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늑대의 목소리를 지닌 여인, Janis Joplin – ‘Pearl’ (1971)

60년대 말, 락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자며 기세를 드높이던 히피즘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지만, 그 정점은 역설적으로 환멸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락음악도 LSD도 세상을 정말로 바꾸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불꽃처럼 젊음을 태우던 락의 화신들은 그야말로 밤하늘의 불꽃처럼 허망하게 스러져갔다. 1970년 9월 지미 헨드릭스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이어 한 달도 채 못되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제니스 죠플린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듬해에는 Doors의 짐 모리슨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짧고 굵게‘ 산 이들은 하나같이 스물 일곱, 여덟의 아까운 나이였다. 이런 사연 때문에 제니스 죠플린의 사후에 발표되어 그녀의 유작이 된 이 ‘Pearl’ 앨범은 그래서 더욱 듣는 사람에게 묘한 감정 이입을 일으킨다.

그녀가 엄청난 카리스마로 후세의 락커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음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특히나 여성 락커들에게 제니스 죠플린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Chrissie Hynde (Pretenders), Joan Jett, Pat Benetar, Ann and Nancy Wilson 자매 (Heart) 등등의 수많은 여성 락커들에게는 어쩌면 제니스 죠플린이라는 전설의 락커의 존재는 큰 부담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카리스마를 넘어설 락커는 과연 누구인가? 혹시, 동시대의 Grace Slick (Jefferson Airplane)? 그녀도 물론 ‘한 카리스마‘ 하는 여장부이지만, 제니스 죠플린의 신들린듯 울부짖는 그 원초적인 에너지를 따라갈 수 있을지…

락이란 음악이 기본적으로 무척이나 마초스러운 남성중심의 음악이라는 비판도 있고, 상대적으로 흔치 않은 여성 락커는 그저 여기에 편승하여 약간의 야성스러운 섹시함을 내세운 좀 특이한 구경거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히려 남자 락커보다 한 술 더 뜨는 공격성과 마초스러움으로 충격을 주는 별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여러 사람들을 비롯하여 적지 않은 빼어난 여성 락커들에게는 이런 구별은 큰 의미는 없으며, 그 중 제니스 죠플린 정도 된다면 더구나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남녀를 다 통틀어 보아도 그녀는 그야말로 락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스테레오 타입처럼 연상하게 되는 것은 소프라노의 맑고 우아한 고음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 그와 정반대의 목소리이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로)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만한 목소리를 지녔던 전설의 락커, 제니스 죠플린이 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남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이고 나아가 그걸로 밥벌어 먹기 위해서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겠지만, 그 노래란 것이 때로 듣는 이에게 가슴이 뛰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아찔한 절정의 순간을 맛보게 해 줄 정도로 심금을 울릴 적에 우리는 그 가수가 결국 벌어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띤따라’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고 감동을 먹곤 한다.

제니스 조플린은 관객을 뻑가게 하기 위해 자신이 LSD를 했을지 모르지만, 때에 따라선 그런 감동을 먹으려면 오히려 내가 뽕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때도 있다. 노래를 듣는 즐거움은커녕 ‘세상 참 벌어먹기 힘들구나’ 하는 연민이 드는 경우 말이다.

하지만 진정 노래를 할 줄 아는 가수라면 그렇지 아니하다. 정말 탁월한 가수는 그 가수가 왜 무대에 서서 저 X랄을(?) 해야 하는가 하는 뻔한 현실을 잠시 잊어버리게 만든다. 제니스 조플린은 바로 그런 가수다. 그녀는 그저 무대에 서서 신들린 듯 미친 듯이 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그저 사이비 종교 집회에서 반쯤 정신 나간 맹신도처럼 거기에 빨려들어 잠시 미치는 것이다. 무아지경에서 작두를 타는 무당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잘 구별이 안가는 것처럼 때로 그녀는 사람 같지가 않다. 차라리 광야를 홀로 헤메는 야성을 잃지 않은 한 마리 늑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늑대의 울부짖음은 바로 락큰롤 미학의 절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유작이며 동시에 – 슬프게도 – 최고의 성공작이기도 한 이 ‘Pearl’은 락음악을 듣는 사람에게는 정말 진주같이 빛나는 앨범이 아닐 수 없다. ‘Move over’에서 보여주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이나, ’Me and Bobby McGee’ (그녀의 유일한 # 1 힛 싱글)에서처럼 듣는 사람을 서서히 달구어 주는 마력에 가까운 에너지는 역대의 하고많은 남녀 락커들을 죄다 통틀어본대도 쉽게 찾기 어렵다. 음반을 통해 듣는 것도 이러할진대, 아마도 현장에서라면 정말 최면에 걸려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아, 하지만 이젠 불가능한 일이다. 제니스 조플린 할머니는 필자가 네 살 때 돌아가셨으니! 1999년 발매된 리마스터 CD에는 네곡의 라이브 보너스 트랙이 추가되어 있어 더욱 큰 즐거움이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짧은 생애 동안 쏟아 부어버리곤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스러져 버린 그녀의 삶을 생각하면, 도대체 음악이 뭔지, 락큰롤이 뭔지, 그게 뭔데 사람들을 이렇게 미치게 만드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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