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보고 싶었던 공연인데 마눌께서 일이 있어 지방에 내려가고 이날따라 애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아 자칫 못 갈 위기! 그러나, 아들 녀석과 교섭 끝에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워낙에 항상 버벅거리면서 집에서 기타를 치니 가족들은 클래식 기타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습니다. -_-;;;; 클래식 기타란 건 자꾸 틀리고 끊어지고… 뭐 그런 거다… -_-;;;;;; 가기 싫다는 녀석을 꼬셔서 가서 젊잖게 있어주면 대신 뭔가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뭔가가 뭐냐구요? 뭐, 별건 아니랍니다. ^^;;;)
후쿠다 신이치는 94년도에 내한공연 했을 때 (몇년도인지 가물가물했는데 좀 전에 지얼님이 알켜 주셨음) 호암아트홀에서 구경했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타레가의 그랜 호타의 연주가 너무 너무 화려하고 멋져서 지금도 깊이 인상에 남아 있었습니다. 헐… 근데 그때는 날렵한 미남 청년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약간 풍채 좋은(?) 아저씨 스탈에 머리에 허옇게 서리가 내린…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제 머리 스탈도 많이 바뀌었죠.)
프로그램이 바뀌어 바하의 첼로조곡 6번 중 프렐류드만 연주하게 되어 좀 아쉬웠습니다. 근데, 신이치님의 연주가 초반에 다소 불안해 보였고 튜닝도 조금 거슬리고… 두번째 곡 Rossiniane 은 1829년에 만들어졌다는 기타로 바꾸어 연주를 했습니다. 타 현악기에 비해 수명이 좀 짧은 클래식 기타에서도 정격 연주(?)를 들을 기회가 다 생기는군요. 특유의 화려하게 몰아치는 연주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인터넷에 마구 굴러다녀서 너무 유명한 줄리아니 대서곡 젊을 때의 동영상에서 본 화려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근데, 순서가 어찌 된 거였죠? 뭐 하나 빼먹은 거 아니었는지? 신이치님의 연주도 좀 꼬이는 듯했습니다. 듣는 사람도 긴장이 되어 어떻게 들었는지를 모르겠네요. 부셰 기타의 튜닝도 계속 거슬렸는데 이것도 저만 그랬나요? 분명 연주자 본인도 스스로의 연주가 불만스러운 거 같은 눈치였습니다.
부진을 만회라도 하듯이 아스투리아스는 아주 멋진 연주를 들려줍니다. 강약과 완급의 섬세한 조절로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틱한 곡의 드라마틱함을 극대화시킨 연주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련히 멀리서부터 들려와서 다가오는 듯한 연주는 듣는 이를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후반부 연주는 현대곡으로 시작합니다. 아… 불쌍한 울 아들녀석은 그렇지 않아도 지루해서 몸이 뒤틀렸었는데 현대곡이라니… 일곱살 짜리에겐 너무 가혹한 듯합니다. 멍해지더니 졸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In the Moonlight 이란 곡은 과장된 듯한 연속된 벤딩이 묘한 긴장감을 주더군요. 레오 브라우어가 작고한 타케미쭈를 회상하며 신이치에게 헌정했다는 (흐… 사연도 복잡해라…) Hika라는 곡은 불협화음 속에 쓸쓸함이 깃든 느낌이더군요. 뭐, 현대곡이란 건 너무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같은 곡도 들을 때마다 그 때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 같긴 합니다만… ^^
그리고서는, 후반부에 뭔가 단단히 맛을 보여주마! 하는 심정이었던지 변경된 프로그램을 또 변경하여 무려 다섯곡을 연짱 연주합니다. 예정에 없던 전주곡 1번으로 시작해서 전주곡 3번, 쇼로 1번, Valsa Choro (과문한지라 이건 첨 들어본 거 같습니다.) 연습곡 12번으로 이어지는 푸짐한 빌라 로보스 종합 선물세트입니다. 제 개인적 의견으론 이 부분이 단연코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이 씨디하고 똑같으면 뭐하러 공연을 보겠습니까. 아무리 대가라도 그날 기분에 따라 약간의 버벅댐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반면에, 뭔가 천기의 흐름과(?) 연주자의 내공과 외공의 기와 관객들의 기가 절묘하게 조화되면, 제 아무리 빵빵한 오디오 시스템을 차려 놓는다 해도 방구석에서 씨디를 들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참으로 ‘반짝 반짝’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도 있기 마련입니다. 불꽃놀이처럼 팍하고 터지면서 아스라히 사라지는 그 순간의 맛이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오늘의 신이치의 빌라로보스 연주야말로 바로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흥겨운 리듬감,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속도와 힘조절, 흠뻑 실린 감정 표현… Valsa Choro 에서 에튀드 12번으로 넘어갈 때 ‘흡’하고 기를 모으는 듯한 호흡을 하더니 간격을 두지 않고 휙 넘어가더군요. 그는 정말 느슨하게 풀어줄 때와 신들린 듯 몰아칠 때를 정확하게 아는 연주자였습니다. 정말 ‘완벽’했습니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쳐줍니다.
완존 삘받은 신이치님, 이후 곡들은 아주 멋집니다. 삐아졸라 탱고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벨리나티의 Jongo는 저는 첨듣는 곡인데 아주 장대하면서도 신나는 곡이더군요. 특유의 화려함으로 몰아치듯 연주합니다.
본전 뽑아야 하는 우리 들이야 앵콜이 뭐 당연하지만… ^^;;; 본 공연에 약간의 불만이었던지 ‘긴 앵콜을 하겠다’하더니만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치기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전주부터 풀 서비스입니다. 신나게 쳐대다가 아뿔싸, 또 약간 삐끗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신나게 달립니다. 오빠 달려~~~! 아주 좋았슴다.
또 앙콜이죠 뭐. 11월의 어느 날까지 나옵니다. 약간 오바한 듯한 감정 만땅의 연주네요.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아, 11월이라고 이거나 새로 함 녹음해볼까 하고 있었는데 걍 의욕 상실… -_-;;;;
또 앙콜… 89년도에 왔을 때 ‘정부가 이곡을 금지’해서 연주를 못했다고 하는데 이곡이 도대체 뭔가요? 아시는 고수님은 알켜주세요. 엔카를 편곡한 것 같은 분위기의 아주 독특한 곡이네요. 일본풍이 짙다고 그런 걸까요? 참 내, ‘섬마을 선생님’도 아니고… 5공은 역시 코메디였습니다. -_-;;;
후쿠다 신이치, 11년 만에 다시 보았지만, 그 때의 패기만만함과 화려함에 용의주도한 힘과 완급 조절의 능수능란함까지… 고수 검객의 화려한 칼놀림을 보는 것 같은 상쾌함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제자인 무리지 카오리에게서도 ‘여검객’ 같은 느낌을 문득 받았었는데 우연이 아닌가봅니다.
전반부의 불안정함이 좀 아쉬웠지만 후반부의 멋진 모습은 그것을 상쇄하고 남음이 있었던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다들 공연 후 뒤풀이들 가셨겠군요… 같이 갔던 아들 녀석에 예상했던 대로 완전히 맛이 가서 잠에 골아떨어지는 바람에 결국엔 들쳐업고 오느라고 여러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지만 아쉽게 집으로 와야했습니다. 이제야 첨으로 얼굴을 뵌 저녁하늘님이랑 옥용수님 아주 반가왔습니다.
2005.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