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2)

사람들이 남들이 결혼한다고 할 때 보이는 반응은 경우에 따라 무척 다양할 것이지만 기혼자의 경우에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인사에 예외 없이 덧붙이는 한마디 말이 있다. 물론 표현은 다양하겠지만 그 내용은 다 같다. “좋~을 때다.” “그래 어디 살아 봐라.” “애만 한 번 낳아봐라. 좋은 것도 잠깐이다.” “지금처럼 평생 재미있을 줄 알지?” “신혼 여행 다녀오고 나면 끝이야.” 등등. (참고삼아 말해두자면 맨 마지막 얘기는 결혼한 지 석 달 된 친구가 한 말이다. 참 웃기는 세상이다.) 어떤 경우에는 부러움 섞인 농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네들의 신세 한탄이기도 하고 가끔은 별로 듣기 좋지 않은 악담이기도 하다.

심지어 Y의 어떤 아는 사람은 사준지 관상인지 뭔지를 좀 안다고 주장하면서 Y에게 하는 소리가 두 사람 모두 날카로운데다 유약한 사람들이라 언젠가는 서로 크게 부딪힐 것이라는 것이다. Y가 그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자 계속 쫓아다니면서 똑같은 소리를 하고 나중에는 언젠가 자기가 한 말이 뼈에 사무칠 날이 있을 거라고 했단다. 이 정도 되면 거의 장난스런 악담의 경지를 넘어서서 저주의 주문을 외는 정도이니 도대체 사람들 왜 그러나 모르겠다. 내가 의사로서 ‘이 사람 틀림없이 오늘 밤을 못 넘길 것이다.’ 라는 판단을 내린 후 그 판단이 정확히 들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들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을 일일까? 뭐 취미가 좀 별나면 재미날 수도 있겠지만.

사는 게 그렇게 재미없는 일인가? 산다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긋지긋한 다람쥐 쳇바퀴일 수도 있지만 이제 결혼한다는 사람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그게 도대체 뭔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환멸이 있으려면 환상이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아직 신혼이니 이러한 갖가지 말들에 대해서 뭐라고 논평하지는 못하겠다. 몇 년 살아보고 애도 낳고 한 다음에도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재미나게 살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그때 다시 논평해 볼까 한다.

하여간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런 소리 듣다가 훌쩍 제주도로 떠나오니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상쾌한 기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도착한 그 다음 날은 그야말로 코가 비뚤어지도록 잠을 잤다. 한 20 년을 혼자서 자다가 둘이 자면 불편(?)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것은 기우였다. 코를 골면 어쩌나, 이를 갈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필요 없었다. 그저 원도 한도 없이 푹 잤다.

사람들이 또 하는 얘기가 신혼여행은 계획을 철저히 짜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이 말도 철저히 무시했다. 도대체 계획이란 게 없었다. 정성스럽기 짝이 없는 내 친구 한 명은 자신의 신혼여행 기억을 더듬어 제주도의 가볼만한 곳을 줄줄이 써서 편지로 보내 주었는데 이것이 장장 두 페이지에 빽빽하게 꽉 찬 리스트였다. 이 친구가 정말 여기를 다 가보았을까 하는 의아심이 앞설 지경이었다.

주위의 이런 따뜻한 배려를 깨끗하게 무시하게 된 것은 남의 말 듣기 싫어한 나머지 남들이 이거 해라하고 자꾸만 얘기하면 할수록 하기 싫어지는 이상스런 나의 고집과 발발거리고 싸돌아다니기는 영 체질에 맞지 않는 게으름, 그리고 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하는 Y의 순종, 뭐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룬 탓이리라. (여기서 ‘순종’이라는 부분은 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는데 그녀는 스스로 머리 쓰기 귀찮은 분야에 대해서는 무조건 나 하자는 대로 한다. 이것이 그녀의 ‘순종’이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가 도대체 생각이 안 나면 ‘너랑 똑 같은 거!’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참 똑똑하기도 하지.)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그날 무엇을 할지는 그날 아침에 가봐야 알 수 있었다.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도 있지만 무계획, 무대책이란 게 얼마나 편한 것인지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편안함과 자유로움의 극치인 것이다.

교통수단이 좀 불편했지만 그냥 이것저것 타고 다니기로 했다. 운전면허 따고 운전이라곤 도로 연수 몇 번 한 것뿐인 알량한 내 운전 실력으로 무슨 수로 렌트를 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택시 대절해서 다니기는 영 싫었다. 신혼여행이 둘이서 가는 거지 왜 택시 운전사랑 셋이서 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리하여 버스도 타고 다니고 영 불편하면 택시도 타고 맘 내키면 걸어도 다니고 하는데 택시를 탈 때마다 운전사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하는데 하도 똑같은 소리를 계속 듣다보니 나중엔 미칠 지경이었다. 그 양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세상에… 어떻게 신혼 부부가… 택시 대절도 안하고… (그것도 못하고 불쌍하게, 쯔쯔…)”

“도대체 왜 그럽니까? 택시 대절하면 좋은 데 다 돌아다니고 자~알 해주는데.”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신혼여행인데…”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신혼여행이라서 택시 대절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지만 하여튼 택시를 탈 때마다 똑같은 말을 듣다 보니 나중에는 우리가 이상한 건지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구별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운전사는 우리가 일부러 택시 대절을 안하고 다닌다고 하니까 “하긴, 신혼 부부도 가지각색이데요.” 하더니만 자기가 본 어떤 신랑은 감귤 농장에 가서 며칠 동안 신나게 일만 해주다가 갔다고 한다. 얘기 들으면서는 참 웃기는 신랑도 다 있다 했는데 택시에 내려서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가 그 정도 수준으로 희한하다는 얘기인 듯 했다. 그 사람 눈에는 우리가 엔간히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편했다. 가고 싶은 데로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도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신혼 부부들의 엉덩이나 손길들로 반질반질해진 바위 위에서나 나무에 기대서 (물론 사진 찍는 차례를 위해 줄 서서 기다려야만 한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의 숙련된 연출에 따라 정해진 포즈로 사진을 찍는 대신 그저 아무 곳에나 마음 드는 곳에 삼각대를 세우고 그냥 셔터를 눌러대는 게 재미있었다.

나나 Y나 제주도가 처음은 아니어서 못 가보았던 곳을 가보고 싶었다. 미리 계획한 바는 없었는데 날씨가 마침 좋고 해서 마라도를 가 보기로 작정하였다. 나중에 신혼여행 다녀와서 느낀 것인데 사람들이 신혼여행 재미있었느냐고 물으면서 대개들 하는 수작이 어디어디에 다녀왔냐고 물어 봐서는 못 가봤다고 하면 “캬~ 거기 정말 좋은데, 거기를 못 가보다니…” 뭐 이런 것이다. 이것도 도대체 무슨 심뽀인지 모르겠다. 제주도가 동네 뒷산도 아니고 그 수도 없는 좋은 곳들을 무슨 수로 다 다닌단 말인가. 그리고 못 가보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 곳이 그렇게 좋다며 침이 마르도록 열변을 토하는 게 뭐 그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도 약 안 오르다, 메~롱.

이런 것까지 미리 생각하고 한 짓은 아니지만 마라도를 다녀온 것이 이런 경우에는 무척이나 편리하였다. 마라도라는 데가 그렇게 쓱 가볍게 다녀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어서 가본 사람들이 많지 않은 탓인지, 어디어디를 다녀왔냐고 묻는 말에 첫 마디로 마라도에 다녀왔다고 하면 위와 같이 약 올리는 재미라도 볼까하여 말을 붙인 사람 같으면 찍 소리도 못하고 사그러드니 말이다.

마라도는 제주도 모슬포나 산이수동에서 뱃길로 40분쯤을 가는 거리에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산방산에서도 보인다. (산 꼭대기가 아니라 바닷가에서도) 뱃길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뻔히 보이는 곳에 가려면 한 시간 쯤은 잠깐이다. 전복을 엎어놓은 듯한 형상의 납데데한 섬인데 사방이 절벽이다. 우리나라 땅끝의 절해고도인지라 고즈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 이런 무드를 잡기에는 여객선의 노래방과 뽕짝거리는 음악 소리가 영 방해가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동물이 사람인 것은 참으로 틀림이 없다.

계단을 올라가 섬 북쪽 편으로 펼쳐진 널찍하고 약간 경사진 풀밭에 올라서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그 시끄럽던 소리들도 섬의 고요함 속으로 스러지고 나서야 겨우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었다. 가만 눈치를 보니 사람들은 여기서도 정해진 ‘코스’를 따라다니는 모양인데 아마도 우리가 무심코 간 방향이 그 사람들하고 반대였던가 보다.

무슨 큰 볼거리라도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세상과 한참은 동떨어진 듯한 평온한 분위기를 느끼며 사진이라도 찍으면서 섬을 한 바퀴 걸어 돌면 그뿐이다. 또 이 멀고 조그마한 섬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껴 볼 기회를 가진다면 나쁜 일이 아니리라. 하늘빛이랑 물빛이 너무나도 파랗고 아름다웠다. 그 파란 대양의 물빛을 배경으로 한가로이 떠있는 고깃배들! 헌데 생각해 보니 우리는 선그라스를 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벗고서 다시 보니 약간 실망되게 부연 색깔들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사진을 보니 선그라스 끼고 보았던 바로 그 아름다운 색깔이었다. 눈이 어떻게 된 건지 카메라가 용한 건지?)

풀밭 위를 노니는 염소들과 사진도 찍고 Y가 한참을 꼬신 끝에 포섭한 마라도를 휘젓고 다니는 개와도 포즈를 취하고 (Y는 개들하고 좀 친근하다. 아마도 개들이 그녀에게 웬지 동족 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땅끝의 등대를 배경으로 한 방 박고 하니 떠날 시간이 다 되었다. 여객선에 타고 멀어지는 마라도를 보니 내가 평생에 여길 다시 올 기회가 다시 있겠나 싶어 괜스레 감상에 젖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이 다 한 순간이고 흘러가 버리면 그뿐 아닌가.

마라도에서 돌아와 산이수동 선착장에 다시 내려 올 때 봐두었던 해안도로를 따라 산방산까지 걸어왔다. 낮에 만났던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어찌 그 길을 걸어가냐며 그냥 태워주겠단다. 참 고맙긴 한데 우리하곤 뭔가 세상 보는 관점이 다른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호젓한 해변을 단 둘이 거닐 기회를 빼앗으려 하다니. 산방산까지 걸어오니 과연 다리가 좀 아프기는 아팠다.

날은 어두워지고 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흔들리면서 돌아오려니 무지무지하게 배가 고팠다. 오늘 저녁은 또 뭐를 먹나.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성을 무시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제주도에 왔다고 해산물만 먹으라는 건 또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삼겹살, 너 본지 오래다. 아구아구…

그렇게 그렇게 신혼 여행을 마쳤다. 우리도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주제에 남들이 판에 박은 듯한 신혼 여행을 한다고 비웃는 재미로 다닌 것 같다. 신혼 여행가서 일박을 한 다음 날, Y의 아는 사람이 우연히도 같은 날 결혼을 했을 뿐 아니라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잠시 자리를 같이 했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것을 발견하였다. Y는 사람들과 앉아서 조발조발 잘 이야기를 이어가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개그우먼은 아니오, 더군다나 나는 사람 웃기는 재주와는 거리가 한참을 먼 사람이고, 더더군다나 둘이 다 말 한마디 안 하고 사람 웃기는 재간은 있을 리가 만무한데 우리와 마주 앉은 그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말만 한마디하면 까르르~ 하고 자지러지더니만 나중에는 뭐라고 얘기도 안 했는데 자기들끼리 서로 보고는 아예 배를 쥐고 대굴대굴 구르는 것이 아닌가. 뭐가 그렇게 웃긴가 하면서 얼마간을 있다가 그들이 가고난 후에 Y와 얘기해 보니 신혼이라서 그렇다는 결론이 났다. 근데, 그럼 우린 뭐야? 신혼이면 다 그렇게 약간 열에 들떠서 제 정신이 아니라야 정상인가? 그럼 우리가 이상한 건가? 뭐 그렇다고 재미없는 건 아닌데? 분명 좋긴 좋은데 우린 왜 이렇게 제 정신이지? 아니, 이게 제 정신이 아닌 건가?

몇 십 년을 살아도 신혼같이 한결같게 살 수 있을까? 지금은 그렇게도 제 정신이 아니게 좋다가는 금새 깨어나서 지겨워하고 재미없어하는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 정신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오래도록 한결같이 재미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모든 기혼자들이 입을 모아 “어디 한 번 살아 봐라. 평생 그렇게 재미있을 줄 알지?” 하고 비웃겠지만 말이다. 뭐 비웃든 말든. 그럼, 나중에 보자구요, 얼마나 재미있게 사나.

 

  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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