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을 보던지 자동차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기억에 따르면 필자가 국민학교 (아니, 요즘은 초등학교이다.)시절만 해도 생활 기록부에 집안 형편을 적는데 생활 정도를 상중하로 구분할 때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가용이었다. 자가용이 있는 집은 ‘상’이었던 것은 기억이 틀림없고 확실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전화가 없는 집은 ‘하’였던 것 같다. (참고 삼아 이야기하면 필자가 국민학생이던 시절은 70년대였다.) 요사이 생활 기록부에는 어떤 기준으로 적는지 모르겠지만 집은 없어도 자가용은 다들 끌고다니는 마당에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가 생활 수준 ‘상’의 기준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혹시 차종으로 따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하여간에 너나 할 것 없이 자가용을 굴리는 마당에 필자는 참으로 굳세게 ‘큰 차'(버스, 지하철 등등..)만 타고 다니며 살았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깜빡 조는 맛이 얼마나 기막힌 지 아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내릴 역을 지나친 적도 수태 많았지만 말이다.)
그러더니 언젠가 한 번 주위를 둘러보니 필자는 굉장히 튀는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남들 안 하는 짓을 하거나 없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튀는 것이 아니라,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탓이었다. 그것이 바로 운전 면허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큰 차’를 애용했다. 사실 말이지 병원 레지던트의 생활이라는 것이 상당히 틀에 박힌 것이어서 집과 병원을 왕복하는 것 외에 돌아다닐 일이 많지 않은 법이라 (1년차 때에는 그것마저 별로 하지 않고 병원에서 마냥 살았지만)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불편하지 않으냐, 차 한대 사지 그러냐고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에게 아직 운전 면허증도 없노라고, 그리고 당장에 면허증을 딸 계획도 없노라고 얘기해 주면 나는 확실하게 원시인 취급을 받게 되곤 했다.
물론 차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필자처럼 차 없어도 벌어먹고 사는 데는 하등의 지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조금 더 편하려 한다는 이유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편하면 얼마나 더 편하랴, 지금도 안 불편한데, 하는 생각, 또 거기에 필자의 타고난 특기인 게으름 부리기와 미적미적 어영부영 세월 보내기 탓에 열심히 대중 교통과 두 다리만 이용하면서 서울시 교통난 해소에 지속적인 기여를 해가며 레지던트 시절을 보내었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차 살 돈이 없었다는 것도 있다.)
헌데, 필자에게도 한가로운 시절이 왔다. 시간이 남는다는 것을 걱정해 본 적이 없던 필자에게도 있는 건 시간밖에 없는 희한한 때가 온 것이다.
차가 없다는 것이 확실히 출퇴근하는데는 특별히 아쉬울 것이 없어도 놀러 다닐 때만큼은 아쉽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다 하는’ 운전 면허를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망의 꿈을 안고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원서 접수를 시켰다. 거기서 어떤 아저씨를 보니 원서의 몰골이 가관인데 너덜너덜하니 떨어지기 직전인데 인지를 붙일 대로 다 붙여서 더 이상 자리가 없어 뒷면에까지 빼곡하게 인지로 도배를 해 놓은 형상이었다. 혹시 나의 장래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필기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무난히 통과하였다. 이게 자랑할 일인지는 무척 의심스럽긴 하지만 필기 시험에서도 추풍 낙엽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쩐지 희망이 샘솟는 듯 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가 보다. 심뽀도 못됐지.)
그 뿐이 아니다. 꺼리도 못 되는 것 가지고 너무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창피스럽기는 하지만 기능 시험마저 한 번에 붙어 버리고 만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같이 별 뾰족한 운동 신경 없는 사람도 다 붙는 시험이니 전국의 운전 면허 시험 재수생(혹은 그 이상)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냥 해보는 소리다.
하지만, 운전 면허를 땄다는 것과 실제로 거리에서 차를 몬다고 하는 것이 전혀 별개의 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마이 카’를 마련한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뒷 유리창에는 큼지막하게 초보 운전 딱지를 붙이고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소시적부터 별로 걱정을 안 하는 성격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날 해 가야 할 숙제를 안 한 것을 발견했을 때, 필자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안달’형이라기 보다는 그냥 가서 손바닥 몇 대 맞고 말지 하는 ‘천하태평’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차를 몰고 출근하기 전날, (실은 이 날은 필자가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이기도 했다.) 베란다에서 멍청하게 차를 쳐다보며 ‘내일, 저놈의 걸 어떻게 몰고 가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유~하고 한숨을 쉬어야 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고, 나는 전쟁터에 나가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로 차에 올라탔다. 나갈 일이 있었던 나의 아내인 Y가 아파트 입구까지만 태워달라고 해서 옆에 태운 채로 출발했다. 왕초보가 운전하는 차를 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죽어도 같이 죽지 뭐!’ 하고 배시시 웃는다. (간 큰 여자? 애정의 표현?)
참고 삼아 얘기하자면 Y는 운전 면허가 없을 뿐 아니라 자동차에 대해서는 가히 일자 무식이다. 한번은 그녀가 여러 사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는데 차를 운전하고 온 사람이 자기 술 먹을테니 Y더러 운전하라고 농담을 하길래 그녀는 운전 면허는 없지만 뭐 어려울 꺼 있겠냐고, 악셀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 밟으면 서고, 하면서 농담으로 받았단다. 헌데 그러고서 그녀가 덧붙힌 한마디에 모두 나가 자빠졌는데, “근데 브레이크가 오른쪽에 있고 악셀이 왼쪽에 있는 거 맞나요?” 했단다. 혼자 짐작에 브레이크는 중요하니까 오른발로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경악을 하면서 차라리 음주 운전을 하는 게 낫겠으니 운전대 근처에 가지 말라고 했단다.
점입가경이라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자 Y는 속으로 ‘아하, 악셀이 오른쪽이고 브레이크가 왼쪽인 모양이구나.’ 했단다. (껄껄껄….) 그녀는 나중에 필자에게 그 얘기를 해 주면서 도대체 오른발로 브레이크와 악셀을 밟고 왼발로 클러치를 밟는다는 것을 그 어디에서 배운 적도, 누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또 한가지 덧붙힌다면 클러치라는 게 있다는 것, 그래서 자동차 페달이 세 개라는 걸 나한테 들어서 처음 알았다고 한다. “페달이 두 갠지 세 갠지 어떻게 알아? 남의 발 밑을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 볼 수도 없고!” 뭐, 하긴 자동 변속기도 많으니까, 두 개건 세 개건 무슨 상관이냐.) 하여간에 생초보가 운전하는 차를 서슴없이 같이 타는 그녀의 용감함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그녀의 자동차에 대한 ‘무개념’에 기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애정과 신뢰의 표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완전한 산꼭대기에 있어서 경사가 급하고 좁은 길을 꼬불꼬불 내려가야만 한다. 그야말로 왕초보인 필자는 핸들을 꽉 부여잡고 벌벌 떨면서 언덕길을 기어 내려가고 있는데 급커브를 만나서 모퉁이를 돌자마자 올라오던 차와 코앞에 맞닥뜨렸다. 바짝 긴장한 채 핸들을 잡고 있던 필자는 브레이크 밟을 생각도 못한 채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 돌렸다. 그러자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나면서 차가 오른쪽으로 기우뚱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변괴란 말인고? 차 밖으로 나와보니 (나중에 Y에게 말을 들어보니 이 때의 얼굴이 백지장이었다고 한다.) 길 오른편에 있는 도랑에 앞바퀴가 쳐박혀 있었다. 마주 오던 차의 운전자도 같이 내려서 참으로 황당한 얼굴로, 하지만 ‘이거 내 잘못 아냐!’하는 얼굴로 기우뚱해진 내 차와 기절하기 일보직전인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출근 시간이라 지나는 사람이 많아 모두 다 한번씩 쳐다보고 끌끌 혀를 차고 지나 가는데, 꽤나 딱해 보였는지 그래도 어떻게 해 보겠다고 몇 사람이 모여들었다. 차를 꺼내 보려 했지만 내리막길에서 앞바퀴가 빠진데다 전륜구동이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필자의 직장에는 차가 여러 대 있어 이를 관리하는 차량 전문가가 있었다. (참 좋은 직장 아닙니까? ‘군대’라고 아시나 모르겠습니다만….) 누군가 부대에 연락을 해서 사람들이 꺼내러 오게 해 주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각기 출근길을 서둘렀고 (출근해야 하는 Y도 마찬가지이다. 그 지경이 된 걸 뒤로하고 가려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나는 도랑에 바퀴를 쳐박고서 비뚜름하게 기울어 있는 주인 잘못 만난 불쌍한 내 차 옆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로 도와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머리 속으로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이 바보 멍충아! 거기서 그렇게 핸들을 확 돌리면 어쩌냐!’ 하는 단말마적인, 지금 이 마당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자책에, ‘운전한다는 게 이다지도 어렵나!’하는 한탄에, ‘신혼여행 갔다 와서 첫 출근에 이런 꼴을 당하다니… 흑흑….’ 등등의 서글픈 생각마저 들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다. 도랑에 빠진 바퀴 밑에 모래 주머니를 고이고, 케이블을 연결하여 차로 끌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드디어 차를 꺼내었다.
“차 몰고 가시겠어요?”
사람들이 조금은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 보았다. 에라, 이 마당에 내가 무엇이 겁나랴, 가자, 가. 어떻게 부대까지 차를 몰고 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뒤로 한동안은 피곤한 나날을 보내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와 오면 창가에서 차를 멍청히 바라보면서, ‘저 애물단지, 오늘은 또 어떻게 몰고가나…?’하고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 저녁으로 주차할 때마다 앞뒤로 고루고루 담벼락에 콩콩 들이 받는 통에 소소한 흠집이 수도 없이 생겼다. 사람들은 새 차에 흠나면 그렇게 속이 상한다던데, 필자는 처음에 하도 얼을 빼놔서 그런지, 그래서 마음을 완전히 비워서 그런지 그렇게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남의 차 들이박지 않는 것만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날 그날을 넘겼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이 세상에 남극에도 살고 적도에도 사는 동물이 어드메 있단 말인가. 한달쯤 지나면서 우선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오후만 되면 ‘오늘 어떻게 퇴근하나?’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어졌다. 밤에도 한 번 나가보고, 이곳 저곳 조금씩 다녀보니 공포심은 조금 덜해지는 듯 했다.
그러자 겨우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생초보 때는 바로 눈 앞에 밖에 안 보이고 남들이 어떻게 다니는지 볼 생각도 없었고 보이지도 않던 것이 조금씩 다른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 희안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 나와 있는 운전자들 중 열에 여덟은 아마츄어 카 레이서들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면 신호가 떨어지기 한참 전부터 부릉부릉하고 움찔움찔 앞으로 나가는 모양이라든가, 신호가 떨어졌을 때 1초만 출발을 늦게 하면 뒤에서 당장에 빵빵거리며 난리가 난다는 것이라든가, 초보 딱지를 붙인 채 벌벌 기어가는 나를 좌우에서 쌩쌩 앞질러서 앞으로 휙 끼어드는 모양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다 그러하였다.
백미러를 들여다보면 (왕초보로서는 백미러라는 걸 들여다 볼 생각이 난다는 것 자체가 참 대견스러운 일이다.) 내 뒤에서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앞지르고 싶어서 답답해 미치겠다는 표정의 운전자를 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때론 빵빵거리고, 심지어는 라이트를 번쩍거렸다. (라이트를 번쩍거리는 건 상대방에게 눈을 부라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행동인데 초보 딱지를 뻔히 보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심뽀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앞질러 가는 건 좋은데 제발 내 앞으로 휙 끼어드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사람들도 참으로 신기한 이야기들만 하였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자기 차 앞에 ‘절대로’ 다른 차를 안 끼워 준다면서 그게 마치 자기가 운전 잘 한다는 얘기인 양하고, ‘잘못 양보해 주다가 사고가 난다’고 한마디 더 하기까지 한다. 그럴 정도 운전 실력이면 왜 사고 안 나게 ‘잘’ 양보해 주면 안 되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말이다. 앞차가 그 앞에 두 대만 딴 차를 끼워주면 열받아서 기필코 그 차를 추월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도 있고, 좌회전 신호가 떨어졌는데 앞차가 미적거리고 있으면 경고등을 껌벅이며 중앙선을 넘어 확 내달아서 앞에 끼어드는 사람도 있다. 얌전히 서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필자가 병신인 것 같은 느낌이다.
차선 바꿀 때 깜빡이는 절대 켜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실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데, 깜빡이를 켜서 차선을 바꾸겠다는 것을 옆 차선 뒷차에 알려 주면 속도를 늦춰서 순순히 끼워주기는 커녕,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듯이 악셀을 확 밟고 앞으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적에게 아군의 작전을 노출시키지 않아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필자 같은 초보에게 차선 바꾸기는 엄청난 스트레스인 것이다.
하여간에 전반적인 거리의 분위기는 ‘병신같이 운전도 못하는 초보는 다 죽어야’ 하든지, 아니면 운전하지 말고 곱게 집에서 방구들 신세나 져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좀 한적한 길에서 차를 몰고 가던 나는 왼쪽 차선에 있는 차가 굉장히 멀리 뒤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샌가 바짝 뒤에 다가선 그 차가 빠~앙!하는 소리와 헤드라이트를 마구 껌벅이는 게 아닌가. 밤이라서 거리 감각이 둔해서 잘 몰랐던지, 아니면 그 차가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도 뒷차가 난리를 치는 통에 얼이 빠져서 손을 들어서 미안하단 표시 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이 차가 나를 휙 앞지르더니 앞으로 확 끼어들어오면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아닌가. 황급히 나도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가까스로 충돌을 모면하였는데, 그 차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휙 가버렸다.
정말 교양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교양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필자이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개xx로 시작해서 x팔놈으로 끝나는 육두문자를 닥치는대로 뱉어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 때 옆에 타고 있던 Y가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족히 한시간 동안은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간신히 분을 가라앉히고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더 화가 났다. 내가 뒤를 잘 못보고 무리하게 끼어든 것은 잘못이긴 하지만 엄연히 깜빡이를 미리 켜고 들어간 것인데 저도 속력을 좀 늦춰 줘야 마땅하지, 그렇다고 빵빵거리고 헤드라이트를 부라리는 것만도 매너 황인데 게다가 앞으로 들어와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고의로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행동이 아닌가! 게다가 내가 뒤에 초보 딱지를 붙이고 있으니 얕잡아보고 그런 못된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화내서 무엇하랴. 정신 건강에 해로울 뿐이고 가뜩이나 머리 숱 없는 머리에 아까운 머리카락만 축낼 뿐이다. 이 사회에 경쟁이 있다는 사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경쟁이란 것이 힘없는 사람, 건드려도 뒤탈 없을 사람은 무자비하게 밟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남을 밟아야만 자기가 잘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마음에 박혀 있으면 경쟁이란 것이 전혀 무의미한 (게다가 때로는 위험 천만인) 운전할 때까지 그렇게 사람들이 미쳐 날뛰게 되는가. 초보 딱지를 붙이고 있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는 사람은 열에 한두 명 꼴이다.
필자는 결국 초보 딱지를 떼버리기로 했다. 이것도 위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 법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데 그 법을 지켜야만 하는가? 오히려 나의 약점만 ‘적들에게’ 노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씁쓸함을 느끼며 붙여 놓았던 초보 딱지를 떼면서 요즘 세상 참 살기 힘들다는 맥아리 없는 생각을 한번 해 보았다.
1997.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