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문제가 쟁점으로 불거져 나올 때마다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한 옛 인물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고 요즈음은 시절이 하 수상한지라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이 인물은 많이 인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흔히 잘못 인용되고 있다. 그는 다름 아닌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이다. 요즈음 누구나 한마디씩 입에 올리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이하 ‘선서‘)이다. 그런데, 워낙에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라 이 ’선서‘를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하나같이 의사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목적으로 ’선서‘를 끌어다 붙이고 있으며 의사들은 그를 입에 올리는 적이 좀처럼 없다.
과연 그 ‘선서’란 게 무엇이길래 그렇게 너나할 것 없이 – 필자를 포함하여 – 한마디씩 하는 것인가.
좀 길어지는 게 문제지만 독자 여러분들이 일단 판단해 볼 수 있도록 원래(현대판이 아닌) ‘선서’의 전문을 실어보도록 하겠다. 한가지 생각해야 할 점은 그리스어를 직접 읽기 전에는 ‘선서’의 원문이란 없다는 것이다. 조금씩 다른 무수히 많은 영문 번역이 있는데 필자가 인용하는 것은 ‘Hippocratic writings’ Penguin books, Ltd, Middlesex, England, 1983, translated by J. Chadwick and W. N. Mann 에 실려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을 다 달고… 분위기 좀 험악해지는군요. 중간에 집어 넣으면 더 이상 글을 읽기를 포기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맨 끝에 집어 넣으니 참고하십시오.)
Impulse 과월호에 안유정 선생님의 훌륭한 번역이 있으므로 그를 참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선서’에 대해 조목조목 분석해 놓았으므로 분명 일독할만하다. 필자는 이 글에 언급되지 않은 내용을 좀 더 캐어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번역한 원문이 다른 관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Impulse의 독자들이라면 이 정도는 훌륭히 해석할 능력이 있으리라 믿는다. (일단 믿어 보는 거지 뭐.)
그렇다면, 히포크라테스가, 아니 히포크라테스 본인은 아니더라도, 하여간에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이 ‘선서’를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아무리 눈씻고 찾아보아도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의술을 펼치겠다’고 말하는 대목은 없다. (성서에 술담배 하지 말라는 얘기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자기 희생이나 봉사를 언급하는 대목조차 없다. ‘나는 순수하고 경건하게 나의 삶을 살아가며 의술을 행하겠노라’ 라는 대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인술을 행하고자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집어던지겠다는 이타주의적인 맹세는 그 어디에도 없다.
드라마 ‘허준’이 인기를 끌고 최근 어지러운 세태와 맞물려 ‘허준’ 같은 의사가 왜 없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뭐하러 했나 하는 얘기들을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데, 얄미운 소린진 모르겠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뭐라고 써 있는지 한번 읽어나 보고 얘기했으면 한다. ‘선서’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현대판 ‘선서’라고 할 수 있는 제네바 선언(역시 Impulse 과월호의 안유정 선생님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에서도 ‘헌신하겠다’고 했을 뿐 자신의 희생은 아랑곳 않겠다는 내용은 없다. 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나가면 치사하게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면서 모호한 법조문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사기꾼처럼 되어버릴지 모르니 해석 장난은 이제 그만하자.
하여간 필자의 견해로는 ‘선서’는 무조건적인 이타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선서’의 의미는 무엇인가? 항간에서 얘기하듯 ‘위선자의(Hypocrite’s, 발음도 무척 유사하다) 선서’인가?
그렇지는 않다. 최근의 어려운 상황으로 하도 심사가 뒤틀려 ‘그래, 나 위선자야, 나 원래 그런 놈이야! (어디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뭐야~ 어쩌구)’ 하고 한바탕 꼬장을 부려보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든 의사선생님들도 있다는 것이 같은 의사로서 이해가 가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선서’는 거룩한 수도승과 같은 자세의 의사를 요구한다기보다는 선의를 가지고 성실하게 환자를 위해 일하는 신뢰할만한 전문인의 직업윤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는 필자가 너무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우리는 이 ‘선서’에서 오늘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또 전체 의사 집단이 표방해야 할, 가장 적절한 의사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의사-환자 관계는 이미 시혜를 베풀고 받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의료서비스를 주고받는 일종의 계약관계가 된지 오래인데, 또 필요할 경우에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로서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의사는 여전히 희생과 봉사를 해야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설득력 없는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물론 아직 이러한 수평적인 관계에 의사 쪽도 익숙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타주의’를 최우선의 덕목으로 하는 의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가 추구해야할 모습이 되기는 힘든 것이다.
여기서 잠깐 뒤집어 한번 생각을 해보자. 당시의 히포크라테스 학파에게 왜 ‘선서’가 필요했을까? 폼잡으려고? 아니다. 뭔가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이 의사의 말이라면 순순히 믿고 따르고, 의사를 높이 쳐주고, 존경했다면 그런 ‘선서’가 필요했겠는가? 의사들이 의료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유일무이하며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고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막강한 영향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래서 의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이 없었다면, ‘선서’가 과연 필요했을까? 모든 의사들이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대중의 비난을 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는 청렴결백한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면, ‘선서’라는 것을 구태여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아니다. 정말 그렇게 환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선서고 뭐고 필요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구태여 ‘선서’를 하겠다면 사실 그건 ‘폼잡아보려고’ 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니오’란 대답은 ‘…필요했겠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일 뿐 아니라 그 앞에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당시 의사라는 신분은 변변치 못한 신분이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의사를 우습게 보고 쉽게 잘 믿지 않으며 그 성실성과 능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유사 의료업자(너무 의사중심적인 용어인 것 같긴 하지만)들의 거센 도전을 받아 권위를 세우기도 힘들고 그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다가, 일부 (또는 상당히 많은) 의사 –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사건 그 외의 의사들이건 또는 유사의료업자들이건 – 들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사회의 비난을 받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선서’는 이런 상황에서 의사의 직업윤리를 천명함으로써 의사들이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선의의 관리자임을 주장하고, 부도덕한 사기꾼들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도덕성을 지니고 있으며, 수상쩍은 유사의료업자(쉽게 말하면 ‘돌팔이’)와는 달리 신뢰할만한 전문가 집단이라는 점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만큼만 된다면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의 허준처럼 환자 돌보느라 과거 시험도 놓치고 (허준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과거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 바에는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과거 시험 보러 길을 떠난대도 비난할 수는 없을 터.) 목숨을 걸고 역병이 도는 마을로 뛰어드는 의사도 필요할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의사들이 그러지 못한다고 그들이 다 의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의사로서의 보장된 고소득과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오지에서 봉사하고 있다든지, 뭐 그런 비슷한 일을 해야 꼭 훌륭한 의사인 것은 아니다. (의사만 되었다고 고소득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는 지도 심히 의문스럽지만 이건 접어두더라도 말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의사들이 사실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중상 또는 그 이상의 수입과 생활을 누린다는 이유만으로 질시를 받는다거나, 혹은 ‘왜 너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봉사하는 삶을 살지 않느냐?’라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 아니, 웃기는 일이다.
양쪽에서 돌팔매질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요새 게시판에 보이는 얘기들(의사 쪽에서 나오는)과 관련하여 몇 자 적어보겠다. ‘우리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냐, 여기는 자본주의 국가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데 왜 난리냐, 유독 의사의 적정 수입에 왜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냐, 내 주머니를 까발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등등. 대한민국은 분명 자본주의 국가이고, 이런 논리가 일견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공격받을 소지가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의료가 전형적인 시장 경제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공급자와 수요자 간에는 심한 정보비대칭성이 있고, 공급자가 수요를 창출하며,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기존의 공급자집단은 다른 공급자집단의 시장 진입을 합법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배타적인 독점권을 지니고 있다. 이건 문어발 확장하는 재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 얘기다! (여기서 정말로 황당한 것은 한국의 의사들은 사실 이러한 영향력을 거의 대부분 상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의사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운운하는 것보다는 이런 쪽을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그러하든, 또는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그렇게 알아주지 않는 경우든) 자본주의 국가이니 내가 얼마를 벌든 시비 걸지 말라는 얘기는 크게 설득력이 없다. 공익을 위하여 국가에 의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 쪽이 당연히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물론, 건들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 수는 있다. 다만 그러려면 한가지의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의사집단은 자율적인 집단으로, 스스로를 합당하게 규제하는 능률적인 조직이 있고 문제가 있는 구성원을 축출하는 자정능력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공익에 봉사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선의의 집단인 것을 납득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선서’의 정신에 합당한 의사집단의 이미지를 세우지 않고서는 무슨 소리를 떠들어도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다.
많은 의사들이 미국의 의사들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미국의 의사들은 자기네들도 그들 나름의 ‘아픔’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건 그들이 오랜 세월을 싸우고 또 싸운 끝에, 돈을 좀 많이 벌어서 배는 아프지만 그래도 신뢰할만한 전문가집단이고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인정을 얻어내기에 이른 결과인 것이다.
‘선서’는 수천년 전의 것이지만, 지금 이 때야말로 그 ‘선서’의 의미를 되새기는 온고지신의 지혜가 필요한 때일 것이다. 그리하여 밖으로는 아무렇게나 히포크라테스를 들먹이며 의사들 엿먹이려는 사람에게는 ‘네가 히포크라테스를 아느냐?’라고 자신 있게 반박하고, 안으로는 궁극적으로 의사집단의 도덕성을 진정 확보하고 또한 대중에게 그를 납득시키는 작업이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 할 것이다. 갈 길이 참으로 험난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THE OATH
I swear by Apollo the healer, by Aesculapius, by Health and all the powers of healing, and call to witness all the gods and goddesses that I may keep this Oath and Promise to the best of my ability and judgement.
I will pay the same respect to my master in the Science as to my parents and share my life with him and pay all my debts to him. I will regard his sons as my brothers and teach them the Science, if they desire to learn it, without fee or contract. I will hand on precepts, lectures and all other learning to my sons, to those of my master and to those pupils duly apprenticed and sworn, and to none other.
I will use my power to help the sick to the best of my ability and judgement; I will abstain from harming or wronging any man by it.
I will not give a fatal draught to anyone if I am asked nor will I suggest any such thing. Neither will I give a woman means to procure an abortion.
I will be chaste and religious in my life and in my practice.
I will no cut, even for the stone, but I will leave such procedures to the practitioners of that craft.
Whenever I go into a house, I will go to help the sick and never with the intention of doing harm or injury. I will not abuse my position to indulge in sexual contacts with the bodies of women or of men, whether they be freemen or slaves.
Whatever I see or hear, professionally or privately, which ought not to be divulged, I will keep secret and tell no one.
If, therefore, I observe this Oath and do not violate it, my I prosper both in my life and in my profession, earning good repute among all men for all time. If I transgress and forswear this Oath, may my lot be otherw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