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k Nielsen (guitar, vocal) Robin Zander (vocal, guitar) Tom Petersson (bass, vocal) Bun E. Carlos (drums) |
일본 부도깡은 전설의 라이브 앨범, Deep Purple의 ‘Made in Japan'(1972)을 일찌기 탄생시킨 산실이기도 하다. 그 유서깊은 현장에서 수상쩍은 이름을 가진 그룹 사운드 , Cheap Trick은 70년대를 마감하는 또 하나의 명연을 펼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Live at Budokan’인 것이다.
이들의 음악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필자는 지금까지 주로 심각하고 잔뜩 어깨에 각잡는 음악들을 읊어대면서 덩달아 폼을 잡았지만, 이들의 음악만큼은 별달리 심오하다던가, 영혼이 담겨있다던가, 심금을 울린다던가 할 것은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저 단순하고 신나고 듣기 좋은 팝-락이라고 이야기하면 정확할 것이다. 그룹의 이름 그대로, 싸구려 얄팍한 수작, ‘Cheap Trick’인 것이다. 그러나, 싸구려 버블검 사운드라고 너무 무시하지는 말자. 아니, 일단 들어보고 얘기해보자.
이들 네명은 아주 웃기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리드 보컬인 Robin Zander는 70년대든가 (기억이 가물가물) 숭의 음악당에서 당시 우리의 십대 소녀들을 까무라치게 만들었던 Leif Garrett (‘I was made for dancing’이라는 노래 혹시 아시는지? 아, 진짜, 정말, 100% 순수한 풍선껌 음악!)을 연상케 하는 긴 금발에 곱상한 외모를 가진 – 살짝 덧니마저 있어 귀엽기까지 한 – 미소년인지 청년인지, (지금은 중년 아저씨지만) 하여튼 그렇고, 베이시스트 Tom Petersson도 역시 이에 준하는 락커다운 모습인데 반해, 그룹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Rick Nielson은 야구 모자에 벨맨 복장을 하고 표정부터가 영 우스꽝스런 아저씨인데다가, 뒤에서 드럼을 두들기는 Bun Carlos는 머리가 살짝 벗겨지고 배도 적당히 나오고 두툼한 안경을 쓰고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헐렁하게 매고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망가진 중년 아저씨’, 또는 속된 말로 ‘꼰대’의 몰골을 하고 있다.
이런 우스꽝스러워서 애교스럽기까지 한 광대 패거리가, ‘어흥, 우리 음악 들어주면 안 잡아먹지!’하면서 징그럽게 얼굴에 뼁끼칠(?)을 하고 설쳐댔던 Kiss 같은 밴드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밴드라고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그룹 이름을 내세운 데뷔 앨범과 두번째 ‘In Color’ 앨범을 내었으나 미국에서는 별로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In Color’ 앨범은 일본에서 골드 앨범이 되었다. 당시에 일본은 이미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음반 시장이었던 것이다. 이에 고무된 Cheap Trick은 유럽 투어에 이어 부랴부랴 일본으로 날아와 역사적인 부도깡 공연을 하게 된다.
리프 개럿이 (그전에 이미 클리프 리차드부터) 한국에 왔을 때 십대 소녀들이 광란의 도가니를 연출하는 것을 보면서 기성세대들은 큰 충격에 빠지고 요새 젊은 것들은 왜 저 모양이냐고 한탄을 일삼았지만, 이 부도깡 공연이 바로 그 분위기이다. 첫머리부터 오빠 부대들의 악악대는 괴성이 심상치 않다. 필자는 초자연적 심령 현상 따위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인 사람이지만, 이 부도깡 공연을 듣고 있노라면 그 십대 소녀들의 발악에 가까운 열광으로부터 엄청난 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질 지경이다. 20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 CD 를 듣고 있는데도 기가 느껴지는데, 그때 그 현장에서 무대에 서있는 Cheap Trick에게는 과연 어땠을까?엄청난 기가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이 앨범을 라이브 명반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그때 그 소녀들의 엄청난 광란이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공연의 전반부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눈에 확 띄게 열기가 고조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너무나 열창을 한 탓에 마지막 곡에서 Robin Zander는 목이 확 쉬어있을 지경이다.) 소녀들의 기를 받아서 그런지 Cheap Trick은 정말 신나고 활기차게 연주한다. 특히 후반부의 (LP로 하면 side B의 첫머리부터가 될 것이다.) ‘Ain’t that a shame’, ‘I want you to want me’, ‘Surrender’로 이어지는 공연의 끝부분은 대단한 명연이라고 할만하다. 특히나 크게 히트한 (일본에서의 히트곡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히트하면서 이들의 미국 내 첫 싱글 탑텐 히트곡이 된다.) ‘I want you to want me’같은 곡은 스튜디오 버젼과 비교해보면 도저히 같은 곡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활기에 가득차 있다. 이때쯤 되면 필자와 같이 ‘수준’ 운운하면서 고상한 척 복잡하고 골아픈(?) 음악만 찾던 사람조차도 발을 구르면서 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십대 소녀들, ‘오빠부대’에 합류하여 ‘Cry, cry, cry!'(이 곡에서 이 소녀들의 악받힌 후렴구를 빼버린다면 전혀 다른 곡이 되어버릴 것이다!) 하고 같이 외치면서 동동 발을 구르고 싶은 기분이 된다. ‘악~! 옵빠~ 너무 신나~!’
이들의 음악은 별 깊이랄 것은 없지만, 그냥 그렇게 신명스럽다.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이 기타 저 기타 번갈아가면서 쳐대는 기타리스트 Rick Nielson은 그 신나는 사운드의 핵이다. 대단한 테크니션이라 할 수는 없지만, 라이브에서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매우 재치있는 기타리스트이다. 이 얄팍하지만 매우 호소력있는 사운드는 훗날의 수많은 헤비메탈, 펑크, 얼터너티브 락 밴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빠부대란 아티스트들에게는 참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진지한 음악을 하려고 해도 ‘십대 소녀 취향’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리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오빠 부대들의 엄청난 기가 만들어 낸, 락 라이브 역사에 남을 명반 ‘Live at Budokan’을 듣노라면 오빠부대들을 꼭 그렇게 우습게 볼 일만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2001/11/06
사족: 이들의 대표곡 I want you to want me 의 오리지널 스튜디오 버젼을 들어보자. 같은 노래인 줄은 알겠지만 라이브와는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른데… 뭣 때문일까? 그게 바로 오빠 부대의 힘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