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에서 본과 1학년이 하게되는 시체해부 실습만큼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오해와 근거 없는 억측을 낳게 하는 것도 흔치 않으리라. 필자는 의과대학 시절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이에 관련된 질문들을 가끔 받곤 했다. 무섭지 않느냐느니, 꿈에 나오지는 않냐느니, 시체실습 때문에 의과대학 그만두는 사람은 없냐느니 하는 것들이다. 그때마다 구구절절히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느꼈던 나는 그저 간단히 이렇게 일축해버리곤 하였다. “그게 먹고 살 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나이도 몇 살 안 먹은 것이 이런 투로 이야기하면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것도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본과에 진입하여 일주일 남짓 우리는 뼉다구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무슨 기묘한 마술의 주문이라도 외우듯 그 뼈 조각들의 이곳 저곳에 붙어있는 굉장히 낯설은 이름들과 친숙해지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실습에 앞서서 시체의 털을 깎아야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나…솔직히 말해서 나는 시체란 것은 거적대기로 씌워놓은 것밖엔 보지도 못했는데. 나는 그래도 –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 천성적으로 감수성이 둔한 사람이라 약간 긴장은 되지만 그다지 안절부절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역시 다들 약간씩은 긴장된 모습이었다. 마침내 우리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시체해부 실습실로 들어섰다. 시체해부 실습실은 5개로 나누어져 있었고 20구 (19였던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실이라고 하면 푸르스름한 불빛이 어스름하게 비추고 귀신이 곧 나올 곳 같은 분위기를 연상하겠지만 선입견은 버리기 바란다. 5개의 방 전체는 4층에 있었기 때문에 밝았고 특히 내가 속한 실습조가 실습을 하게될 방은 남향이어서 전혀 음침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날도 커다란 창문을 통하여 3월의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바깥은 완연한 봄이고 개나리가 만발하고…그리고…푸른 천에 덮인 시체들…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빨리 해치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몇 겁 없는 선구자들(?)이 시체를 덮은 천을 제끼고 시체의 곳곳을 면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우리를 반긴(?) 것은 그후로 몇 달 동안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던 매캐한 포르말린 냄새였다. 그것이 우리가 본과 1학년임을 표시하는 냄새였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2명인가 3명인가 여학생들이 울면서 뛰어나갔다고 하던데, 뭐 그렇다고 그들이 그 일로 충격 받은 나머지 의과대학을 때려치운 것은 아니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보니 더 열렬히 실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런 것도 내숭이라고 하던가? 우리 위 학년에 한 여학생이 기절을 해서는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휴학을 했다고 하던데, 놀랍게도 그 선배는 지금 일반외과의 홍일점 전공의로 이번에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밥통과 곱창을 주물럭거리고 있다! 우리들은 눈을 찌르는 자극적인 포르말린 냄새에 눈물 글썽이며 시체를 서서히 해체해나갔다. 처음 시작은 사지의 해부로써 수많은 근육과 혈관과 신경들의 명칭이 우리의 비좁은 머리 속에 우겨 넣어졌다. 그리곤 사지부분에 대한 실습 시험… 정말로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 그리고 엄청난 압박감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실습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실습 시험이었다. “땡 시험”이라 불리는 것인데, 읽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20여 개의 “문제”가 책상 위에 일정 간격을 두고 죽 진열되어있는데, 그 “문제”란 다름이 아니라 시체로부터 떼어낸 팔 다리를 해부학 교실의 조교들이 정성을 다해 예쁘게 군살을 발라내고 필요 부분만 남겨서는 한 부분에 꼬리표를 달아놓고 “이게 뭐~게?”하고 물어보는 문제지가 책상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제한 시간은 30초로, 시간이 지나서 “땡!”하는 종소리가 울리면 답을 썼거나 못썼거나 눈물을 머금고 다음 문제로 밀려 가야한다. (요새는 부자소리로 바뀌었다던가?) 미련을 가지고 지나간 문제를 생각하다보면 뒷 문제를 망친다. 아! 첫 시험을 보기전의 그 팽팽한 긴장감이란…
그리고 그 뒤로 우리는 “정말” 의대생이었다. 시체 해부는 조금도 특별한 일이 아닌, 우리의 생활이고 일상이었다. 좀 전에 보았던 시체의 근육들과 저녁밥의 장조림 반찬이 왜 이리 비슷하게 생겼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먹는데 특별한 감정적 저항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사지가 떨어져나간 시체들의 모습은 이제는 별로 인간답지는(?) 않은 것이었다. 두경부(頭頸部)에 대한 실습이 시작되었다. 가장 곤란한 점은 사람에 비해서 부위가 너무 좁아서 실습 시간 내내 자갈 부딛히는(?) 소리가 난다는 점이다. 참으로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렇게도 매일 쳐다보았던 우리 실습조의 시체의 얼굴을 아무리 떠올리려해도 그럴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물론이려니와 실습을 하던 도중에도 그 얼굴은 전혀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왜일까? 사람의 얼굴이란 단지 골격과 약간의 근육들과 피하지방, 그리고 그 위에 씌워진 가죽과 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웃고, 화내고, 말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표정만이 우리의 기억 속에 간직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문외한들이 물어보는 또 한가지의 기묘한 질문중의 하나가 이왕이면 젊은 여자의 시체를 해부하면 기분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글쎄, 우선 의대생다운 답을 하자면 여자의 시체는 근육이 덜 발달되어있고 모든 기관이 남자에 비해 작아서 관찰하기에 좋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아무리 여자라도 그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으며,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기억되어지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추한 여인이라도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시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치 아름다운 것이다. 죽음이란 사람들이 흔히 미화해서 묘사하듯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신경해부학 실습에 사용할 때까지 보관하기 위하여 뇌는 적출되어 수거되었다. 아무리 헤집어보아도 두개골 안에 영혼이 깃들만큼 신성해 보이는 장소는 쁹을 수가 없었다. 그저 한물간 순두부처럼 보이는 뇌라는 물건이 들어있을 뿐. 이럴 수가…
어느덧 방학이 다가왔다. 그런데, 그때 우리 실습조에 크나큰 불행(?)이 닥쳐왔다. 각 실습조에는 한 셋트씩의 골격표본이 있어 해부학실습 마칠 때까지 공부하고 반납해야만 하는데, 우리 조원 중 하나가 이중 일부를 분실한 것이다. 하숙집 주인 아줌마가 닭뼈인 줄 알고 버렸대나… 골격 표본 하나에 2만원 씩 물어내야할 형편이 되었다. 재수 없게도 발목뼈를 통채로 버렸는데 발목에 뼈가 좀 많아야지… 결국 13개가 없어진 것으로 판명되어, 26만원이라는 당시로서는 그리고 학생 입장에선 꽤 거금을 토해내야할 지경이 되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우리는 마침내 결정했다. 몸으로 다 때우기로…골격 표본을 만들어 주면 될 거 아닌가. 그리하여 방학동안 기묘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해부학 실습실 한편에 방 하나에는 해부실습을 마치고 떼어져버린 팔 다리들이 그득히 쌓여있는 방이 있었다. 킬링필드라고나 할까… 우리는 아침이면 해부학 교실로 가서 이 킬링 필드를 헤메면서 개중 살이 별로 없는 것으로 한 토막 줏어다가는 물 속에 담가놓았다. 그리곤 그 팔 다리들이 충분히 물에 불을 때까지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기다렸다가 충분히 물을 먹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되면 건져서 여러 가지 도구들을 이용하여 죽어라고 살을 발랐다. 순전히 뼈만 남을 때까지… 별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나선 뼈들을 추려서는 물을 붓고는 푹 삶았다. 조금씩은 남아있는 살점들과 포르말린, 기름기 등을 빼버리기 위해서 그야말로 곰국을 끓이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말끔해진 뼈조각에 구멍을 뚫어 철사를 꿰어서 뼈들을 맞추는 일… 아무튼 그렇게 넘어갔다.
날씨가 더우면 포르말린 냄새는 더욱 지독하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 되기도 한다. 실습 가운은 푸줏간 아저씨의 작업복을 방불케 하였고, 집에 오면 어머니가 코를 킁킁거리면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냐?”하기가 일쑤였다.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해부학 실습도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이제 해부 실습대 위에 남아 있는 것은 팔, 다리, 머리 모두 떨어져나간 도저히 사람의 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고깃덩어리이다. 우리 옆 조는 졸지에 방황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시체의 배를 가르자 그 속은 온통 퍼져있는 종양 덩어리로 꽉 차있어 아무 것도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쌍하게도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여기저기 다니면서 눈치밥 먹어가면서 끼어서 구경이나 하는 신세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해부실습은 끝나갔다.
하지만,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다. 신경해부학이라는 괴물이 마침내 나타났고 우리는 이 괴물에 맞서 그리스 신화의 영웅처럼 용감하게 싸우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잡아먹히지는 않을 정도로 싸워야했다. 물론 그러다가 날 잡아잡수하고 나가자빠지기도 했지만… 신경해부학 강의는 시작되기도 전부터 우리를 괴롭혔다. 악명 높았던 신경해부학 담당 교수님이 pre-test를 보기로 한 것이다. (매년 그래온 것이지만) 그리고 그 시험이라는 것이 생전 처음 보는 기발한 것이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무슨 모눈종이같이 생긴 것이 촘촘하게 눈이 아물아물할 정도로 칸이 쳐져있는데 자세히 보니 가로로 20칸, 세로로 100칸 정도가 있고 서로 연관되는 곳에 표시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서울의대 신경해부학 강의의 전설적인, 이른바 “바둑판 시험”이라는 것으로 더욱 황당한 것은 맞추면 1점이고 틀리면 1점 감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210명중 0점보다 큰 점수를 받은 사람은 50여명에 불과하였다. 고난의 시대는 영웅을 낳는다고 그 시대에도 영웅적인 인물은 출현하였으니, 그 모눈종이처럼 생긴 시험지에 자를 대고서 한 줄로 죽~ 색칠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헌데, 더욱 놀라자빠질 일은 그가 전체에서 5번째에 해당하는 탁월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인간들은 뭣들 한겨… 도대체?)
기인으로 소문난 신경해부학 교수님은 강의를 한다기보다는 선문답으로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너희들은 아침에 코 만지려고 세수하지?”라든지, “풀밭에는 길이 없지? 그런데, 어디든지 가기만 하면 길이 되지?”등등,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류의- 선문답에서부터 “내가 너희들을 확 짤라버릴 거야!”라는 노골적인 협박(?)에 이르기까지…아무튼 별로 지루하지는 않은 수업이었다. 점심 시간이고 뭐고 없기 때문에 점심께 강의가 시작되면 점심을 굶어야만했다. (물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나오는 게 다반사지만.) 우리에게 많은 추억과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주고 어떤 형태로든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되었던 그 분은 그 다음 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우리들은 의대의 마지막 전설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와했다. 그분의 명복을 빈다.
신경해부학 실습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섬세함을 필요로 하였다. 별로 힘쓰는 사람도 아닌 연약한(?) 필자도 우리 조 시체의 다리를 고관절에서 분리시킨답시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다리뼈를 부러뜨린 적이 있을 정도라면 시체 실습이 얼마나 “노가다”인지 알 만하지 않을까? 신경해부학 실습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포르말린으로 고정해서 굳어졌다고 해도 뇌는 두부처럼 잘도 뭉그러졌다. 유리 숟갈로 살살 긁어내어도 자칫하면 보려고 하는 구조물을 망가뜨려버리기 일쑤였다. 내 머리 속에도 이런 순두부 같은 게 들어있다니… 머리 때리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다…내 머리 때리는 사람은 평생 미워할 꼬야…정말…
소위 유물론자인 필자는 해부학 실습을 마치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해부학 실습은 자칫하면 사람을 냄새나는 고깃덩어리와 한 뭉테기의 비계, 그리고 미끈둥거리는 가죽과 그에 붙은 한줌의 털로 보게 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인간의 육체는 그것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의 몸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그 어디에도 영혼이 깃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장소는 없었다. 하지만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인간을 모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육체는 그 구조와 기능이 한데 결합된 오묘함의 극치이며 영혼이란 육체와 하나인 것이다. 심장이 없이는 피가 온몸을 흐를 수 없듯이, 위장이 없이는 음식이 소화되지 않듯이, 인간의 두뇌야말로 영혼이 깃든 곳이며 동일한 오묘함과 신비스러움이 가득찬 장소로서, 변색된 두부처럼 생긴 이 곳을 떠나서는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이 혼자만 알기엔 가슴 벅찬 비밀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해마다 많은 시체들이 의과대학에서 의대생들에 손에 의해 “분해”되어버린다. 대부분이 행려병자들로 불행한 일생을 보냈음에 틀림없는 그들의 생명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 보았는가? 영혼이 떠난 육체란 그저 고기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때 한 인간의 -그의 지위나 신분의 고귀하거나 아니거나 간에- 고귀한 영혼이 깃들었던 육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에게 참으로 많은 신세를 지는 일이다. 한 사람의 의사가 태어나기 위해서 이토록 많은 값진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놓을 일이다. 또한 가끔은 볼 수 있는, 자신의 시신을 의학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기증하는 이들의 숭고한 행동 앞에 우리들은 옷깃을 여미어야만 한다. 그들로 인하여 의술을 행할 허가를 받은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니 나는 오늘 다시 그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감사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의 명복을 빈다.
1994.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