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역병, ‘건강염려증’

의사로서 진찰실에 앉아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세상이 온통 아픈 사람 천지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주로 하는 일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 마련인지라, 구두닦이는 구두의 깨끗함으로 사람을 보고, 컴퓨터 매니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 사양으로 그를 평가하며,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는 환자의 얼굴은 기억 못 해도 환자가 진찰대에 누운 것을 보면 아하!하고 알아본다는 얘기까지 있다. 별로 믿고 싶지는 않은 얘기이지만 말이다. 필자가 아는 어떤 음식 잘 만드는 분은 ‘잘 + 많이 먹는 것’으로 인격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서는 오직 열심히 먹는 길뿐이다. (필자에게는 무척 유리함.) 마찬가지로 의사는 그 사람이 가진 병과 그 사람을

결혼기(5)

결혼과 직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부부가 비슷한, 또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면, 서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편이 좋을까? 또는, ‘아녀자는 남자가 바깥에서 하는 일 알 필요 없는’ 것일까? 필자가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의사인 필자와 역사학도인 필자의 아내 Y가 하는 일이 무척이나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세상에 억지로 끼워 붙이면 서로 연관이 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만 의학과 역사학은 관계가 있다면 무척이나 깊은 관계이고 또 전혀 상관없다고 우긴다고 해도 사실 별로 반박할 말도 없다. 그건 ‘의학’이라는 말과 ‘역사’라는 말을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의학과 역사학간의 학문적인 상호 관련성과 같은 엄청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

초보딱지 떼어내다

어느 길을 보던지 자동차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기억에 따르면 필자가 국민학교 (아니, 요즘은 초등학교이다.)시절만 해도 생활 기록부에 집안 형편을 적는데 생활 정도를 상중하로 구분할 때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가용이었다. 자가용이 있는 집은 ‘상’이었던 것은 기억이 틀림없고 확실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전화가 없는 집은 ‘하’였던 것 같다. (참고 삼아 이야기하면 필자가 국민학생이던 시절은 70년대였다.) 요사이 생활 기록부에는 어떤 기준으로 적는지 모르겠지만 집은 없어도 자가용은 다들 끌고다니는 마당에 자가용이 있느냐 없느냐가 생활 수준 ‘상’의 기준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혹시 차종으로 따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하여간에 너나 할 것 없이 자가용을

결혼기(4)

PC 통신이란 신통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게 된 것도 어느 새 3년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경력이랄 것도 없는 필자의 통신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내인 Y와의 메일 주고받기와 채팅이다. Y와 통신상에서 만난 것은 물론 아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필자 역시 PC 통신이란 게 있다던데, 하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녀를 만난지 얼마 안되어 필자가 가지고 있던 거의 사망 직전의 AT 컴퓨터를 필자의 친구에게 거저 넘기고 486 DX, 4 MB RAM, 120 MB 하드 디스크 등, 92년 당시로서는 비교적 쓸만한 사양의 컴퓨터를 큰 맘 먹고 장만하였다. 멀티미디어 컴퓨터는 당연히 아니었고, 당시에는 별 필요성을

결혼기(3)

이 글의 전편인 결혼기(2)에서 한 10년 쯤 뒤에도 재미있게 사는지 보자고 그랬는데 얼마(?) 못 참고 또 펜을 들었다. 아니, 펜을 들은 게 아니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건데, 너무나 삭막하고 반문학적인 표현이라 유감스럽다. ‘그래 어디 한번 살아봐라’고 비웃음 내지는 저주(?)의 주문을 외우던 분들에게는 죄송스런 말씀인데 다행히도 아직은 비교적 재미나게 살고 있다. 다행 중 불행은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Y는 얼마 전 영국사(안타깝게도 필자는 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를 공부하러 다시 바다 건너 가버리고 필자는 독수공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떨어져 살면 신혼이 오래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 위로로 삼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다고 하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