 일이라도 (공대에서는 집어던지기 딱 좋을 크기로 보도 블럭을 깨는 기계까지 개발했단다. 결국에는 견디다 못한 학교측에서는 보도 블럭을 없애고 아스팔트로 포장을 해 버렸다.) 해야 할 판인데, 어딜 하이힐에 짧은 치마에 화장에 매니큐어이겠는가? 이런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예쁜 여자만 밝히는 의대생이라? 음…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물론 메일 쇼비니스트가 의대생이나 의사 중에 특별히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면 일반 인구와 의사 집단에서 메일 쇼비니즘의 발병빈도(?)를 비교해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있는지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에구… 헛소리…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Y는 대개 ‘누가 의사 아니랄까봐…’하고 토를 단다.)
메일 쇼비니스트는 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어딜 가나 흔히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서, 하이텔에서도 신정모라씨 관련해서 올라온 수많은 게시물들을 골라서 그 발언 내용들을 훑어본다면 잠깐 사이에 한 트럭 분의 메일 쇼비니스트들을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의대생이나 의사의 경우에 특별히 더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애써 생각해 본다. 이게 위로가 되는 말은 결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의대생 역시 인문대생들을 무서워하는 경향도 있었는데, 그것은 인문대생들이 자기네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무서운(?) 선동적인(?) 얘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밥먹듯 줏어섬기는데다가, 뭐라고 어줍잖은 소리 몇 마디 대꾸하다가는 무식한 인간으로 찍힌다든지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자연과학과 관련된 지식에 대해서는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거나 완벽하게 무지하다고 해도 별로 수치스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그건 전문가들이나 알아야 한다고 일축하면서, 인문 과학의 지식들을 모르면 무식하고 교양 없고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경멸하는 것일까?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Y가 미장원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Y의 전공은 영국사이다. 미용사가 머리를 손질하다가 우연히 Y의 전공이 영국사라는 말이 나오자, 그 미용사는 갑자기 리차드 3세인가 하는 자기가 본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Y는 그 영화를 본적도 물론 없고 어떤 영화인지도 잘 모르는데, 미용사는 리차드 3세가 뭐한 왕이냐는 둥, 헨리 8세와는 어떤 관계이냐는 둥 황당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Y는 어쩔 수 없이 침묵으로 버텼다고 한다. 도대체 리차드 3세가 누구고 헨리 8세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모르면 또 어떤가? 그 사람에게 열역학 제 1법칙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근데, 열역학 제1법칙이 뭐더라?)
Y의 학교 동기, 선후배들과 같이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때로는 황당한 꼴을 당하기도 하는데, 한번은 그녀의 선배 한 사람이 필자더러 ‘서양사학과 출신을 마누라로 삼았으니 서양사학과 과가(課歌)정도는 알아야지’ 하더니 눈 부릅뜨고 쳐다보면서 불러보라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물론 적당한(?) 혈중 알콜 농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Y네 학과의 과가는 라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필자는 불어에는 일자무식으로, 사전을 찾아서 확인하고 쓰는 것임.)로서, 다름 아닌 프랑스 국가이다. 내가 그기를 우찌 아노? 참 내. 들어보기야 봤겠지. 그래서 프랑스 국가 모른다고 남편 자격이 없다는 둥 엄청 구박을 받았다. 젠장.
하여간에 무식해서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국제 결혼을 했을 때만은 아닌 모양이다.
또 하나 곤란한 것은 – 이건 문화적 차이와는 다른 문제지만 – 사람들은, ‘의사의 아내’ (물론 실제 쓰여지는 용어는 ‘의사 마누라’)라는데 대해서 어떤 전형적인 모델, 즉 스테레오타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테레오타입은 무척 완고하다.
이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스테레오타입이 무척이나 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일단 의사들은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서, 환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희생과 봉사를 내세우는 위선자, 냉혈한들이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극히 무지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관심 가지는 것이라곤 골프 뿐, 심지어는 의사들은 애를 많이 낳는다, 경제적 능력이 받쳐주는데다 여자 생각은 안하고 피임에 게으르니까, 등등…. 참 다양하기도 하다.
Y가 투덜거리는 것이, 자기는 옷을 그냥 대충 입으면 의사 마누라가 저게 뭐냐고 그러고, 신경 써서 차려 입으면 의사 마누라 되더니 변했다고 그럴 판인데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다. 그러니 내 인생 책임지라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필자가 어찌 해 줄 수 있는 종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참 웃기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의사의 부인들 중에 음대 출신들이 꽤 많다. 음대 출신이 뭐 어떻다는 건 아닌데, 사람들이 의사와 음악 하는 사람이 잘 어울리는 쌍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의사는 환자 보느라고 항상 골치를 썩히니까 음악에서 위안을 찾으면 딱 맞을 것이라는 얘기일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묘한 편견이다. 의사는 환자 보는 것 외에는 골치 썩히고 고민하면 안 되는가? 의사가 과연 이 사회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일까? 그리고 스트레스는 음악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가? 묘하게도 두 가지 분야 모두 사회적인 문제나 이데올로기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간주되는 (실제로는 물론 그렇지 않지만) 분야라는 것, 또 그 폭풍우 속과도 같았던 80년대에도 이 두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대학, 즉 의대와 음대는 거의 무풍지대에 가까운 평화 아닌 평화를 유지했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면, 필자는 색안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벗어 던지고 Y를 본다면 Y는 의사의 아내로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자칭 ‘까진 환자’라고 하는데, 이런 저런 일로 병원 신세도 많이 지고 주위에 의사도 많아 보고 듣고 한 것도 많은 데다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소위 의학 상식들’ – 그럴 듯한 것에서부터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 에 대해 제법 박식하고 (이 분야에 관한 한 필자보다 오히려 한 수 위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에 휘말리지 않는 적당한 균형 감각도 있는 그녀는 확실히 자격이 있다.
주위의 사람들은 자주 Y를 통해서 필자에게 이런 저런 의학 상담을 하게 되는데 대개는 별 것 아닌 것들이어서 ‘괜찮다’ 내지는 ‘별 거 아니다’라는 요지로 간단하게 대답을 해 주게 되는데, 막상 그 빈약한 대답을 질문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는 그녀가 알아서 이것저것 살을 붙인 대답을 해 주는 것이어서, 질문한 사람들이 대개 만족스러워 한다. 이런 걸 볼 때면, 병원에서 주치의(레지던트 1년차)가 자기 밑의 인턴을 칭찬할 때 쓰는 ‘잘 키운 인턴 하나 열 주치의 안 부럽다’는 말이 생각난다. 더군다나, Y는 내가 키운(?) 적 없는데 혼자서도 잘 하니 말이다. 너무 이런 식으로 나가면 눈에 콩깍지가 씌워도 좀 심하게 씌웠다고 비웃을 테니 그만 하겠다.
하여간에 그래서 우리는 의사와 역사학도가 간의 성장 배경에 있어서의 크나큰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 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Y가 좋은 의사의 아내 (이런 대목에서는 우리나라 말 쓰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좋은’은 ‘의사’가 아니라 ‘아내’를 수식하는 말이다. ‘의사의 좋은 아내’라는 의미인데 이 말은 왠지 어색한 게 어쩐 일일까? 어쨌든 a good wife of a doctor라는 얘기다)라고 한다면, 나는 뭔가? ‘좋은 역사학도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로 a good husband of a historian이란 얘기)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학을 너무 모르는 게 혹시 그 조건일 수도 있을까? (행여나?) 좀 반성해 볼 일이다.
- 7.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