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digate 라는 의사 커뮤니티에 음악 칼럼을 시작하며 올렸던 글
필자는 음악 전문가가 물론 아닐 뿐 아니라, 이따금씩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마츄어 ‘도사’ 수준이라고 하기에도 한참 미치지 못 하는 사람이다 – 이렇게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그래? 물론 그렇겠지 뭐. 그런데, 그 주제에 겁도 없이 무슨 음악 컬럼을 쓰겠다는 거야?’ 라고 눈쌀을 찌푸리기 시작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컬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약간의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간단하게 해명을 하자면, 필자는 메디게이트에서 만드는 웹진 ‘임펄스’에 ‘재즈맨 컬럼’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고정 컬럼 필자로 메디게이트와 인연을 맺었던 참에, ‘Punk & Funky’라는 역시 괴상한(?) 이름의 메디게이트 음악 동호회 게시판에 취미 삼아 올리던 글들을 아예 컬럼으로 만들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받고 겁도 없이 그러마고 하였던 것이다. 한편, 임펄스의 ’재즈맨 컬럼‘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음악 컬럼의 필자로 발탁된 것은 음악에 대한 소양과 지식 때문이라기보다는 번지르르한 ‘구라빨’ 때문임이 거의 틀림없는지라 P & F의 여러 고수님들께 송구스럽다.
그럼 이번엔 옛 기억을 되살리면서 좀 복잡한 해명 – 의과대학 중에는 의대생들의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는 대학들이 있다. 필자도 그러한 의대 중 하나를 졸업하였다. 의예과에 입학해 보니 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가지고 가입을 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물론 악기를 전부터 다루어 온 사람도 있었지만,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까지 다양하였다. 음악이란 멋진 취미생활이요, 훌륭한 인생의 동반자인 것만은 틀림없다. 클래식, 좋지. 하지만…
당시 필자는 음악을 좋아한지 이미 한참 되었었지만, 클래식에는 일자 무식이었다. 듣는 거라곤 주로 때려 부시는 헤비메탈 내지는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프로그레시브 등속, 할 줄 아는 건 알량하게 기타줄 튕기기.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를 좀 배우다가 어느 날 너무 너무 지겨워 때려치우고 나서는 피아노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전력이 있다. 그 바람에 체르니 30번까지 치고 나서도 결국 젓가락 행진곡 외에는 레파토리가 없는 참상이 벌어졌는데, 조금 참고 더 했었으면 하고 후회는 되지만, 싫은 데 어쩌겠는가. 전력이야 어쨌건 오케스트라에 가입하겠다고 악기를 새로 배운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교양’을 쌓기 위해서 클래식을 ‘공부삼아’ 듣기 시작했는데, 주로 전집류를 독파, 아니 청파하는 것이 그 ‘공부’였다. 재미는 별로 없지만 이러면 교양이 쌓아지려니 하는 일념에 열심히 듣던 어느 날, 그만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사전 펴놓고 1 페이지부터 외우면 영어 공부가 되냐?
그래서 때려치우고, 그냥 맘내키대로, 속되게 얘기해서 꼴리는대로, 듣기로 했다. 그래서 락을 계속 들었다.
클래식에 무슨 콤플렉스 있는 사람처럼 되어 버리긴 했지만, 음악 자체가 어쨌다기보다는, 클래식은 예술이고, 음악을 들으려면 클래식쯤은 들어야지, 어딜 천박하게, 게다가 보통 사람도 아니고 의사가 될 사람들이… 하는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강요한 적 없다고? 좋아, 좋아, 그렇게 느낀 건 순전히 필자가 삐딱해서라고 치자. 안 그러면 돌 맞을지 모르니까.
그럼, 클래식이 엘리트적이고 특권층 음악인 것 같아서 싫었으면, 락 음악은 무슨 ‘민중지향적’이라도 된다는 소리냐 하고 따진다면, 휴…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헤비메탈 락이나 아방가르드한 아트 락을 듣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 술 더 뜨는 호사취미에다가 훨씬 더 못 말리는 자기도취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슨 80년대 운동가요를 듣자던가, 혹은 정말 정말 민중적인(?) ‘뽕짝’이라도 듣자는 건 아니다. (필자는 뽕짝의 참맛을 느끼기에는 연륜이 아직 부족하다고 해야할 듯) 아니, 뭐 들으려면 듣고, 말리지는 않겠지만.
뭐, 어쨌든, 필자는 삐딱한 사람이 맞을 것이다. 락 음악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사실 별로 대답할 말이 없고, 그냥 ‘삐딱해서!’라는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마치, ‘이거 몸에 좋은 음식이니까 먹어, 먹어 보면 사실 맛도 좋아’ 하는 엄마 잔소리에 반항하면서 정크 푸드에 환장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락 음악은 유기농 식품이 아니다. 공격성, 파괴본능, 기괴함에 대한 탐닉, 현실 도피, 자폐적인 자기도취,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별 이유 없는 광기 (굳이 찾아보면 물론 이유야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는 음악이 건전가요(?)라고 어찌 주장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그런 흉칙한 음악을 듣는가? 그냥 좋아서? 글쎄, 그도 틀린 답은 아니지만,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한다면, ‘삐딱~하니, 멋있잖아!’ 이렇게 답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삐딱한’ 락이 그 본연의 올바른(?) 자세 – 그러니까, ‘똑바로 삐딱함’. 동그란 네모? 말이 안 되나? – 를 잃어버리고, 비주류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그 ‘삐딱함’이 어느새 또 다른 주류가 되어가고, 상업주의에 휘말리고, 그래서 그 대안으로 정말로 삐딱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는 소위 alternative rock이 나오더니만, 그것도 모자라서 그 ‘대안’이 더 이상 대안이기를 멈추었다며 절망하여 자살하는 락커까지 나온 지경이니, 필자가 주된 소재로 선정한 60년대 말-70년대의 소위 ‘올드 락’ 또는 ‘클래식 락’이 정말 얼마나 락다운 락인지 얘기하기는 사실 무지 헷갈린다.
필자가 폭 넓게 음악을 듣지 못 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클래식에 무식한 것은 접어두고라도, 소위 대중 음악 가운데서도 상당히 편식을 해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올드락 또는 클래식 락의 시대는 정말 훌륭한 음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음악이 그때 그것들 밖에 없는 것은 정말로 아니다. 필자는 귀기울여 들을만한 그때의 음악들을 주 소재로 삼아 자유롭게 얘기를 늘어놓는 한편, 여력이 되면 다른 장르로도 약간의 나들이를 시도할 것이다.
비록 필자가 전문가도 아니고, 충분한 아마츄어적 소양이라도 갖추었다 하기도 좀 부끄럽지만, 그래도 필자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귀’를 믿는다. 무슨 소린고 하니, 어떤 음악을 듣고 나서, 이게 그냥 휙 던져 버리고 잊어버리는 편이 나을 일회용품인지, 아니면 고이 모셔두었다가 어느 한가한 때에 다시 플레이어에 얹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데에는 엄청난 박식함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필자는 그런 ‘상식적인 귀’의 능력에 있어 최소한 평균은 된다고 믿는다.
독자 여러분들이 음악을 – 락이든 클래식이든 뭐든 간에 – 즐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고, 틀린 점을 발견하거나 다른 의견이 있으신 고수님들은 친절한 한 수 지도를 바란다.
-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