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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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리고 건강
간단한 퀴즈 한가지를 풀어보자. 미국에서는 각종 의료 행위에 대한 ‘비용-효과 분석 (cost-effectiveness analysis)’가 상당히 중시되고 있다. 즉 같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경제적 관점에서의 분석이다. 그럼, 문제: 심장발작을 겪은 환자에서 이후의 경과를 좋게 할 수 있는 여러 조치 중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답은 놀랍게도 ’의사가 담배를 끊으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비용은 거의 안 드는 것임에도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인 것이다. 물론 담배를 실제로 끊어야 효과가 나는 것이고 의사가 끊으라고 했다고 다 금연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의사가 한마디 충고하는 것만으로도 금연율은 다소 상승한다. 금연이 주는 건강상의 이득이 워낙 큰 것이기 때문에 그 ’약간의 상승‘만으로도 전체 집단으로 볼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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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안 맞는 세상
세상 일이란 게 다 그런 모양이다. 얼핏 보기에는 조화롭고 완벽해 보이는 것도 조금 파고 들어보면 불량 조립 장난감처럼 아귀가 안 맞고 엉망진창인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큰형님으로 거들먹거리고, 남의 나라 인권이 어쩌고 잘난 척도 꽤나 많이 하고, 민주정치의 표본이라고 스스로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 소동이 벌어지자 미국인들은 무척 당황했다. 낡디 낡은 투개표 시스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알 고어가 (어찌 보면 좀 치사해 보일 정도로) 그런 맹점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와중에,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그 민주주의, 합리적이고 정확하게 국민의 의사를 묻는 투표 민주주의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엄청난 회의까지 일었다. 오죽하면 ‘constitutional crisis’, ’ 헌정(憲政)의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왔을까. 그러나, 결국은 ‘그래도 지금까지 잘 돌아왔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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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허준 하는데…
며칠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의사 폐업이 일단 끝이 났다. 물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하는 편이 맞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평상시부터도 욕을 배불리 먹고 있었던 의사들은 이 기간 동안 참 욕을 많이도 먹었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이미 사람들이 의사를 욕하면서 그렇게도 들먹인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바 있다. 헌데, 사태가 진전되면 될수록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다른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허준! 맙소사! 우리 나라 국민들이 TV 드라마에 쏟는 관심과 애정이란 것은 참으로 각별한 것이어서 인기 있는 연속극의 경우 불치의 병에 걸린 주인공을 살려야 하네 마네, 주인공 남녀가 맺어져야 하네 마네 하는, 실은 시시껍절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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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간염 보균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
필자가 아는 한 노총각 유학생 얘기를 먼저 해보자. 공부하느라 (말하자면, 어쩌다보니) 결혼이 늦어진 그는 마침내 결혼할 여자가 생겼고 한국에 들어가 약혼을 하고 올 것이라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헌데 얼마 뒤 그가 미국에 돌아와 비보를 던지는 것이었다. 결국 ‘깨졌다’는 것인데, 물론 그가 바래서 한 일은 아니었고 파혼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병’ 때문이라는 것이다. 병? 그는 지극히 멀쩡하고 건강해 보였는데? 군대를 방위로 마치기는 했지만 그건 그저 그가 눈이 나빴기 때문일 뿐이라는데… 우리 나라 전 인구의 약 7%가 가지고 있는 만성병이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생각나시는지? 이 병을 (또는 병 아닌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취업과 결혼 같은 인생의 중대사에서 거절을 당하면서 끝없이 좌절을 겪고 있다. 이게 무슨 현대판 나병인가? A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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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건강의 적
필자는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어느 시립 병원에 여러 차례 파견을 나가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립 병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행려 병동’에서의 경험이었다. 연고자가 없고 일정한 거처가 없는 병자들이 입원해 있는 곳이다. 밤에 응급실을 지키고 있으려면 의식불명의 환자를 경찰차가 실어다 놓고는 가버리곤 한다. 그가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길거리에 쓰려져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뭐라고 말해줄 사람도 없으니, 병력 청취고 뭐고 할 수가 없어 차트에는 쓸 말이 없다. ‘경찰이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데려옴’, 이 한 줄이 고작이다. 필자가 결혼이란 것을 그저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것’ 이상의 것으로, 즉 결혼을 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처음으로 찾은 것이 바로 그때라고 하면 좀 우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