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y Goudreau: guitar Bradley Delp: vocals, guitar Fran Sheehan: bass Jim Masdea, Sib Hashain: drums Tom Scholz: guitars, keyboards |
MIT의 기계공학 전공 석사 출신이자 기타리스트, 작곡자, 사운드 엔지니어, 농구광, 채식주의자 Tom Scholz는 그가 이끄는 락밴드 Boston의 1976년 데뷔 앨범으로 세계를 놀라자빠지게 만들었다. 16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한때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의 타이틀을 보유했던 이 앨범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오디오 매니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앰프와 저런 스피커를 매칭 시키면 어떤 소리가 나올까? 연결 케이블을 바꿔보면 어떨까? 이 조합은 현악 독주에는 좋은데 오케스트라는 영 아니야. 음… 앰프는 역시 진공관이야. LP의 따뜻한 소리가 역시 좋군, 근데 픽업을 좀 더 업그레이드 해야할까봐. 리스닝 룸의 구조는 어때야 할까? 스피커 받침으로 볶은 모래를 깔면 어떨까? 아니야, 대리석을 까는게 좋다던데… 거의 기절 초풍할 정도의 상상을 초월한 편집증적 집착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기가 원하는 소리를 추구하는 그들의 노력은, 가히 피를 토해가며 득음을 하려는 판소리꾼의 처절한 노력에 필적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는 ‘기계 시험용’으로 대여섯 장의 CD 만 달랑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던데…
음악이란 것은 본질적으로는 ‘생음악’이어야만 한다. 악기로 연주한, 또는 목소리로 노래한 음을 아무 다른 것 거치지 않고 귀로 듣는 것이 진짜 음악일 것이다. 하지만, 락음악이란 태생적으로 ‘기계’들을 빼 놓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음악이기에 그러한 기계들을 적절하게 다루어 내는 것이 음악을 만들어가는 그 예술적인 행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냥 달랑 기타와 앰프만 가지고서도 멋들어진 소리를 만들어 내었던 에릭 클랩튼 같은 거장의 반대편에는 마치 오디오 매니어와 같은 집념으로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엔지니어적인 기교를 동원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운드를 창조해낸 탐 슐츠가 있는 것이다.
‘그거야, 비싼 기계 쓸 수록 소리 좋아지는 거지 뭐…’ 하면서 시큰둥하게 생각하시는 독자가 계시다면 조금 달리 생각해 보셔야 할 것이다. 탐 슐츠가 그가 원하는 소리를 추구했던 방식은 그런 단순한 ‘돈지랄'(!)은 아니었다. 그는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서 폴라로이드 사에서 일하던 중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각종 음향 기기들을 사들였는데, 최상급의 기계, 즉 소위 ‘하이 엔드’ 기기에 집착했다기 보다는, 그의 취향에 맞는 기계를 사들여 그가 직접 개조에 개조를 거듭하여 그만의 소리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의 데뷔 앨범의 첫 트랙 ‘More Than a Feeling’을 들어보면 그 정교하고 크리스탈처럼 투명하면서도 웅장한, ‘무결점’ 사운드에 귀가 번쩍 뜨이지만, 이 곡에서의 어코스틱 기타는 불과 백불짜리 야마하 12현 기타이고, 녹음하는 데 쓴 마이크도 싸구려 마이크라는 얘기를 들으면 거의 귀를 의심할 정도이다.
실제로 그가 만들어 내는 사운드는 ‘돈만 가지고는’ 재현할 수 없는 사운드이다. Boston의 공연 실황을 위한 엔지니어링을 담당했던 한 엔지니어는 갑자기 한 기계가 고장났거나 할 경우에 생기는 문제에 대해 토로했던 바가 있다. 모든 기계는 탐 슐츠가 뭐든 만져놓고 그의 맘에 맞게 개조를 해 놓았기 때문에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기계로 대치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99%의 청중은 모르겠지만, 탐 슐츠 자신에게는 문제였지요.”
그는 또한 컴퓨터와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지 않는 음악인으로 유명하다. 그가 만들어냈던 사운드는 장인 정신에 가까운 음에 대한 그의 집념이 서린 아날로그 시대 사운드의 결정판인 것이다.
이 데뷔앨범의 모든 곡들은 그의 그런 완벽주의에 따라서 그야말로 흠잡을 데 하나가 없는 ‘완벽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More Than a Feeling’ 한곡에만도 12현 어코스틱 기타, 두대의 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 베이스 기타 등 ‘최소한’ 다섯 대 이상의 기타 사운드가 오버 더빙되어 있다. 기타 사운드 자체도 그때까지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장대한 것이었는데, 앨범 자켓 (이마저도 탐 슐츠가 제안한 컨셉트라고 한다.)에 나와있는 우주선 형상을 한 기타, 바로 그 이미지인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우주선이 유유히 날아가는 듯한, 압도적인 중량감과 공간감을 지닌 그 웅장한 사운드는 그 누구라도 귀가 번쩍뜨이는 것이었다.
Boston의 두번째 앨범의 타이틀 곡 ‘Don’t Look Back’은 그들의 곡들 중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거의 충격적이라고 해야 할 그 ‘우주적인’ 기타 사운드를 들으며 느꼈던 전율이 지금도 새롭다.
다만 한가지 아쉽다면 아쉽고, 어찌 생각하면 오히려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은, 그들의 음악은 거기에 서려 있는 탐 슐츠의 그 ‘완벽한 소리’에 대한 끝간데 없는 집념에 비해, 음악적으로는 비교적 단순하고, 매우 ‘쉽고 부담없는’ 직설적, 대중적인 락 음악이라, 그다지 심오한 음악성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2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지금, 컴퓨터로 뚝딱뚝딱 순식간에 만들어 낸, ‘양산 체제’하의 싸구려 음악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탐 슐츠의 아날로그적 장인 정신은 여전히 빛난다. 귀를 말끔히 청소해주는 상쾌한 음악이다.
2001.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