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 Medicine

21세기의 난치병, 건강염려증

나는 지금 건강한가 아닌가? 매우 쉽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복잡한 얘기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이에 대해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安寧)한 상태를 말하며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병약한 상태가 아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라고 1948년에 이미 명쾌히 건강의 정의를 내린바 있다. (http://www.who.int/about/definition/en/)

명쾌? 명쾌하다고? 실은 그다지 명쾌하지 않다. 신체적으로 완벽한 것은 과연 무엇이고, 정신적으로 안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안녕하다는 것은 더더욱 복잡하다. 아무런 병의 증상이 없고 따라서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고, 정신도 멀쩡(?)하고 사회적으로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이지만, 예를 들어,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일까? 고혈압 때문에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을 타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완전히 건강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헌데, 같은 사람이 자기 혈압이 높은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때는 어떠할까? 스스로 아무 탈없이 건강하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한편,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할 일 다 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뭔가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자는 21세기의 난치병은 암 뿐만이 아니며 지금 얘기하려는 ‘건강염려증’ 또한 그 대열에 당당히(?) 낄 것으로 생각한다. (실없기 짝이 없는 필자의 친구 녀석 하나는 21세기의 3대 난치병은, 무좀, 치질, 대머리라고 주장한다. 뭐,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의 심장 박동이란 항상 규칙적인 것은 아니다. 이따금 씩의 불규칙적인 박동은 매우 흔한 것이며 정상인 (그 정상이라는 것이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하루 수천 번의 불규칙 박동이 있어도 아무 것도 모르고 잘 살고 있는 둔감한 – 어떨 때는 둔감한 것이 축복이다 –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가끔 생기는 불규칙 박동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저 안심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그야말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봐야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여전히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그게 아니라면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 거라면서 이번에는 또 다른 증상을 들고 나온다.

사람이라는 게 어디 한군데 조금씩 이상하다거나 아프다거나 뭔가 시원치 않은 일이 없이 넘어가는 날이 있을까? 머리가 아플 수도 있고, 허리가 좀 뻐근할 수도 있고, 눈꺼풀이 떨리기도 하고, 손발이 차가울 때도 있고, 왠지 속이 불편한 날도 있는 법이다. (필자는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머리가 아파 본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놀라운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정말 그런지, 혹시는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건지, 두통이라는 말의 정의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사소하고 일시적인 몸의 변화에 일일이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사실 그 자체가 정말 괴롭기 짝이 없는 병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현대의학과 현대 사회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러 가지 면에서 이 건강염려증을 부추기고 있다. 먼저, 매스컴은 엄청난 양의 의학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의사인 필자조차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첨단 정보들이 TV와 신문을 장식하고, 환자들은 듣도 보도 못한 얘기를 꺼내면서 ‘이런 게 있다는데 혹시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의사들을 당황하게 한다.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닌 쪽 얘기라면, 그 모든 첨단 의학정보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가운데는 어이없게도 잘못된 정보들도 있다. 공신력 있다고 생각되는 일간지들의 기사도 전문가로서 보기에는 안타까운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기사들이 드물지만은 않다. 또한 대중들이 그 넘쳐나는 건강정보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도 만만치 않다.

필자가 레지던트 수련 시절, 어느 유명하신 교수님의 외래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협심증으로 유명하신 분이라 워낙에도 환자가 많이 몰려오지만, 어느 신문에 나간 특집 기사를 보고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불어났다. 신문을 스크랩해서 들고 와서는 ‘이게 바로 제 증상이에요!’ 하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줄을 이었지만 사실은 대부분 협심증과는 무척 거리가 있는 증상들이었다.

결국 현대의학의 ‘과학적’ 언어와 일반 대중의 언어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이고, 그런 과학적 언어에 실린 정보가 무차별 전달되었을 때는 의학 정보가 아닌 ‘교란 방송’의 역할마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어떠한가. 누군가가 스스로를 ‘건강하다’고 증명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제 아무리 ‘난 건강해, 난 멀쩡해!’ 라고 외쳐봐야 ‘공식적으로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회사에 입사할 때 ‘난 건강한 사람이고 일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믿어줄 수가 없어 채용 신검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업무 능력에 상관없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상, 비정상을 판정하고 여기서 ‘비정상’이라고 딱지가 붙었을 때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전의 칼럼에 언급하였던 B형 간염 건강 보균자의 예가 대표적인 예이다.

정반대로 ‘난 건강하지 않다니까!’ 라고 열심히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군 입대를 위한 신검이 그것인데, 역시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준에 따라 판정을 하는 것이지 개개인의 주장이나 본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인식 같은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고혈압의 경우를 보면 과연 ‘정상’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는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혈관은 탄력성을 잃기 때문에 혈압은 점점 올라가기 마련인데, 혈압을 좀 더 낮추어 줄수록 고혈압의 합병증이 생길 위험성을 보다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축적되면서 소위 ‘정상 혈압’의 기준은 자꾸만 하향 조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어느 정도 이상의 연령에 이르면 전체 인구 중 놀라울 정도로 높은 비율로 고혈압이 있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의 통계를 보면 전 미국 성인의 4분의 1은 고혈압이라고 한다. 도대체 세상에 ‘건강한 사람’ 이란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건강염려증은 당연한 귀결이다. 건강과 불건강의 판정은 의학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그래도 많은 개인들은 사소한 증상들은 그저 괜찮은 것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꿋꿋이(?) 살아가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 모든 것들을 ‘의학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뭔가 ‘객관적인’ 판정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헌데, 불행히도 현대 의학은 이들에게 그다지 충분히 안심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각종 검사들을 해보고 심지어 ‘종합검진’까지 받아봐도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때로는 ‘신경성’이니 하는 애매한 딱지를 붙이기도 하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어딘가가 불편하다.

의학적으로 무슨 병명을 붙이기는 곤란하지만, 그래서 별다른 병은 없으니 안심하시라는 말뿐이지만, 환자로서는 의사가 뭐라 건간에 뭔가 괴로운 증상이 계속 있고 심지어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기도 한다. 현대의학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럴 경우라면 이들은 의사들을 찾아 끝없이 헤메는 대신에 뭔가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고, 그런 증상들이 지속되거나 말거나 간에 그저 적응해서 살든, 또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든, 결국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현대의학이 오히려 이들을 점점 더 빠져 나올 수 없는 건강염려증의 수렁에 밀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 스스로가 현대의학을 배운 의사로서, 현대의학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가치에 자부심을 가지는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지는 일정한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 인정해야만 한다고 본다. 현대의학과 그 현대의학을 주된 건강의 파라다임으로 삼고 있는 현대 사회는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로부터 스스로 건강하다고 선언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버렸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권리를 다시 찾아주고, 건강을 지키는 주체는 현대의학 또는 의사가 아니라 그 인간 자신이라는 원칙이 다시 설 때에만 21세기의 난치병, 건강염려증은 진정으로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200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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