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통신이란 신통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게 된 것도 어느 새 3년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경력이랄 것도 없는 필자의 통신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내인 Y와의 메일 주고받기와 채팅이다.
Y와 통신상에서 만난 것은 물론 아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필자 역시 PC 통신이란 게 있다던데, 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녀를 만난지 얼마 안되어 필자가 가지고 있던 거의 사망 직전의 AT 컴퓨터를 필자의 친구에게 거저 넘기고 486 DX, 4 MB RAM, 120 MB 하드 디스크 등, 92년 당시로서는 비교적 쓸만한 사양의 컴퓨터를 큰 맘 먹고 장만하였다. 멀티미디어 컴퓨터는 당연히 아니었고, 당시에는 별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2400 BPS의 모뎀이 달려 있었다.
그 전에 가지고 있던 AT 컴퓨터에 대해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89년도, 그 전까지 완벽한 컴맹이었던 필자는 XT를 하나 사려다가 매니아였던 한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정말로 큰마음을 먹고 AT컴퓨터를 구입했는데 물경 20 MB의 어마어마한(?) 용량을 가진 하드 디스크에 드물게도 2MB의 RAM이 달려 있는, 당시로서는 초보자의 분에 넘치는 호화판 사양의 컴퓨터였다. 당시에는 하드 디스크 없는 XT도 수두룩했고 10MB 하드 디스크가 보통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그게 불과 7년전이라니 참으로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이 훌륭한 AT도 순식간에 고물, 아니 애물로 변해버렸고 (Windows(당시 최신 버젼 3.0)를 한번 띄우자면 3박 4일은 걸리리라. 물론 그러려는 생각도 안했지만.) 거의 컴맹에 가까운 필자의 친구가 팔라고 하는 것을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거저 줘버리고 말았다. 헌데 들고 가자 마자 거의 회복 불능의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그 친구는 교통비도 못 건졌으니 오히려 필자가 미안할 일이다.
얘기가 옆으로 좀 샜는데, 하여튼 중요한 것은 새로 산 486에 2400 BPS 모뎀이 – 지금은 돌도끼 취급을 받겠지만 – 달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모뎀을 고이 모셔두고 썩힌 것이 1년하고도 몇 달이 넘어서, 어느 날부터인가 PC 통신이란 게 있다던데, 한 번 해봐야 할 텐데, 하는 강박 관념 비슷한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마디씩 하는 이야기들, 또 서점의 책꽂이에서 점점 더 넓은 폭을 차지해 가는 PC 통신에 대한 책들, 그런 것들이 필자의 호기심을 살살 긁은 탓이리라.
헌데 불행하게도 PC 통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 줄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럴 듯한 책을 사서 읽어보고 하이텔에 가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헌데, 그 때부터가 그야말로 고행 길의 시작이었다. 일단 모뎀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놈의 ‘OK’ 사인을 보려고 난생 처음 컴퓨터 케이스를 열어서 점퍼를 바꿔 끼어서 포트를 이리 저리 바꿔 보면서 날밤을 새웠는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하드웨어가 속 썩이는 것을 경험한 분이라면 이 열받는 심정을 이해하실 것이다. 팅팅 부은 눈으로 출근해서 멍한 하루를 보낸 필자는 집으로 오자마자 다시 컴퓨터에 달라붙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제까지 돌부처처럼 묵묵부답이던 모뎀이 ‘OK!’ 하고 미소를 보내는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하이텔에 접속하여 신규 등록을 하였다. 무슨 생각으로 ID를 jazzman으로 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괜찮은 ID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조금 후의 얘기지만, 채팅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거의 무조건 한마디씩 물어보는 것이 “째즈를 좋아하시나 보죠?” 하는 것이었는데, 수도 없이 똑같은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대답하기도 너무 지겨워서 이 질문에 대답하는 혼잣말(script)이라도 짜둘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흥분이 아직도 채 가라앉지 않은 다음 날, 필자는 다시 접속하려 하였다. (신규 가입 처리가 아직 되지 않았을 것이 뻔하지만) 헌데 이게 웬일인가. 모뎀이 또 말을 안 듣는 것이다. 또 케이스를 괜히 열었다 닫았다, 전원을 켰다 껐다 난리를 치며 밤을 지새웠으나 헛수고였다.
다음 날, 눈이 더욱 팅팅 부은 상태로 컴퓨터를 키자 이번에는 또 OK. 이해할 수 없는 모뎀의 변덕으로 짜증으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 컴퓨터 구입처에 문의하자 모뎀이 고장일 것 같단다. (윽.. 진작 전화할 껄!) 새 모뎀 (역시 2400 BPS)를 달자 멋지게 연결이 된다. 십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기분.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사이버 스페이스를 누비는 일만이 남아있다.. 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고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는 사이, Y와 나는 약혼을 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약혼한지 한 달 만에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것도 이만저만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어서 정확하게 지구의 반대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행기 타고 열 몇 시간은 족히 가야만 하는 거리였다. 국제 전화 값 때문에 파산할 것이냐 일주일은 족히 걸릴 편지나 보내고 있을 것이냐의 기로에서 한 가지 대안으로 팩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낡은 팩스 기계가 있었고 나는 팩스모뎀을 사기로 하였다. 14400 BPS라는 경이로운 속도를 자랑하는 팩스 모뎀을 사니 PC 통신에서 파일 전송 받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헌데, 팩스를 보내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그녀에게 보내는 연애 편지가 한 페이지만 들어가고 똑 끊겨 버리는 것이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서 두 페이지나 보내냐고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글 쓰는 것 보면 말이 좀 많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으세요?)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해결책을 찾아서 기약 없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소프트웨어의 문제인가 하여 각종 팩스 프로그램들을 다 섭렵하였고, 여기저기에 팩스를 보내서 시험을 해 보았다. 그리하여 상당한 액수의 국제 전화 요금 고지서를 받고, 거의 탈진할 지경에 이르러 겨우 결론을 내렸는데, Y의 팩스기계가 느려서 보내는 대로 받지 못한다는, 참으로 맥빠지는 결론이었다.
필자는 열 받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을 좀 하고 싶다는데, 왜 이렇게 돈은 돈대로 들면서 걸리적거리는 게 많고 힘들단 말인가!
그래서, 인터넷이란 게 있다던데, 시내 전화 요금으로 메일도 보내고 채팅도 한다던데, 어떻게 좀 해 봐야 할 텐데, 하면서 똥마려운 사람 화장실 찾듯 방법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하이텔 같은 통신망이 뭐가 다른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하여 (당시 게시판에 보면 ‘인터넷이 뭔가요? 인터넷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와 같은 원시적인(?) 수준의 한심스런 질문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수준이었다.) 한참의 연구 결과, 마침내 최상의 (최상이라고 추정되는) 방법을 찾았는데, 대학생인 처남(될 사람)의 이름으로 account를 얻어 쓰는 방법이었다. 처남을 들들 볶아서 account를 열고 최초로 dial-up 했을 때의 짜릿함도 잠깐, 무심하게 떠 있는 Unix prompt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곧 발견했다. 이게 인터넷이야? 이제 어떻게 하는 거지?
가공할 접속난과 (나중에 듣자 하니 당시 그 학교의 dial-up 회선은 20개에 불과했었다고 한다.) 느린 속도, 생소한 Unix 환경에 시달리고, 어떻게 하면 한글을 써서 채팅을 할 것인가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하는 등, 수많은 난관이 남아 있었다. 한참의 시행착오 끝에 한글 채팅은 한글을 지원하는 BBS에서 만나서 채팅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지구 저편에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이와 인터넷에서 만나는 감동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란 짐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견우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듯 어렵게 어렵게 얻은 수확이었다. 문제는 심심치 않게 이 ‘까치’와 ‘까마귀’들이 말을 안 들어서 한글 BBS에 접속이 잘 안 되기도 하고 중간에 ‘얼어’버린다든지, 접속이 끊기는 일이 드물지 않게 생긴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서로 길이 엇갈려 여기 저기 한글 BBS들 사이를 방황하며 애타게 서로를 찾는 지경이 되기도 하였다. (엉엉.. Y야, 어디 있는 겨..)
한글로 메일을 어찌 보낼 것인지를 몰라 한동안 콩글리쉬로 편지를 보내다가, ftp로 접속해서 보내다가, 별 짓을 다했는데, 불타는 학구열(?)로 연구를 한 끝에 uuencode를 이용해서 binary file을 변환해서 메일로 보내고 받는 사람은 uudecode로 풀어서 보는 방법이 가장 유용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헌데 조금 긴 편지를 보내려니 문제가 심각하였다. 필자의 account가 있는 호스트에서는 kermit외에는 기본적으로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Kermit라고 하는 것이, 시험 삼아 써보면 당장에 알겠지만 64 byte 씩 인가 뭉기적뭉기적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눈꼽 만큼 씩 전송하는 프로토콜로서 성질 급한 사람 홧병 도지게 만드는 애물단지인 것이다. 뭔 수를 써서 Zmodem을 써야만 하것는디.. (Winsock 사용이 일상적으로 되어 버린 지금으로서는 좀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Unix란 필자와 같은 어벙한 사용자를 위한 OS는 결코 아니어서, 프로그램을 하나 깔자면 도스나 윈도우즈처럼 ‘setup’, ‘install’만 치고 나서 하라는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소스를 가져다 놓고 직접 C compiler로 compile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시스템에 대한 호환성을 보장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입까지 떠서 넣어줘야 받아 먹을 동 말 동 하는 필자 같은 얼치기 사용자로서는 소스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컴파일, 설치까지 손수 해야 한다니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미 콤파일되어 있는 실행 파일을 가져다 놓고 실행하려 했지만 전혀 되지 않았다. 소스를 구해다가 현 시스템에 맞는 옵션을 주고 컴파일 해야 한다. Archive로 찾으니까 소스는 인터넷 산지 사방에 잔뜩 깔려 있었다. 소스를 가져다 놓고 보니 뭘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에잇, 아무렇게나 해 보자. 이럴 땐 무식해지는 길밖에. 대충 해 가지고.. 엔터.
그러자, 그로부터 수십 초 동안은 화면에서는 어지러이 난무하는 와글와글하는 에러 메시지들의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그러고 나니 무슨 파일들이 잔뜩 생기긴 생겼는데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끝없는 시도와 좌절 속에 에러 메시지(물론 그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는)와의 전쟁을 벌인 끝에 결국 Zmodem을 인스톨하는데 성공하였다. 어쩌다가 됐는지는 도대체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필자가 군대 가기 전까지 Y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만족스런 interneting을 즐겼다. Y는 사실 ‘넷맹’이었는데 결코 남을 가르칠 만큼 유능하지는 못한 필자에게서 배운 유일한 ‘제자’이다. (그 ‘제자’에게 또 제자 – 그것도 이과 계열의 – 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 이 유능한 제자는 국내 PC 통신망은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이 Internet을 먼저 사용하게 된, 좀 보기 드문 사람이다. 좀 팔불출리스틱(?)한 발언이라고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Y는 컴퓨터 다루는데 특별히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도 꽤 영특한 제자였는데, 나중에 하는 얘기로는 ‘골은 아프지만 애정의 힘으로 극복’했단다.
생각해보니 Y와 떨어져 있어서 인터넷으로 e-mail을 보내야만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들 필자는 아마 지금 온 신문에서 떠드는 인터넷이 과연 뭔가, 저거 꼭 해야 되나, 그런 불안감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 ‘애정의 힘’이 크긴 큰가보다.
결혼한 후에 같이 사는 동안은 인터넷이란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Y가 다시 영국에 가게 되자, 죽으나 사나 인터넷에 또 목매달아야 할 형편이 되었는데, 필자가 인터넷을 떠나 있던 동안 (당연한 얘기지만, 인터넷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 인터넷에는 난리 법석이 일어나서, WWW 선풍이 불고 있었다. 다시 인터넷을 쓰려니 거의 환상적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남들 다 하는 멋진 것 좀 해보겠다고 각종 에러 메시지의 악몽에 시달리며 또 며칠 고생 고생했다. 세상 일 거저 되는 게 없다더니 정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에서 필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저 메일과 채팅이다.
인터넷에서만 놀던(?) Y도 국내 통신에 입문하여 하이텔에 ID를 만들고 하이텔이 인바운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덕분에 인터넷 한글 BBS들을 찾아 헤매는 일은 이제 별로 없게 되었다.
하도 새로운 것들이 자꾸 자꾸 나오는 세상이라, 어디서 생소한 낱말이 튀어나오면 ‘저건 또 뭐야, 저것도 배워야 하는 건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게 된다. 컴퓨터에서, 특히나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 해 보자고 하면 그저 쉽게 척 되는 일이 없고, 특별히 옆에서 손잡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 이상, 잘 안되어도 무엇 때문에 안 되는 지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이렇게 해봤다 저렇게 해봤다 하면서, 컴퓨터를 왕창 때려부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답답하고 열받는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낀 필자는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이제 새로운 것 좀 그만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애정의 힘’으로 어찌 어찌 버텨 왔는데, 이제는 머리도 좀 석회화(?)되는 것 같고.. 그래도 어쩌겠는가. 먹고살려면 기를 쓰고 또 새로운 걸 배워야지.
하여튼 요사이는 평화스럽게 Y와 채팅을 즐기는 것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낙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 혹시나 어느 날 필자가 하이텔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와 깊숙이 잠수한 상태로 도대체 물위로 나올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신다면, Y와 채팅을 즐기고 있다고 추측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부디 모른 척하고 지나가 주시어요. 왜냐고요? 신혼이니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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