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생리학을 위한 시간이다. 해부학은 우리에게 신체의 구조를 알려 주었지만 그것은 아직 생명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해부학이 시체를 해부하는 학문이 아니며 시체 해부는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은 생리학과 생화학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산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을 이해하고자 함은 아니다. 해부학은 무려 7학점짜리의 엄청난 괴물로서 (연관 과목인 신경해부학, 조직학, 태생학을 합하면 무려 14학점이다! 휴…) 가련한(?) 의대생인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생리학과 생화학으로 인해 우리는 차겁고 어두운 카데바(cadevar, 시체)의 세계를 떠나 비로소 따뜻한 체온을 지닌 인간의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생화학이 눈에 뵈지도 않는 화학반응과 어지럽게도 돌아가는 각종 싸이클들로 우리를 질려버리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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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경직된 사회, 권위적인 사회의 모습이란 그 밖에서 쳐다볼 때에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것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슬프고도 비참한 일이 된다. 하이텔 대화방에 항상 눈에 띄는 제목인 ’80년대 학번, 그들의 꿈과 사랑…’ (이 제목이던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직접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과연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을 볼 때면 역시 80년대 학번 중의 하나인 나에게는 기묘하게도 뒤틀려 있었던 그때의 상황들이 되살아난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금씩은 암담한 시대가 빚어내는 어두운 추억들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아닐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 의과대학이라는, 외부와 격리된 듯한 (실제로 격리되어 있다기 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소아과 이야기
어린이들이란 밝고 활기찬 모습일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또, 건강한 모습일 때에 희망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아프고 병든 모습은 어른의 병든 모습보다 더욱 보기 애처롭고 딱한 법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의 인턴 시절, 소아과를 돌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런 평범한 생각들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나의 걱정은 나의 소아과에서의 주임무가 될 IV (intravenous (injection); 정맥 주사), 그리고 샘플링 (sampling; 검사를 위한 채혈)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있었다. 정맥 주사가 의사의 일이냐, 간호사의 일이냐는 문제는 많은 논란이 있는 문제이겠지만 어쨌거나 간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이는 일차적으로 인턴의 몫으로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에 내가 정맥 주사에 익숙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