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이 ‘침묵의 살인자‘라는 섬뜩한 별명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혈압은 별다른 증상이 없어 혈압을 측정해보기 전에는 잘 알 수 없는 반면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는 뇌졸중, 심부전, 신부전, 협심증, 심근경색 등의 심각한 질환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국립보건원은 대중들이 고혈압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도록 하기 위한 광범위한 캠페인을 한 결과 고혈압 인지율 (고혈압인 사람이 스스로가 고혈압임을 인지하고 있는 비율) 을 51%에서 73%로 끌어올리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계속된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이 인지율은 68%에 머물렀고, 치료를 받는 사람은 불과 절반 정도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인지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는 사실 놀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딘가 불편하고 아파야 의사를 찾기 마련이고, 아무런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 고혈압을 그냥 놔두면 10년 20년 후에 문제가 되니 치료를 해야한다는,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말을 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설득한다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법이다. 한 번 망가진 몸을 추스리기란 좀처럼 어렵다. 그 망가지는 과정이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또는 알고도 무시하는 사이에 10년, 20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소리 없이 우리 건강을 망가뜨려 버리는 대표적인 침묵의 살인자인 것이다.
고혈압이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상식처럼 되어버렸지만, 실상은 고혈압이라는 것이 치료해야만 하는 상태라는 개념은 극히 최근에 생긴 일이다. 1940-50년대에는 고혈압을 치료해야만 한다고 믿는 의사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고혈압은 신체의 자연스러운 노화 등의 변화에 대한 적응으로 생긴 현상이므로 이를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하는 것은 해롭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였다. 사실은 이 당시에는 혈압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약제가 전무하였다. 아니, 혈압이 높은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나 약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도 없었을 것이다.
헌데,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가끔은 본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들은 그간 축적되어 온 고혈압의 유해함에 대한 강력한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한 채 그저 자신의 머리 속에서 그리는 사변(思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의 이름은 누구나 들어보셨을 것이다. 대통령을 네 번 연임하면서 대공황과 세계 제 2차 대전을 겪은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가진, 미국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이다. 헌데, 그가 ‘가장 유명한 고혈압의 희생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는 40대에 이미 혈압이 높기 시작했으나 그에 대해 그 자신도 주치의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말한 대로 그 당시는 고혈압이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혈압을 낮출 수 있는 약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50 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혈압은 매우 심한 정도로 높아졌고, 마침내는 심장의 기능이 떨어져 호흡곤란과 부종 등의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그의 주치의는 그의 호흡곤란 증상에 대해서 천식이나 기관지염 같은 엉뚱한 진단을 붙였던 모양이고 그 당시에도 이미 사용 가능했던 디지탈리스와 같은 강심제를 사용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다 못한 그의 딸이 다른 의사에게 상태를 보임으로써 비로소 강심제가 투여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상태는 이미 나빠질대로 나빠진 후였다. 그의 말년 3-4년 동안의 그의 건강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 바 사실인 것 같다. 그는 마침내 63세의 나이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조절되지 않은 고혈압의 전형적인 합병증인, 심부전으로 고생한 끝에 또 다른 전형적인 합병증인 뇌졸중으로 생을 마친 것이다.
얄타 회담에서 촬영한 너무나도 유명한 그 사진, 오른쪽에 처칠, 왼쪽에 스탈린과 같이 나란히 앉아 찍었던 그 사진을 자세히 보라. 아마도 그 사실을 알고 본다면 그의 얼굴이 꺼칠하고 푸석푸석해진, 병색이 완연한 병자의 얼굴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효과적인 혈압 강하제인 이뇨제는 195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 약이 10 여 년 일찍 개발되었다면 혹시 세계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혈압을 조절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심장, 뇌혈관, 신장 등에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는 것, 혈압강하제로 혈압을 낮추었을 때 그러한 합병증의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의문을 제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부인하기 힘든 과학적 증거들이 눈앞에 널려 있다. 그러니 제발 혈압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따라서 인위적으로 낮춰서는 안 된다는 등의 소리는 제발 그만 좀 하자.
고혈압 해로운 것 다 아는데 무슨 잔소리냐고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그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들에게 약을 써서 혈압을 조절하자고 얘기하면 거의 세 명의 두 명 정도는 똑같은 얘기를 먼저 한다. ‘근데, 약을 한번 쓰면 평생 써야 한다면서요?’ 뭐 약 쓰는 것이 좋지 않다는 얘기라는 것은 알겠는데, 한동안 필자는 이 말에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잘 파악을 하지 못했었다.
필자가 이 말을 곰곰 새겨본 결과 깨닫게 된 숨은 의미는 이러하다. 이 말은 약을 일단 써서 ‘건드려’ 놓으면 그담에는 계속 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의존’ 상태로 될 것이 싫다는 얘기인 것이다. 결국 여기에는 혈압이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병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에 손을 대서 한번 인위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그 다음에는 계속 인위적으로 조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무엇이 인위적이란 말인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놔두면 합병증이 발생하고 수명을 단축되며, 수명을 늘이고 질병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약물 치료를 해야만 한다. 결국 이 두 가지 중에서 뭔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헌데, 고혈압이 정말로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한 것인가? 필자의 답은 ‘아니오’이다.
현대의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정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란 게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문명과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오지의 부족들에게는 고혈압이 생기는 일이 흔치 않다고 알려져 있다. 원인이 식염 섭취의 증가인지, 운동 부족인지, 비만 때문인지, 다른 식생활의 문제인지, 아무도 확실한 답은 모르지만, 인간이 문명화되고 산업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고혈압은 분명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여간에 고혈압은 정말로 야생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순리에 따른 신체적 변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스러움’을 위해 문명을 완전 포기하고 원시시대로 되돌아 갈 것인가.
인간은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냥 될대로 내버려두어서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고통받을 것인지, 먹기 싫은 약이지만 참고 먹어서 혈압을 조절하여 합병증을 예방할 것인지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판단하건대 후자의 선택이 대체적으로 현명하고 적절한 것이 아닐까.
건강 관리는 나이 든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빠르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부터 고혈압은 생겨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성인은 어디가 불편하건 안 하건 간에 무조건 그리고 반드시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야만 할 것이다. 혈압이 높은 것을 아는 데 혈압을 측정해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혈압이 정말로 높다면, 혈압을 낮추기 위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도대체 왜 인간이 꼭 약을 먹으면서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의사인 필자에게 원망을 하시지는 말기 바란다. 최소한도 고혈압에 관한 한, 의사 때문에 ‘안 먹어도 될’ 약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00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