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n there, done that: Jeff Beck Group – ‘Truth’ (1968)

Jeff Beck (guitars)
Rod Stewart (vocals)
Ron Wood (bass)
Mickey Waller (drums)

올드락의 시대의 3대 기타리스트 (무슨 근거로 3대 어쩌구냐, 이거는 일단 넘어가자) 중 하나로 꼽히는 Jeff Beck. 하지만, 다른 두 기타리스트, 즉 Eric Clapton과 Jimmy Page와 비교해 볼 때, 문득 의문을 가지게 된다. ‘Jeff Beck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Jeff Beck이 다른 두 사람에 비해서 기타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다른 두사람이 락의 역사에 남긴 엄청난 발자취에 비하면 Jeff Beck의 흔적이란 것은 보잘 것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Eric Clapton은 Cream, Blind Faith, Derek and Dominos 등의 수퍼 그룹들을 거치면서 주옥 같은 명반들을 줄줄이 내놓았고, 이후 솔로로 데뷔한 후에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머쥐면서도 블루스 락의 대가로서의 위신을 동시에 유지하면서 ‘기타의 신’이라는 전설을 끝까지 지켜왔다. ‘살아있는 락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미국인이 아닌 음악인이나 별로 미국적이지 않은 음악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그래미 상마저도 그를 끝까지 외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 한명, Jimmy Page의 행보에 대해서도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락의 역사상 최고의 밴드 중 하나로 추앙받는 Led Zeppelin을 이끌면서 천만장이 넘게 팔린 소위 ‘다이어몬드’ 앨범을 네장이나 내어 놓고, 모든 정규 앨범이 골드 앨범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비틀즈에 맞먹는 엄청난 센세이션과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동시에 그 심오한 음악성으로 락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Led Zeppelin 해산 이후에도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계속적인 솔로, 그룹 활동을 벌이고 있다.

헌데, 그런 동안에 Jeff Beck은 뭘 했나?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면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나머지 두 사람의 휘황찬란한 discography에 락을 이야기 하면서 도저히 빼어 놓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명반들이 수두룩한 것과 비교할 때 Jeff Beck의 discography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Jeff Beck이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가? 뭔가 도발적인 결론을 기대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김빠지게도 대답은 ‘그렇다’ 이다. 외양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보기가 힘든데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가 3대 기타리스트임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범작 내지는 졸작까지 여기 저기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는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의 음반 목록 중에서도 보석과 같이 빛나는 두 장의 명반, ‘Blow by blow’와 여기 소개하려는 ‘Truth’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자는 그가 얼마나 탁월한 기타리스트인가를 증명해주고 있고, 후자는 그가 락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흐름의 한가운데 있었던 매우 영향력있는 뮤지션임을 (최소한, ‘한때는 그랬음’을) 증명해준다.


‘Cause We’ve Ended as Lovers’
Jeff Beck 은 그냥 뛰어난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guitar guru’ 다. 그가 도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까.

1968년, 전설의 그룹 Yardbirds에서 탈퇴한 Jeff Beck과 이 사람 저사람 다 떠나고 빈집이 된 Yardbirds를 지키고 있던 Jimmy Page는 각기 새로운 그룹을 만들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고 있었다. 이들이 지향하는 음악적 방향은 거의 같았다. 블루스에 기반을 두면서 그 블루스를 백인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해내고, 매우 공격적이고 육중한 연주를 구사하는 이들의 음악적 지향점은 Cream이나 Jimi Hendrix가 제시한 브리티쉬 하드락의 전형을 완성 단계로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

Jeff Beck이 한발 빨랐다. Jimmy Page가 Robert Plant를 그의 새로운 밴드에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을 즈음인 68년 8월, 그는 Jeff Beck Group을 결성하여 그 데뷔 앨범 ‘Truth’를 내 놓은 것이었다. 곧 이어 69년 초 Led Zeppelin이라는 엄청난 ‘납 비행선’이 드디어 그 육중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Led Zeppelin의 네명은 각기 락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뮤지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보컬리스트, 최고의 기타리스트, 최고의 드러머, 그리고 최고의 베이시스트 겸 건반 주자 겸 편곡자가 모였던 것이다. (물론 데뷔 당시에 보컬 Robert Plant와 드러머 John Bonham은 무명에 가까왔지만) 그들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브리티쉬 락 판세를 휘어잡았을 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도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며 락의 황금기를 노래했다. 그들에게 대적할 만한 그룹은 사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실은 완전히 사실은 아니다. 그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었을’ 그룹은 있었다. 힘과 무게가 실린 블루스 락을 그들만큼 훌륭하게 연주해 낼 수 있는 그룹, 당시 전세계에서 Led Zeppelin과 ‘맞짱’을 뜰 수 있는 그룹은 단 하나, Jeff Beck Group 뿐이었다.

라인업을 살펴만 봐도 전혀 만만치 않다. Jeff Beck이 Jimmy Page에 맞먹는 기타리스트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이 앨범에서 정말로 놀라운 것은 바로 Rod Stewart이다. ‘Da Ya Think I’m Sexy?’, ‘Sailing’ 같은 히트곡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팝가수, 그냥 섹시한 금발에 사생활 복잡한 유행가 가수인 줄로만 알았던 그가 실은 이토록 탁월하고도 진지한 락커였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다. 여러 곡에서 보여주는 그의 보컬은 블루스 필링을 완벽히 소화해 내는 것은 물론 힘차고 역동적이다. ‘Let me love you’ 같은 곡에서는 그가 작곡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다는 것까지 보여준다.

드러머인 Mickey Waller는 무명이지만 그의 드러밍은 충분히 훌륭하다. 베이시스트인 Ron Wood 는 또 누구인가. 훗날의 Rolling Stones의 기타리스트 아닌가.

한곡 한곡이 다 만만치 않은, 듣는 이를 압도하는 힘에 넘치는 블루스 락의 정수를 들려주는 곡들이다. 리메이크 곡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연주가 훌륭하지 않다고 할 순 없다. Led Zeppelin의 데뷔 앨범에는 실상 자기네 오리지널 곡은 거의 없다.

어? ‘Truth’에도 ‘You shook me’가 있네? 이건 Led Zeppelin 데뷔 앨범에 있던 곡 아냐? 천만에. Jeff Beck Group이 먼저다. (어차피 리메이크이긴 하지만) 그저 필자의 짐작일 뿐이긴 하지만, Jimmy Page가 이 겁나는 Jeff Beck Group 을 의식하지 않았을 리가 없고, 이 ‘Truth’를 벤치마킹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심지어 그는 이 앨범에 일부 참여까지 하고 있다. Beck’s Bolero는 그의 곡이다. 어? 그러고 보니 이곡에선 Keith Moon이 드럼을 쳤네?) 아마도 Led Zeppelin의 데뷔 앨범의 ‘You shook me’에서 들려주는 거의 충격적인 육중한 중금속성 사운드는 Jeff Beck Group이 이미 충분히 들려주었던 것의 업그레이드 버젼이라 해야 할 것이다. 또, ‘Truth’를 충분히 연구한 Jimmy Page는 그들의 데뷔 앨범에 ‘Truth’에는 없는 한가지 ‘매력 포인트’를 추가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folk 음악을 끌어들여 ‘Babe, I’m gonna leave you’라는 명곡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Anne Bredon이라는 포크 가수를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리고 만다.)

‘Truth’ 앨범은 필자에게 매킨토시 컴퓨터를 생각나게 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구? 애플사는 매킨토시에서 윈도우즈가 했던 모든 것들을 이미 한발 앞서 구현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저 그들을 따라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매킨토시는 그저 ‘Been there, done that’ (그거, 내가 다 했던 거야…!) 을 중얼거리며 투덜거리고 있을 뿐이다. Led Zeppelin이 했던 거의 모든 것들은 Jeff Beck Group이 한발 앞서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Zeppelin이 기세를 몰아 연거푸 홈런을 날리고 있을 때 이와 맞짱을 뜰 것같은 기세였던 Jeff Beck Group은 고작 두장의 앨범을 내고 지리멸렬 흩어졌으며 Jeff Beck은 그 이후 1975년 ‘Blow by blow’를 내놓으며 퓨전 기타리스트로 깜짝 변신을 하기 전까지는 헛스윙만 하면서 헤메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공부만 잘해가지고 출세할 수는 없는 법이다. Jeff Beck이 천재 기타리스트인 것은 틀림없겠지만, 까탈스럽고 예민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유별난 성격 탓에 다른 뮤지션들과 일하는 것을 무척 힘들어 했고, 결국 그는 Jimmy Page 처럼 한번 붙잡은 끝내주는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 하며 황금의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뚝심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200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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