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하긴 어려워

흘러간 팝송 중에 “Hard to say I’m sorry”라는 노래도 있고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라는 팝송도 있다. “Thank you”는 밥먹듯이 하는 서양 사람들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기 힘든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의사가 환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일은 무척 드물다는 것이다.

사실 의사로서 환자에게 그런 말을 하기는 매우 힘들고 난처하다. 의사의 실수는 곧 환자의 불행이고 보면 입을 떼기가 참으로 천근만근인 것이다.

필자는 무척이나 깜빡하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 환자를 보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수도 없이 했었다. 다행히도 그 대부분은 크지 않은 ‘보이지 않는’ 실수여서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지만 실은 환자에게 미안한 일도 많았다.

이제는 제법 여러 해 전의 일이 되어버린 레지던트 시절, 병동에서 입원환자들을 일차적으로 담당하는 주치의로서 맡은 환자를 아침저녁으로 돌아보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이다. 이때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여러 가지 진단이나 치료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우선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것 외에도 환자가 머리가 아프다든지, 속이 더부룩하다든지 하는 사소한 불편을 호소하는 일도 흔하다. 필자는 그러면 이러 저러한 약을 주겠노라고 얘기하게 되는데, 그리 해 놓고서는 돌아서는 순간 입력된 데이터가 깜빡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는 오후 두세 시쯤 되어서 환자가 스테이션으로 나와서는 약 아직 안 나왔냐고 간호사에게 묻는 소리가 한켠에서 들릴 때가 되어서야 아차! 하게 된다. 으이구, 미안해라….

수첩에 적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수첩에 모든 해야 할 일을 그때그때 적는,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수첩이 아니더라도 엔간해서는 까먹는 일이 없을 것이며, 어차피 깜빡해 버릴 사람은 수첩에 적어 놓는다고 잊을 일을 기억해 내지는 못한다. 수첩의 존재 자체를 까먹으니까. 성의 부족이라고 비난해도 뭐라 할 말이 없다. 잘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손바닥에 적고 팔뚝에 적는 등등 별 짓을 다하기도 하고, 심지어 인턴 시절 만났던 일반외과 전공의 한 사람은 수술 도중 집도의가 환자의 검사 수치를 물어 볼까 봐 맞은 편에 서게 될 필자의 수술 모자 위에다가 그 숫자를 써 놓기도 했다. 하지만 다 소용 없는 짓이다. 건망증이 심한 의사는 나름대로 적응할 방법을 찾든지, 다른 직업을 구하든지, 아니면…. 아이구, 나도 모르겠다.

필자가 내과 레지던트로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인데, 저녁 무렵에 설사를 하는 한 환자가 찾아 왔다. 사실 별로 심각하지 않은 환자였고 너무 환자가 많아서 다른 환자를 보느라 그저 ‘관찰’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당직 의사에게 일단 인계를 하고 퇴근을 했는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간호사가 “아무개 환자 괜찮다고 집에 가겠다는 데 어쩔까요?”하고 전화를 해 왔을 때, 내 머리 속 하드디스크 (바이러스 먹은?) 에서 그 환자의 디렉토리는 흔적 없이 말끔히 청소된 상태였다.

“제 환자 아닌데요?”

잠시 뒤에 재차 확인을 해 본 간호사는 선생님 환자 맞노라고 다시 전화를 했고 나는 끝까지 아니라고 박박 우겼다. (머리 나쁜 게 고집까지 세!) 짜증이 난 나는 스테이션으로 나가서 “아니라니까요!”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신경질적으로 환자 차트를 확 펼쳐 들었는데 (집어던지기 일보직전!) 어디서 많이 보던 낯익은 글씨가 보였다. 윽! 필자의 글씨였다. 으… 쥐구멍, 쥐구멍 어딨지? 환자는 물론 이런 사실을 모르지만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물론 창피한 게 미안한 거보다 먼저였지만. 정말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더 이상 얘기하다가는 필자에게 오겠다는 환자가 없게 될 뿐 아니라 불성실한 의사로 찍혀서 사회적으로 매장될는지 모르니 그만 하자.

수시로 전원이 꺼졌다 들어왔다 하는 필자의 이런 형편없는 기억력을 잘 아는 필자의 아내는 “문신을 하지 그래?” 하고 놀려댄다. 아, 문신이라니! 메멘토(Memento)라는 영화 보셨는가? 기억이 주기적으로 칠판 지우듯 싹 지워져 버리고 자기가 누구인지,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희안한 병에 걸린 주인공이 나오는 그 섬뜩한 영화! 주인공은 그 말도 안 되는 기억력을 가지고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그가 하는 짓이란 게, 주로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이 있으면 그대로 몸에다가 문신을 새겨 버리는 것이었다. 아, 나도 그리 해야 하는 것인가?

기억할 것은 많고, 피부 면적이란 것도 한계가 있으니 문신을 새겨서 해결할 일도 아니고… 필자는 최근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이 장애(?)를 극복해보려 애를 쓴다. PDA (personal digital assistant)라는 것으로 쉽게 말해 다이어리 내지는 수첩이 할 수 있는 기능, 즉 스케쥴, 전화번호, 주소록 등의 관리, 각종 메모 등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용하기에 따라서 기타 다양한 각종 기능 (사전, 시계, 계산기, 지하철 지도 등에서부터 믿거나 말거나지만 리모트 컨트롤, 모기 쫓는 소리 발생, 추첨할 때 흔히 쓰이는 ‘사다리’ 타기에 이르기까지…)을 수행할 수 있는 손바닥만한 사실상의 컴퓨터라 할 수 있겠다. 설정만 해놓으면 약속 시간에 맞추어 알람도 울려주고 그날 그날 맞추어 할 일 목록도 보여주고 하니 참으로 고마운 기계다. (물론 일단 입력은 해놔야지!)

PDA로 의사들이 흔히 이용할 법한 여러 가지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다. 환자 관리라든가, 일일히 외우기 힘든 각종 약의 용법, 치료 가이드 라인을 넣어 놓았다가 수시로 참고한다든지 하는 기능이다. 음, 그럼 그렇지, 세상에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게야.

역시 내과 레지던트 시절의 일로, 한번은 맡은 환자를 수술을 위해 흉부외과로 보낼 일이 생겼다. 아무개 교수님에게 진료의뢰서를 보낼 참에 환자가 와서 어느 분에게 수술을 받게 되냐고 묻기에 이야기 해주고는 얘기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렸었다. 헌데, 이 환자의 특진 교수님이 와서는 다른 분에게 의뢰를 내라고 하였다. 다 써 놓은 의뢰서를 버리고 새로 의뢰서를 써서 다른 분에게 보내었다. 환자는 흉부외과로 넘어갔는데 나중에 환자가 찾아와서 왜 담당 외과의사가 바뀌었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특진 교수님과 의논하여 다른 분에게 수술을 의뢰하기로 결정했었는데 내가 깜빡 잊어버리고 그 사실을 이야기 해 주지 못한 것은 잘못했노라고, 죄송하다고 한참을 얘기하자 환자는 상당히 불만은 남아 있어 보였지만 결국 수긍하고 돌아갔다. 그 때, 옆에 있던 선배 의사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건냈다.

“성 선생, 대단하네.”

“뭐가요?”

“의사가 환자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 처음 본 거 같애.”

‘간 큰’ 의사라는 뜻이었을까? 최근에 모 병원에서 생긴 의료 사고에서도 의사가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을 보호자들이 꼬투리 잡아 의사의 과실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던 것을 보면 미안하다는 얘기도 함부로 할 것이 못되나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심각하지 않은 경우라 솔직히 이야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의사-환자 관계에 있을 것이다. 가족과도 같은, 아니면 그 이상의 신뢰를 받는 의사, 그래서 설사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의료 사고가 생겼을 경우라 할지라도 신뢰를 잃지 않는 의사가 될 수 있다면…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실수는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의 결과로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을 상상해보면 모골이 송연하여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인데… 잘못한 건 잘못한 건데, 그냥 잡아 뗄 수도 없고, 잘못했다고 하기도 힘들고…. 미안하다는 말, 정말 어려운 말이다.

200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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