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이야기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0년 8월 나는 마취과의 인턴으로 가게 되었다. 7월을 내과 중환자실에서 30일 간 계속 당직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보내었던 나는 그 감옥살이와도 같았던 중환자실에서의 근무를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뻐 날뛸 지경이었다. 몸도 마음도 한 달 동안의 고생 끝에 팍삭 삭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마침내 말년에 진정한 자유를 찾은 빠삐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마취과에서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다소 긴장은 되었지만 지금까지 겪은 일에 어찌 비하랴! 마취과에서의 일에 대한 간단한 orientation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감격스럽게도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나! 이런 별천지가 밖에 있었다니! 한 달 간

내공에 대하여

제목이 이상해서 이 글을 들추어보신 분들 중에는 이자가 그간 몇 편 시답지 않은 글 올리더니 이번엔 무협지를 연재하려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의 무협지 내공은 1갑자에도 못미치는 보잘 것 없는 것이니 애당초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관련은 있겠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의사도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런지? 의학 지식의 창조자, 연구자로서의 의사는 분명 과학자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지식의 소비자로서의 역활, 즉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가로서의 의사는 단순히 과학자라고 단정짓기 힘든, 무척이나 복잡한 존재이다. 임상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자연과학으로서의 의학 뿐이 아니다. 그들은 통계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사회학, 윤리학, 보건학, 그리고 건전한 상식(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을

날아다니는 것이 무서버!

사람의 – 또는 사람 뿐아니라 모든 고등 생물에 있어서 – 무서움이란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그 개체의 보존에 유리한, 합목적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쉬운 말을 너무 어렵게 썼나? 어쨌든 쓸데없이 겁이 없는 사람은 괜히 얻어맞거나, 고소 당한다든지, 욕을 먹는다든지, 물어뜯기거나 꼬집히거나, 타박상, 찰과상, 그리고 급사의 위험성이 높다. (이 주장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없음!)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한두 가지, 때론 수십 가지의 물건, 생물, 상황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고소공포증이라던지 (이게 이유 없는 두려움이라고?) 폐소공포증과 그 반대되는 광장공포증, 대인공포증 등등 이유없고 과도한 무서움증은 드물지 않은 것이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을 들어보라면 두 가지의 항목을 들 수 있다. 첫째는 발이

해부학 이야기… 포르말린냄새에 쩔어버린 내 청춘

의과대학에서 본과 1학년이 하게되는 시체해부 실습만큼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오해와 근거 없는 억측을 낳게 하는 것도 흔치 않으리라. 필자는 의과대학 시절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이에 관련된 질문들을 가끔 받곤 했다. 무섭지 않느냐느니, 꿈에 나오지는 않냐느니, 시체실습 때문에 의과대학 그만두는 사람은 없냐느니 하는 것들이다. 그때마다 구구절절히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느꼈던 나는 그저 간단히 이렇게 일축해버리곤 하였다. “그게 먹고 살 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나이도 몇 살 안 먹은 것이 이런 투로 이야기하면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것도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본과에 진입하여 일주일 남짓 우리는 뼉다구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무슨 기묘한 마술의 주문이라도 외우듯 그 뼈 조각들의 이곳 저곳에 붙어있는 굉장히 낯설은 이름들과

게임의 ‘게’ 자도 모르는 사람이 쓴 게임 이야기…

나는 한마디로 컴퓨터 게임에는 일자무식인 사람이다. 그게 내 체질인지, 아니면 둔하기 짝이 없는 운동신경과 발뒤꿈치같이 무딘 센스 탓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을 증오(?)한다고나 할까… PC라는 신통한 물건을 만지게 된 것이 한 5년밖에는 안되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써볼까, 우짜면 좀 더 일을 편히 하는데 쓸 수 있을까 등등 이모저모로 고민하며 시간을 보 낸 끝에, 컴퓨터에는 아래아 한글과 도스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무식~한 (!) 사람들이 꽤 있는 나의 직장에서는 뭔가 해결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찾는 지경이 되었다.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이라 고…) 예를 들면 “왜 내 컴퓨터에서는 hwp쳐도 아래아 한글이 안 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