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이 알려진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웬일일까. 그 진원지는 이주일씨의 금연 호소가 매스컴에 ‘뜨면서’ 부터라고 한다. 금연 캠페인은 여기 저기서 수도 없이 이루어지고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해악은 상식처럼 되어있지만, 이처럼 전국을 휩쓰는 금연 열풍이 일어난 것은 순전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세를 풍미했던 한 코미디언이 폐암에 걸려 산소 호흡기를 단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절박한 메시지를 뿌렸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니 매스컴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일단, 담배의 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입이 아프도록 환자들에게 담배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할 의무를 가진 의사로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잠깐의 유행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도 가지게 된다.
금연 열풍과 관련하여 담배의 해로움을 재조명하는 선정적인 기획 보도들이 방송되고, 직장에서는 지정 장소 외에서 담배를 피다가 적발된 흡연자에게 경고를 주는 정도의 비교적 가벼운 제재에서부터 공휴일 당직 근무를 시킨다든가, 심지어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정도의 심각한 정도의 금연 압력을 제도화하고 있다. 게다가 담배 값은 인상되었고, 금연 구역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흡연자는 발붙일 곳이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흡연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일은 사라질 것인가? 곧 담배 없는 세상이 될 것인가? 아니, 과연 흡연자가 줄어들기는 할 것인가?
필자는 결코 비관주의자가 아니며 무척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비관적이다. 흡연자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최소한 필자의 살아 생전에 담배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일 같은 것은 절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왜, 무슨 근거로 이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가. 한가지 자료만 보아도 분명하다. 한국 금연운동 협의회 (http://www.kash.or.kr)와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공동 조사한 1988년부터 최근까지의 전국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청소년 흡연률 조사 자료를 보자. 2001년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의 흡연률은 30%에 육박한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대부분 성인 흡연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이들 세대가 나이가 들면서 흡연률이 30% 이하로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3명 중 한 명이 담배를 피우는데 어찌 이것이 국가적인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할 것인가. 최소한 향후 30-40년, 또는 그 이상 ‘담배와의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필자의 예측은 틀림이 없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이들 세대의 흡연률이 그저 그대로 30% 정도에 머물 것이라고 본다면 이 또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측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 남성들이 흡연을 시작하게 되는 평균연령은 20대 초이다. 즉, 대학 초년생 때와 군 복무 중이 가장 많다. 결국 이들의 흡연률은 50%가까이 또는 그 이상 올라갈지도 모른다.
1980년대 후반부의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의 흡연률은 40%가 넘으며 89년도의 경우는 50%에 이른다. 이들이 지금 30대 후반 내지는 40대 초의 사회의 중추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 있다. 현재 한국 성인 남성의 흡연률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3명 중 2명이 흡연자인 것이다.
남학생들에서의 흡연률은 다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것도 아닌 것이 여학생들의 흡연률은 증가하는 추세여서, 실은 전체적인 흡연률은 별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만, 지금 범국가적으로 금연 캠페인이 벌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앞다투어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 중인데, 정말 그렇게 앞날이 어두운 것인가?
금연하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는 절대로 아니지만, 기왕에 ‘인이 박인’ 사람들이 담배를 끊는 것은 사실 상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 할 정도로 힘들다. 오죽하면 ‘담배끊은 사람하고는 상종하지 말아라’는 말까지 있을까?
담배를 끊기 힘든 것은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의 강력한 중독성 때문이다. 이는 담배를 끊은 후 생기는 금단 증상의 원인 물질이다. 이 중독성에 의한 의존성은 단지 육체적인 의존성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존성과도 한데 얽히면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갈고리가 되어 흡연자를 옭아맨다.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지킨 수년간의 금연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다. 그만큼 담배는 강력한 중독성과 의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담배와 마약이 뭐가 다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가지는 합법적이고, 다른 한가지는 불법이라는 것 외에는 사실상 근본적인 차이점은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물론 마약 중에 환각 등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는 반면 담배는 그런 뚜렷한 향정신성 작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상의 해악을 준다는 면에 있어서는 어떤 마약에도 뒤지지 않는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강력한 중독성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필자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피운 적도 없기 때문에 흡연자들의 어려움이나 고충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필자는 주위에서 골초들이 일시적으로 담배가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얼마나 처절하게 담배를 찾아 헤메는지 드물지 않게 목격해왔다. 정말로 절박한(?) 상황이면 그들은 꽁초라도 찾아서 헤메는 등,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눈뜨고 못 봐줄 장면까지 연출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담배란 물건은 특별한 경우(산꼭대기, 무인도…)가 아니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그다지 흔치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담배를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도 기존의 ‘중독자들’이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담배는 절대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약이 퇴치되지 않는 것이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벼운 때문이겠는가. 담배가 불법화된다면 그 즉시로 암시장이 형성될 것이고, 세계 각국의 조직폭력단체들은 이 새로운 고수익 사업에 침을 흘리며 덤벼들 것이다. (아,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높은 흡연률을 자랑하는 한국은 그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황금 시장이 될 것이다!)
방정맞은 상상은 그만 하자. 하여간에, 불법으로 되어 있고 한번 걸렸다 하면 인생 끝장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마약도 퇴치가 안 되는 판에, 그 마약과 버금갈 중독성을 지닌 담배가, 그 ‘합법적인 마약’이 그저 금연 캠페인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게다가, 한편에서는 금연의 압력이 거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피워라, 피워라’ 부추기는 압력이 있다는 사실도 문제다. 요즘 하도 금연, 금연하니 주춤한 모양이지만, 실은 담배는 지자체들의 주요 세원 중의 하나로서, ‘내 고장 담배 피우기’와 같은 캠페인이 버젓이 존재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한 편에서는 흡연자들의 고통은 갈수록 더해간다. 온갖 사회적인 차별을 (어찌 보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의 소지마저도 있다.) 받는데다가, 되풀이되는 금연 실패는 본인의 의지 박약을 확인시켜 주는 좌절스러운 경험이 된다. 금연 시도를 포기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금연에서 실패는 그야말로 병가지상사다. (혹자는 이 말이 실제로는 喪事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분명 常事로 쓴 것이다) 담배는 그만큼 강력하다. 실패한다고 해서 의지가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고 자기 비하를 할 필요는 정말로 없다.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담배 문제는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데에 모든 사회적 역량이 집중되지 않는 한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군대의 분위기가 다소 변화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인데, 한국 남성의 평균 흡연시작 연령이 22세 가량으로 거의 반수가 19-24세에 시작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남성의 경우 군대의 역할이 대단히 클 것임은 자명하다. 담배는 당연히 피는 것으로 간주하여 보급품으로 지급하던 상황에서, 최근 경향에 따라 금연 캠페인을 펼치는 부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희망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흡연 시작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흡연을 방지하기 위한 조기 교육의 필요성은 참으로 절실하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적극적인 흡연 방지 교육은 담배 문제 해결에 절대적이라고 본다. 그밖에도 담배 농가의 타 작물로의 전환 문제, 담배세에 의존하는 지자체 세원 문제 등등 정말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이 ‘보통’이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예외’로 여겨지는 사회분위기는 분명 필요하다. 미성년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지만 성인은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 규범(norm)으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 흡연률이 줄어들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 사회에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일탈하고 싶은 청소년들은 끝없이 흡연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른들이, 그리고 부모들이 먼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흡연에 대한 규제와 담배를 피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등의 사회적 금연 압력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드디어 ‘담배 해로운 건 우리도 안다.‘고 하기에 이른 한국 담배소비자 연맹의 눈물겨운(?) 성명서대로 흡연자들의 건강보호와 피해 구제를 위한 노력도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흡연 문제를 그저 개인 선택의 문제로 돌려서 모든 피해를 한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버리기에는 그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2002.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