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vocal, guitar 김창훈 vocal, bass 김창익 drums |
‘내마음에 주단을 깔고’ 1996 년 영상. 이 때도 이미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을 때인데… 이때부터 또 세월이 흘러흘러… 이제 젊은 세대는 김창완을 배우로 알고 있고, 그가 락커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냥 아재도 아닌 ‘상 아재’ 인증을 피할 길이 없다.
수도 없이 많은 세상의 락밴드 중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연주와 노래로 누가 누구인지 알기 힘든 밴드가 있는가 하면, 한번 들어본 일 없는 곡의 잠깐의 전주만 듣고도, ‘아, 이거!’하면서 누구의 연주인지 알게 될 정도의 개성을 지닌 밴드도 있다. 한국에도 락이 있는가? 한국에도 그런 특출난 개성으로 일가를 이룬 내세울만한 락 밴드가 있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필자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바로 산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가요라고 하면 정말 그저 그렇고 그런 노래들만이 있었을 때였다. 그래서 뭐라도 새로운 것을 듣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은 가요를 듣지 않고 팝송을 들었었다. 게다가 청춘의 끓는 피를 식혀줄(?) 락음악에 대한 갈증을 달래줄 만한 가요란 정말로 보기 드물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얘기이지만, 그 때 FM 라디오 프로그램은 열에 아홉이 팝송을 트는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도 그 당시에 라디오를 옆에 끼고 팝송을 들으면서 성장했던 세대이고, 필자는 전혀 모르는 노래라도 전주 한 마디만 들으면 그 노래가 팝송인지 가요인지 자신있게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이 구별이 쉽지 않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만큼 당시의 가요는 참으로 천편일률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너무나도 뻔한 멜로디, 완벽하게 예상 가능한 코드 진행, 들으나 마나 영양가 없는 가사, 진부한 편곡, 물론 개중에 좋은 곡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는 일부러 시간내어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 그때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헌데, 정말 이상한 놈들(이젠 중년의 아저씨들인데… 죄송!)이 나타난 것이다. ‘아니 벌써’? 제목부터 이상하고, 가사도 색다르고, ‘아니, 브얼~써~!’하는 그 골때리는 분위기, 괴물 소리 또는 엉망진창의 잡음처럼 들리는 기타 연주… 아니, 뭐 이따위 노래가 다 있어?
그렇게 산울림의 신화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삼형제 아마추어 밴드에서 출발한 이들은 뭔가 어설픈 듯하지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1977년의 1집에 이어 이듬해, 보다 가다듬어진 모습의 2집을 내어 놓았다. 물론 1집도 참으로 역사적인 앨범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가 여기서 굳이 제 2집을 소개하는 것은, 2집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내마음에 주단을 깔고’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진정 충격이었다. 2분여의 긴 전주! 세상에 그렇게 오랫 동안, 엔간한 짧은 노래 하나 다 끝날 정도의 시간 동안 전주만 나오고 노래가 나오지 않는 가요란 없었다. 그것도 평범한 전주인가. 이게 음악이야, 뭐야? 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1집에서 눈에 띄는 (귀에 띄는?) 특징이라면 김창완의 Fuzz가 잔뜩 걸린 기타 사운드이다. (Doors를 연상케 하는 올갠 소리가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더라만…) Fuzz란 기타의 ‘생소리’ (유식한 말로 ‘clean tone’이라고 한다는군…) 를 변형시켜주는 여러 effector 들 중에서 널리 쓰이는 ‘Distortion’ 보다 훨씬 굵고 북실북실한 질감의 사운드를 만드는 장치로 필자가 듣기에는 김창완은 이 Fuzz를 무척 애용하고, 그것도 걸었다 하면 무조건 최고의 gain으로 거는 것 같은데, 완전히 뭉개지고 푹 퍼져서 둔탁한, 그러나 아주 무겁고 두터운 음색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Fuzz가 최고로 걸린 음색으로 ‘내마음의 주단을 깔고’의 그 괴물스러운 전주를 연주하였다. 1집에서 좀 방방 뜨는 느낌으로 얄팍하게 들렸던 김창훈의 베이스와 김창익의 드럼은 한층 묵직한 힘이 실려 있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 이보다 전에 레드 제펠린, 딥 퍼플 등등의 거의 카리스마적인, ‘얘들도 인간이냐?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냐?’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연주들에 비교할 수나 있겠는가? 물론 비교할 수가 없다. 이들의 연주에서는 여전히 아마추어의 냄새가 난다. 기술적으로는 이들 삼형제의 연주는 별 것 아니라고, 여느 고삐리 아마추어 밴드도 다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김창완의 기타 솔로는 단조롭고 멈칫멈칫거려서 답답하다고 할 수도 있다. 가끔씩 나오는 김창훈의 괴성(?) 아니면 비명(?) 내지는 샤우팅 창법은, 우리가 잘 아는 기라성같은 락 싱어들의 전율스러운 샤우팅 창법과는 달리, 약간 위태위태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장난기가 들어 있어서, 뭐랄까, 이제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에게 좀 미안스런 표현이지만, ‘무지 귀엽다’.
하지만, 이 어설픈 듯한 연주와 노래 속에 오히려 그들의 진수가 숨어 있음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허허실실이라고 해야 할까, 신기하게도 그들의 연주는 약간 질질 끄는 듯, 어눌한 듯한 맞형 김창완의 특이한 말투와 매우 닮아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어눌한 듯 느린 말투로 꽤나 재치있게 할 말 다 해내는 그의 독특한 언변만큼이나 이들의 연주와 노래는 참으로 허술한 가운데에서도 ‘할 말을 다 해낸다’. 그것도 무지하게 호소력이 있고,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빛나는 개성이 있다.
‘내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대중의 귀를 잠시 즐겁게 해주려는 얄팍한 상업성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기성의 음악판에 통렬한 충격파를 주면서, 한국 락의 역사를 새로 쓴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이들은 ‘제 노래 좀 제발 들어주셔요’하며 애원하는 띤따라가 아니라, ‘난 이런 음악이 좋은데, 어디 너도 한번 들어 볼래?’ 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 스스로를 정의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은 그때까지의 국내 가요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내가 좋아서 한다’는 아마추어리즘과 그들의 타고난 재능이 합쳐지면서 큰 일을 낸 것이었다.
‘둘이서’에서는 후기 산울림이 연달아 히트 시킨 발라드 풍 노래들의 시작을 보게 된다. 신선한 감수성으로 톡톡 튀는 김창완의 빼어난 작사 실력은 진부하기 짝이 없었던 당시 가요들의 노랫말을 감안할 때 (다 그랬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단연 군계일학이다. 아니, 그당시와 비교할 것만도 아니다. 자막이 나오지 않으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 정도인데다가, 뜬금없이 영어 가사가 찍찍 튀어 나오는 지금의 노래들과 비교하면, 그의 매우 정확한 가사 전달과 아름다운 우리말 구사 능력은 높히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나 어떡해’. 아, 이 노래! 제 1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에 빛나는 불후의 명곡, 처음에는 대학생 아마추어 밴드들, 나중에는 수도 없이 많은 고딩, 중딩 밴드들이 마르고 닳토록 연주하고 또 연주했던 그 노래! 원 작곡자인 김창훈은 대학가 아마추어 락 밴드의 붐을 일으키는 진원지가 되었던 이 문제의 노래를 여기에 가져와 산울림 나름으로 재해석하였다. 아, 그 맛깔스러운 리듬기타 연주를 흉내내고 싶어 가족의 원성도 아랑곳 없이 기타를 부여잡고 소음을 만들어 내었던 고딩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 나라에도 위대한 락 밴드가 있었는가? 댄스 음악이 천하를 통일한 지금, 그래서 다른 것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지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답은 yes다. 상업적 성공과 대중적인 폭넓은 인기,그리고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컬트적 열성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독특한 음악 세계, 그 양 쪽을 모두 이룩한 락 밴드가 우리 나라에도 있었는가? Oh, yes. 산울림!
200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