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건강의 적

필자는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어느 시립 병원에 여러 차례 파견을 나가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립 병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행려 병동’에서의 경험이었다. 연고자가 없고 일정한 거처가 없는 병자들이 입원해 있는 곳이다. 밤에 응급실을 지키고 있으려면 의식불명의 환자를 경찰차가 실어다 놓고는 가버리곤 한다. 그가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길거리에 쓰려져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뭐라고 말해줄 사람도 없으니, 병력 청취고 뭐고 할 수가 없어 차트에는 쓸 말이 없다. ‘경찰이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데려옴’, 이 한 줄이 고작이다.

필자가 결혼이란 것을 그저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것’ 이상의 것으로, 즉 결혼을 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처음으로 찾은 것이 바로 그때라고 하면 좀 우스운 얘기가 될까? 행려 병자가 별건가, 늙고 병들었는데 가족도 연고자도 아무도 없이 길거리에서 쓰러지면 그게 곧 행려병자다. 행려병자 되기가 무서워 결혼했다고 하면 필자의 아내가 상당히 황당해 하겠지만, (물론 그게 이유는 아니다!) 결혼하고 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필요’할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행려병자들의 비참함을 보면서부터인 것은 틀림이 없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행려병자들에게는 적절한 치료를 하기 힘든 경우가 무척 많다. 대개는 국가에서 치료비를 대주는 의료 보호 환자들이 많으니 치료비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치료를 해주기가 어려운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만 들어보자. 필자는 행려병동에서 일부러 자기 발을 ‘혹사’ 시켜서 상처가 아물지 않도록 하는 당뇨병 환자를 본 적이 있다. 퇴원하면 보호 시설로 보내질 상황인데, 그곳이 병원보다 훨씬 열악한 것을 아는지라 병원에 계속 머물기 위해 상처를 함부로 내굴렸던 것이다.

결국 가난하고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조건은 매우 중요하겠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닌 모양이다. Psychosomatic Medicine (우리 나라말로 하면 ‘심신(心身)의학’ 정도가 되는데, 이 방면에서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의 하나이다.) 2001년 3/4월호에 실린 한 연구를 보면 심장병을 가진 환자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 사망률이 2-3배 가량 높다는 결과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들의 연령, 질병의 중한 정도, 소득 등을 모두 고려한 결과로서, 경제적인 조건을 포함하여 다른 여러 가지 조건이 같다고 해도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사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병에 걸릴 확률이나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며 이미 비슷한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잘 알려져 온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가장 고전적인 반론으로는, 고립되었기 때문에 불건강한 것이 아니라 병든 사람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확률이 낮고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립되기 쉽다, 즉 사회적 고립이 불건강의 원인이 아니라 역으로 불건강이 사회적 고립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반론은 위에 예를 든 것과 같은 잘 고안된 연구들에 의해 충분히 재반론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미 특정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간에 비교하더라도 사회적 고립은 분명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외로움은 건강의 적인가? 분명 사실인 것 같다.

아마도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혼자서 살도록 되어 있지 않은 지도 모른다. 동물에 따라서는 호랑이와 같이 평생 혼자서 살아갈 뿐 아니라 엄청 넓은 면적을 혼자서 차지하고 자기 구역 내에 딴 놈이 들어오면 기를 쓰고 싸워서 당장 내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놈들도 있지만,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들은 분명 무리를 지어 산다. 인간도 그 진화의 과정 중 내내 떼지어 사는 생활에 적응해 왔고, 현대사회, 특히 산업화된 사회의 대도시와 같이 물리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생활은 매우 낯설고 적응하기 힘든 정신적 환경일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서, 계속적인 ‘각성 상태’를 우리 신체에 요구하고, 끝없는 긴장상태를 유지하려다 보면 결국 신체의 균형은 깨지기 마련인 것이다.

다른 설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회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 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가족들을 위해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술을 줄여야겠다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건강을 돌봐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은 무척 많다. 마누라 잔소리가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또는 이러 저러한 인간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하여 질병이 생겼을 경우에 의료 서비스를 비교적 늦지 않은 시기에 용이하게 받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점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사회적인 고립은 분명 건강에 해롭다. 헌데, 가족은 점점 핵가족화되어가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늘어난다. 자기 집에서 외로이 숨진 채 며칠씩 그냥 방치되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진다. 이런 일을 이미 훨씬 전부터 겪어온 서구에서는 어떤 해결책을 찾고 있을까?

우리로서는 좀 이해가 안 가는 정도로 애완동물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것이 미국 사람들이라, 애완동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적잖이 있다. 필자가 최근 참석했던 한 세미나에서 어떤 발표자가 여러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서 보여준 것 중 하나가 ‘개를 키우는 사람은 사망률이 낮아졌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애완동물이 없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놓고 참석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개를 산책시키느라 운동을 하고, 고양이 키우는 사람은 대개 고양이를 무릎 위에 놓고 꼼짝을 안 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가 보여준 다른 연구 결과에서는 자녀 수가 많을 수록 사망률이 높단다. 애는 낳지 말고 개를 키우자? 믿거나 말거나다!)

애완동물에 특별히 취미가 없는 필자로서는 온 집안에 개털이 펄펄 날아다니고 침대와 소파 위로 개가 마구 뛰어오르고 하는 꼴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그다지 건강에 이로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미국 사람들은 워낙 개를 좋아하니 뭐 그렇다 치자. 가끔씩 개가 집을 뛰쳐나가서, 잡으러 동네를 헤메고 다니면 운동도 꽤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다. 사회적 고립의 스트레스를 개가 조금 ‘달래’줄 지는 모르겠지만, 개가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 관계가 너무 없어서 고작 개한테서 위로를 찾는다면 너무 신세 처량한 일이 아닌가.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뭐라도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쓰는지 모른다. 동창끼리 모이고, 종교 활동을 하면서 모이고, 취미 활동을 통해 모이고, 하다 못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술먹기 위해서도 모인다. 현대인은 그도 저도 안 되면 가상 세계에서 가상의 관계라도 만든다. 네트워크 게임의 세계에서는 현실 세계와 똑같은 인간 관계가 이루어지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돕기도 하고 심지어 결혼까지도 한다. 가상 세계에서의 인간 관계가 현실 세계에서의 사회적 고립에 의한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인가? 참으로 흥미로운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저 어떤 인간관계가 있기만 한 것으로 도움이 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도움이 안 되는 인간관계도 있고 끝내 사람 속을 썩이고야 마는 관계도 있다. 아무 상관없는 남남이면 그저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그럴 수 없는 관계가 괴로운 관계가 되어버리면 건강에 해로우면 해로웠지 이로울 수가 없다.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고 배우자일 수도 있다. ‘홧병’이란 것이 그 발음 그대로 하나의 고유명사로 국제 질병 분류 기준에 독립된 한 질병명으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 특유의 고부간의 갈등 등 여성들이 가족 관계에서 겪는 심한 스트레스에 힘입은 바 크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자식이 웬수’란 말도 있지 않은가? 괴롭지만 쉽게 끊을 수 없는 인간관계는 인생살이에 참으로 큰 스트레스다.

건강은 그저 보약을 먹는다고, 내 몸 하나만 잘 건사하려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고, 좋은 인간 관계를 맺고 그것을 소중히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건강의 중요한 한 조건일 것이다.

20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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